우리의 결심
자, 앞으로 나와주세요.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모든 순서가 끝나면 행사장을 나가려는 참석자들을 붙잡으며 하는 말입니다. 저 또한 교육 행사들의 기획과 운영을 맡아 수행한 적이 있다 보니, 그 순간의 담당자의 애절한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담당자들의 모습을 보면, 앞의 순서들은 그저 사진을 얻기 위한 시간들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결혼식장에서도 하객들과 남기는 단체 사진은 모든 순서에서 가장 많은 공이 드는 시간입니다. 일사불란하게 사람을 세우고, 모든 인물들의 표정을 체크하고, 포즈까지 요구하는 촬영 기사님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신부에게 부케를 여러 번 던지게도 합니다. 그렇게 공들이는 걸 보면 단체사진을 촬영하는 시간이 신랑 신부가 성혼 선언문을 읽는 순서보다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순간을 정확히 떼어내 꽁꽁 얼려 놓는 방식으로, 모든 사진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증언한다
미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 수잔 손택의 <시간에 관하여>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그녀의 말을 빌려 살을 붙이자면, 단체 사진은 무리의 단순한 기록을 넘어 그들의 철학, 또는 설립 의도에 부합하는 중요한 순간을 담는 행위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자체로 의미와 메시지이죠. 국가대항 축구 경기 전, 선수들의 단체 사진에서 결연한 모습이 느껴지는 까닭은 ‘반드시 승리하겠다.’라는 비장한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스타트업의 경우 언제 단체 사진을 남긴다 해도 기록의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나 저희처럼 데쓰 벨리를 지나고 있는 조직에겐 매일매일이 '생존'이라는 엄청난 미션을 달성한 극적인 순간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단체 사진을 꺼립니다. 그 자체로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업무 환경, 성장의 가능성을 공유하는 분위기, 스타트업을 생각하면 그런 낭만을 꿈꾸지만, 사실 현실은 벼랑 끝에 서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원들에게는 크고 작은 불안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부침이 이를 건드릴 때 팀빌딩에 문제가 생깁니다. 맨파워가 전부인 대부분의 스타트업에겐 이와 같은 문제가 가장 어렵습니다. 존속과 멸망의 기로, 말 그대로 아주 존망의 순간이 될 수도 있죠. 위험한 곳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입니다. 함께 그릴 미래를 공유하는 시간보다 성과를 만들어 지속 가능한 생존을 만드는 현재의 업무가 더 중요합니다. 굳이 사진까지 남겨가며 서로의 부담을 지지 않고 싶습니다.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사진을 남긴다 해도 스타트업은 여러모로 구성원의 출입이 잦기 때문에 단체 사진의 업데이트도 굉장히 번거로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회사 소개 페이지에 단체 사진을 게재한 곳들을 보면 현재의 구성원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부터 골치 아플 숙제를 만들고 싶지 않겠죠. 스타트업에게 단체사진은 그 자체로 큰 결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재해보는 사자가 온다(주)의 단체 사진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선언이자, 이탈 없이 여정을 함께하는 것을 기념하고파 팀원들의 동의를 구하고 이곳에 올려봅니다. 충원이 되어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면, 한동안은 그 사실을 번거로움보다 감사의 이유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훗날 얼굴 붉힐 상황이 일어난다 해도 '이때만큼은 한뜻으로 함께 했노라.' 기억하고 싶네요. 아무튼 이렇게라도 우리의 순간을 남기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사진의 여백 속에 채워질 새로운 동료들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함께 가져봅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스타트업이 가진 최고의 자산은 바로 인적자원_ Human Resource입니다. 가치를 창출하는가 또는 그것을 할 수 있는가가 평가의 중요한 잣대인 스타트업에게는 구성원들의 역량의 총합이 조직의 가능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이 커리어에서 어떤 골과 비전을 품고 있는지, 또는 이 조직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면밀하게 파악하고 함께 공유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소통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도 “저, 할 말 있어요…”라는 말줄임표 가득한 팀원들의 말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대표에게 '마음 철렁'은 숙명이겠죠.
그런 면에서 저희 조직은 참 다행입니다. 현재 팀원 모두 수년 동안 전 회사에서 수많은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며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퍼포먼스를 높일 수 있는지, 피드백의 효과적인 프로세스는 무엇인지 등의 업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경험에서부터 조직의 철학 속에 각자의 가치관과 목표를 어떻게 내면화_ Internalization 시키고, 어떻게 하면 조직 몰입_ Organizational commitment을 높일 수 있는지 논의해 온 시간까지,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스타트업치고는 성장의 좋은 양분을 보유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미지의 대륙을 찾아 떠나는데, 이미 여러 차례 승선하여 다양한 항로를 경험했던 범선에 올라타는 기분이랄까요. 다른 건 몰라도 이 범선의 돛은 어떻게 내리고 바람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자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망망대해 속, 누군가 우리를 가리켜 표류라 말할 때 "아니다. 우리는 항해 중이다."저는 힘주어 말할 것입니다.
물론 이 글과 사진을 게재한 오늘의 호기를 후회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를 좀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스포츠의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의 도전의 성공과 실패 확률은 50%로 동일합니다. 완벽한 성공을 위해 나머지 50%의 확률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덜컥 겁이 나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승부는 어느 쪽으로 1%를 더하느냐의 싸움입니다. 글쎄요. 우리가 긴 시간 동안 만들어온 팀워크가 1%, 그 이상은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 확신합니다. 그런 마음이 이 글을 쓰게 하고 단체 사진을 올리게 했나 봅니다. 사실 이렇게 사진을 올릴 생각을 미리 했다면 좋았을 텐데요. 메이크업도 하고, 머리도 신경 쓰고 말이죠. 제 포즈도 정말 마음에 안 드네요. 저 자체가 메시지인데 말이죠. 제가 이렇게 엉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