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
일반적인 추리물은 관객과 호흡을 함께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영화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가릴 건 가리고 드러낼 건 드러내면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서서히 풀어내야하기 때문이다. 글보다 화면과 소리가 어우러진 영화라는 매체는 시작부터 핸디캡을 안고 간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거기에 숨통을 조이는 공포의 긴장감이 아니라 사건 해결을 위한 설명과 해석이 요지가 되는 스토리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를 테면 사건의 중심이 되는 범인을 관객석에 앉혀 놓고 이를 풀어내는 탐정 한 명이 중심이 되어 주변인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범인을 관객석에서 무대로 서서히 이끌어내는 스타일 말이다. 이런 형식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 모리스 르블랑 등의 작품에서 많이 보아온 것들이다. 라이언 존슨 감독도 이러한 형식을 많이 따르고자 애를 쓴 것 같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2019)에 대해 얘기해보자.
앞에서 언급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아가사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 모리스 르블랑의 ‘뤼팡’ 또는 ‘이지돌 보틀레’ 등은 확실히 작품 속에서 자리를 잡은 인물이다. 어떠한 복잡한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그 안에서 사건의 과정을 자신 있게 유추해내고 풀어낼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다. 독자들은 그들의 그러한 능력에 감탄을 자아내며 이야기에 서서히 몰입하게 된다. 이 영화 <나이브스 아웃>도 이와 비슷하다.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분)은 이들의 스타일을 닮기 위해 애를 쓴다. 주인공에 대한 아무런 설명과 소개 없이 즉, 특별한 맥락 없이 갑자기 등장해 모든 걸 급박하게 진행시켜가는 것도 많이 닮았다. 여기에 거짓말을 하면 구토증상이 발생하는 독특한 인물을 배치한 점과 초반부터 시점을 달리하는 설명을 교차편집으로 드러낸 건 특이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채 반이 흐르기도 전에 사건이 어떻게 벌어졌고 범인이 누구인지를 친절하게 밝힌 건 더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영화는 중반에 다다르기도 전부터 이야기가 비비꼬인다는 느낌을 준다. 전형적인 추리물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랐지만 관객의 뒤통수를 치기 위한 교묘한 트릭을 곳곳에 숨겨놓고 덫에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말이다. 사건의 주인공인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 분)가 발을 떠는 장면을 클로즈업 한 건 감독의 의도였을까? 거기에 실수로 약을 뒤바꾸어 투약했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하필이면 유언장이 수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날에 말이다. 이쯤 되면 관객들도 필자와 비슷한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추리물은 관객과 호흡을 함께 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관객들은 한 편의 추리물을 보고 있고 분명 스토리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함께 블랑이 되어 추리를 하게 된다. 과연 범인이 누구이고 강력한 용의자는 누가 될 것인가를 유추해봤을 때 전형적인 추리과정은 고인의 사망 후 가장 많은 혜택을 취할 확률이 높은 이에게 눈길이 쏠린다. 물론 여기서는 자식들 중 한 명일 테고 이때까지의 이야기는 여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평범하게 끌고 가기엔 화려한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아깝다는 마음이 지워지지 않음은 왜 일까?
돌려 말하면 앞에서 언급한 마르타가 발을 떠는 모습이 나오는 순간 어쩌면 이건 의도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거다. 거기에 유언장 낭독에서 기가 막히게 모든 유산이 마르타에게 돌아간다는 내용이 공표되고 그녀는 혼란에 빠진다. 여기서 마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의 상황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낀 건 혼자만의 생각일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는 표현이 보다 더 어울리겠다. 과연 그럴까, 어쩌면 그 순간 마르타의 마음속은 쾌재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거기에 영화는 앞에서 지금까지 고인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아주 상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던가. 이처럼 영화는 중반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실타래를 계속 엉키게 만들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충분히 전형적인 추리물의 그것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어쩌면 범인은 생각지도 못한 스토리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도 함께 말이다.
이처럼 영화는 중반까지 충분히 있을 법한 가능성을 쉽게 열어두고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분명 고인의 죽음은 앞에서 충분히 설명됐고, 그렇다면 결론은 범인이 가족들 중 한 명이라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거나, 혹은 마르타의 교활한 계략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사실 말이다. 이 정도 추리가 가능해질 즈음에 영화는 애써 풀어낸 실타래를 다시 한 번 엉키게 만든다. 랜섬(크리스 에반스 분)의 설득에 마르타가 너무나 쉽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또한 그녀의 계략인건가를 의심할 때쯤 새로운 사건들이 하나둘씩 계속해서 터져 나오게 되고 추리를 방해하기 위한 온갖 트릭들이 수를 놓는다. 마르타에게 재산을 포기하라는 협박 정도가 따라 나오는 건 당연한 예상이 아니었던가. 영화는 이야기 흐름의 눈을 따라가는 관객들을 계속해서 속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해가며 관객들의 시선을 흐리게 만든다. 이 영화의 재미는 바로 감독과의 이러한 두뇌 싸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잔잔한 흐름과 블랑의 역할은 거기에 더해지는 잔재미일 뿐이다.
결국 종반에 이르고 나면 영화 속 블랑이 크게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아니었구나를 새삼 깨닫게 된다. 고전 추리물 속 셜록 홈즈와 에르큘 포와로 등에 비해 그 무게감이 너무나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무언가를 직접 확인하고 찾아내기 보다는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 너무나 기대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조금 전 언급한 무게감이다. 이 영화를 시리즈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분명 제대로 된 영웅이 필요했을 텐데 기존의 스타일을 따라가려 했던 건지 아니면 벗어나려 했던 건지 헷갈리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전자였다면 방향을 잘못 잡은 거겠지만 후자라면 제대로 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추리물은 언제나 관객과 호흡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기 위한 제대로 된 스토리 리더 대신에 관객과의 호흡을 맞추기 위한 설정을 안겨준 것은 감독의 과감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이 이 영화를 읽는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는 전형적인 그것을 따라가듯이 보이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계속해서 노력했다. 그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력과 감독의 연출력을 읽는 재미 또한 빠지지 않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추리물은 이래서 재미가 있다. 이 영화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