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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을 바라보는 솔직한 시선

셔터 아일랜드

by 이동기

설정에 반전을 줘 관객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여기에 영화가 스릴러 장르면 금상첨화다. 구성면에서 관객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면서도 제대로 된 긴장감을 더해 관객들의 시선을 화면에 붙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극의 반전이 강하게 먹혀들 수 있겠다. 이런 긴장감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적절한 구성이 생명이다. 초반부터 강한 미스터리를 화끈하게 제시해 관객들에게 가벼운 충격을 안겨준 뒤 이를 풀어내는 방식의 묘미를 다각도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공식을 잘못 이용하면 관객들 스스로 스토리 전개 자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구성 꾸미기에 노련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했다. 스릴러가 주는 긴장감과 스토리 구성이 주는 복잡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작품, 영화 <셔터 아일랜드>(201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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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가 배 위에서 한창 헤매고 있는 장면이다. 배 멀미를 하는 듯한 첫 도입 장면이 관객들로 하여금 압도적으로 화면에 빠져들게 만든다. 물론 어설픈 그의 뒤처리가 물음표를 안겨주기도 하는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뭔가 숨겨진 의미를 찾아낼 것만 같은 음산한 분위기는 관객들에게 의혹을 넌지시 던진다. 포틀랜드가 아닌 시애틀 출신임을 강조하는 척 아울(마크 러팔로 분)과 함께 연방수사관 입장으로 셔터 아일랜드에 도착한 테디는 모든 게 꺼림칙한 분위기를 풍기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어째 쌀쌀맞게 느껴지는 교도관들과 자연스럽게 흘러감에도 한편으로 어색하게 느껴지는 모든 상황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이 셔터 아일랜드에 도착한 후 곧 보게 되는 푯말, “한때 삶과 사랑과 웃음을 누렸던 우리를 기억하라.”라는 문장은 이 섬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기 이전에 테디 자신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문구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섬으로 들어가는 도입부에 의외로 장엄한 배경음악을 폭넓게 깔아놓았다. 숨겨진 비밀을 간직한 미스터리한 교도소와 이를 감싸 안은 섬. 카메라는 이때부터 모든 걸 테디의 입장에서 읽어내고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교도소 안으로 진입하는 과정 자체는 무거운 분위기로 색칠을 해놓은 듯 화면 자체를 누르기위해 애쓰는 듯 하다. 처음부터 분위기에 압도당하다보니 관객들의 의구심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이를 받아내기엔 하나씩 밝혀지는 스토리 또는 요소 하나하나가 부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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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를 건넬 때의 척의 행동이 어색한 건 단순하게 넘어갈 이유가 못 된다. 연방보안관치고는 총기를 다루는 손길이 여간 서툰 게 아니다. 스토리를 따라가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이때부터 눈에 보이는 하나하나에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스릴러 장르의 거장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순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 관객들에게 그냥 줬을 리가 없잖은가. 아니나 다를까, 갈수록 아리송해질 무렵 제대로 된 숙제 하나를 던졌다. ‘4의 규칙, 67는 누구인가?’ 영화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 관객이라면 24명과 42명으로 나뉜 환자의 수를 듣는 순간 숨겨진 67번째 환자의 정체를 궁금해 했을 거다. 거기에 테디의 이마 상처를 덮고 있는 밴드를 쳐다보며 67번째 환자의 정체를 테디와 연결 지을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한 가지 재미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전개 속도가 사람들의 추측을 앞서가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철조망을 붙잡고 추위에 떨고 있는 다카우 수용소의 포로들은 테디를 괴롭히는 기억 속 트라우마다. 이와 대비해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는 닥터 코리(벤 킹슬리 분)의 모습은 테디의 머릿속 수사에 방향을 던져주는 좋은 먹잇감이 된다. 군법회의에 회부된 남북전쟁 당시의 사령관 얘기에 “그래도 싸다.”고 얘기하는 테디. 자, 이쯤 되면 익숙한 설정답게 섬으로 둘러싸인 교도소의 생태계에 의심을 던질 수밖에 없다. 관객들은 코리를 의심하게 되고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게 되니까 말이다. 순진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거나 혹은 관객들의 예측을 뒤집어엎을 제대로 된 반전을 보여주거나. 여기서 중요한 건 영화가 곧이곧대로 흘러갈지 아니면 상당한 충격과 함께 지금까지의 전개를 비틀어댈지를 지금부터 고민해봐야 한다는 거다. 싸움을 즐긴다기보다 후퇴를 모른다는 얘기에 더 이상 알려고 파고들지 말라는 경고성 멘트가 귀에 익은 듯이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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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과거를 회상하거나 꿈을 꾸거나 상상을 할 때마다 종이가 날리거나 불에 탄 재가 날리는 등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기제를 집어넣었다. 심지어 다카우 수용소의 끔찍한 살인을 떠올릴 때도 하늘에는 눈이 날리고 있는데, 이처럼 이 영화는 여러 차례 등장하는 간접적 메시지를 통해 결말의 반전에 대한 암시를 날린다. 덕분에 관객들은 어쩌면 뒤집어질지도 모를 테디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한편에 담아둔 채 영화를 바라보게 된다. 영화는 이런저런 요소들을 곳곳에 담아둬 여러 갈래로 빠져나갈 길을 열어놓고 사건을 진행시켜간다. 식상한 스타일의 스토리를 펼치는 게 아닌 만큼 재미는 더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머리는 복잡할 뿐이다.


테디의 계속되는 두통과 이마의 상처는 관객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 다가가는데 여기에 조지 노이스(잭키 얼 헤일리 분)와의 만남 또한 이에 대한 의혹을 더해주는 기폭제가 된다. 이 영화는 실제와 환상을 교차시켜놓아 관객들조차 감정을 들썩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동굴 속에서 레이첼(에밀리 모티머 분)을 발견하자마자 진실의 실체를 알게 됐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된 반전은 등대였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벌려놓은 사건을 어떻게 전개시켜 마무리 지을지 그 단계를 밟으려 하기 때문이다. 눈치가 빠른 관객이라면 사건의 전개 시점, 즉 등대를 찾아갈 때부터 이마 위 상처를 덮고 있던 밴드가 없어진 걸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반전이 또 하나 있을 수 있다면 테디 다니엘스의 존재를 사실 그대로 놔두는 것도 방법이었는데 한 번의 반전을 그대로 밀고 나간 뚝심이 스토리를 밋밋하게 만들어 버린 게 아닌 가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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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작부터 줄곧 관객들의 머릿속을 흔들어대는 여러 요소들을 배치해 단순하게 보여질 수도 있는 스토리 자체를 복잡하게 얽혀 놓았다. 교도소의 인체실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관객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재주도 있고 말이다. 관객들은 습관적으로 감독이 만들어놓은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반전을 잡아내려고 안간 힘을 쓰게 되는데 오히려 그게 감독이 요구하는 방향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그 허탈감은 감출 수가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냥 곧이곧대로 스토리를 밀고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거다. 실제 등대에서 인체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방향으로 끌고 나갔다면 색다른 반전 효과를 두 번씩이나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바로 그것이다. 어쨌든 영화의 틀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많은 작품들의 방향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만의 기교가 이곳저곳에서 보여 짐은 이 영화가 드러내는 장점에 속한다. 익숙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력이 빛을 발휘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됨은 물론이다. 신비에 가득 찬 미스터리한 섬의 기운이 오묘한 스토리와 함께 제 몫을 다한 작품, 영화 <셔터 아일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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