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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ul 08. 2021

3일 만에 10,000명이 읽은 글, 당신은 누구시죠?

이 글을 쓰는 이유

‘이 글, 대체 누가 볼까?’


 아무도 읽지 않는다 해도 이해가 되는 글입니다. 일개 초짜 스타트업 대표의 소소한 사업 이야기라니, 무관심은 예견된 일입니다. 글의 기획부터 독자 타게팅이 아주 모호합니다. 출판사 직원의 실수로 제 글들을 모아 운 좋게 출판한다 해도, 서점의 어느 섹션에 놓여있을지 그려지지가 않습니다. 브런치 글을 발행하면서 글의 카테고리를 선택할 때도 항상 망설입니다. 항상 3개를 선택하라고 하는데, 결국 그나마 가깝다고 생각하는 단어들. '스타트업', '경영', '비즈니스'로 설정하여  게재합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단어들은 제 글의 주제보다는 소재나 배경 어디쯤입니다. 그저 콘텐츠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가 자신의 일상을 주제로, 이야기 하나 만들지 못하면 되겠냐는 생각으로 시작한 글일 뿐이었습니다. 감히 경영 서적보다는 하루의 단상을 묶은 산문집이라 하는 게 더 적합할 것입니다. 그래도 생태계를 지키고 관리자의 분류를 돕기 위해, 민망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갖다 붙여봅니다. '스타트업', '경영', '비즈니스'


 그런데 지난 글을 발행한 이후 신기하게 스마트폰 알림이 뜨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조회 수 알림이었습니다. 3일 만에 10,000명 이상의 분들이 제 글을 봐주셨더라고요. 행운의 알고리즘 덕분이었겠지만, 아무렴 어떤가요. 제 생각이 이 널따란 온라인 공간에서 당신과 마주한 것만으로도 큰 감동입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제 마음과 생각을 굳이 읽어나가는 당신은 누구일까. 당신의 이미지를 그려보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타게팅부터 이렇게 둔탁하고 흐릿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정말 궁금합니다. 답을 내기 어려워 질문을 조금 바꾸어 생각해 봅니다. ‘난 왜 이 글을 시작했을까?’


If I could save time in a bottle
The first thing that I'd like to do
is to save everyday till eternity passes away
Just spend them with you

If I could make days last forever
If words could make wishes come true
I'd save everyday like a treasure and then
Again I would spend them with you.

제가 유리병 안에 시간을 담을 수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영원한 시간을 모아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제가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하루하루를 보물처럼 모아서
또다시 당신과 함께 보낼 거예요.

짐 크로스(Jim Croce)의 '타임 인 어 바틀(Time In A Bottle)' 중에서

 짐 크로스는 유리병에 시간을 담겠다고 구슬프게 노래합니다. 저도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 이유를 유리병에 담아 바다에 던져봅니다. ‘우리, 여기에 있다고요!' 함께 창업한 우리 이야기를 누구든지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어체로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가 읽어도 기분을 흐트러뜨리지 않게 하려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글의 독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어요!’


 누구라도 독자가 될 수 있는 글은 아무도 독자가 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업을 버젓이 기획자라 내세우는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글을 쓰기 전 독자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설정하지 못했습니다.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비결,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감격적인 순간 등 경영 서적을 찾는 사람들에게 흔히 소비되는 무용담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매일 난관만 마주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보니 문제만 있고 아직 해결의 실마리가 안 보이는 글인데, 독자에겐 얼마나 답답할까요. 성공의 지점은 아직 요원한, 이 초라한 사업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하지만 스타트업의 기록이라면, 확률상으로 성공 이야기보다 실패가 훨씬 많습니다. 빛이 된 기업보다는 그 빛을 따라 열심히 달리고 있는 곳들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다만 이들의 경주가 공유가 안되고 있을 뿐이죠. 일반적으로 극적인 성공 스토리를 많이 찾지만 가끔은 위로하고 격려하는 심심한 이야기도 그만큼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그 위로는 누가 해주는 게 가장 힘이 될까요. 함께 그 고통의 시간을 겪고 있는 사람의 말에서 더욱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부디 함께 울고 웃는 글이 되고 싶습니다.


 또 누가 아나요. 이 글이 훗날 멋진 사업적 성과를 이룬 기업의 시작일지. 과거의 온라인 게시물에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 글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성지 순례라고 이야기하는데요. 훗날 그런 영광을 누리기를 바라봅니다.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다 보면 성공을 위한 훌륭한 데이터, 성장의 기폭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패로부터 배웁니다. 프로 바둑에서 대국이 끝나면 바로 복기를 두는 이유죠. 후회와 온전히 마주하는 힘든 시간이지만, 그것만이 바둑 기사를 성장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합니다.


 바둑을 생각하면 바로 생각나는 만화가 있습니다. 만화 <미생>입니다. 김태호 작가님이 작품에서 가장 아끼는 명장면을 뽑아 달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이야기한 장면입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바둑이 있다
<미생> 20수에서


 미생들에게 힘을 주는 장면입니다. 이 말을 빌려 오늘도 자신만의 인생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분들에게 완생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이 미생의 사업과 글, 응원해 주세요. 그러고 보니 세상에 미생이 대다수잖아요. 그 많은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글이라니. 이 글의 타게팅 나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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