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이 영화는 신념에 관한 영화다. 신념은 굳은 마음을 유지하고 생각과 행동을 일관되게 만든다. 잘못된 신념이 무서운 건 현실을 마주한 상황에서조차 방향을 쉽게 돌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를 통해 감독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감독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라면 그 무게는 더욱 상당하다 할 것이다. 이미 <쉰들러 리스트>(1993), <링컨>(2012), <스파이 브릿지>(2015)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그 메시지를 탁월한 연출로 전달하는 실력도 충분히 보여줬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다가오는 재미가 있다. 사건의 사실적 묘사를 넘어 인물의 감정선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작품, 영화 <뮌헨>(2005)이다.
영화는 1972년 독일에서 개최된 ‘뮌헨 올림픽’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방송과 거리는 온통 스포츠로 화합되는 시민들의 물결을 비춘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선수촌에서 무장 괴한들에 의한 인질극이 벌어진다.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인 ‘검은 9월단’으로 알려진 이들은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잡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올림픽에 집중되었던 전 세계의 이목은 어느 새 끔찍한 인질극에 모이게 되고 결국 이들은 인질들을 모두 살해한 채 자신들의 목소리와 주장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화면은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를 비춘다. 모사드의 간부진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복을 결정하고 최정예 요원들을 모아 소속조차 불명확한 비밀조직을 구성하기에 이른다. 현장 경험은 부족하지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조국애로 똘똘 뭉친 요원 에브너(에릭 바나 분)를 주축으로, 폭발물과 문서위조 등 각자의 역할에 알맞은 5명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영화는 이들이 비밀리에 활동하며 뮌헨 인질극을 만들어낸 배후 인물들을 찾아 차례대로 복수를 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국가의 분쟁 역사를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몰려들어 건립한 국가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옛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후 70년, 로마 제국에 멸망당하고 그 로마가 무너지자 아랍 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해당 지역에 들어와 살게 됐다는 역사가 숨어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이 건립되면서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이 시작된다. 여러 번의 중동전쟁이 이어졌고 결국 이스라엘이 옛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이로 인해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던 곳에서 쫓겨나 난민으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시작된 분쟁 역사의 현실은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등 합의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하겠다.
영화의 초반은 영화 <아르고>(2012)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도입부의 사건 배경 속에 관객들을 그대로 옮겨 놓듯이 사건의 현장에 빠져들 수 있는 많은 환경과 여건을 구성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사실적 요소에 집중하기보다는 한 사람의 시선을 조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도입부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11명의 배후 인물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찾아가 복수를 하는 모습들이 굉장히 지루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이야기가 중반에 접어들수록 왜 이러한 속도를 유지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는 한 사람의 시선에서 감정이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지쳐 가는지를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면은 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저 없이 행동하는 에브너와 그 팀원들의 모습을 비추며 점차 변화해가는 인물들의 심리를 다각도로 담아냈다.
영화는 신념과 환경을 대비시켜 갈등요소를 진하게 만들어낸다. ‘생각이 많아지면 두려움과 생각이 많아진다.’는 대사 또한 행동에 주저함을 주지 않으려는 당위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최소한으로 피해를 줄이면서 목표물을 하나씩 제거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줌은 관객들에게 제법 사실적으로 다가가면서도 영화적 묘미를 더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팀워크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프로세스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장면 또한 최대한 집어넣은 것도 그러한 과정에 포함되고 말이다. 덕분에 스토리 이해 측면에서 불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이 들어가 조금은 지루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반에 들어서는, 관객들은 물론 인물 스스로가 감정에 휘말려 지쳐가는 모습을 담아내는데 이 부분이 바로 자신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신념이 흔들리며 주저하는 모습이 강하게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일은 점차 난관에 부딪히고 상부의 지시는 현장의 긴박감과는 달리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거기에 적의 타겟에 그대로 노출되어 동료들은 하나둘씩 죽어나간다. 그만큼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느낌이 점차 강해지는 가운데 주인공 에브너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는 감정 변화를 표정과 대사, 행동 등을 통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드러낸다. 거기에 이 작품이 실화를 바탕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고 본다면 더욱 그 생생함이 여실 없이 드러난다고 하겠다. 그야말로 국가와 국가, 민족과 종교 사이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투쟁에 대한 신념이 너무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 점이 이들이 한 인간으로서 삶과 환경을 얼마나 소홀히 여기고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했었는지를 세세하게 드러내고 한편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스파이물로 많이 알려졌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웅적 모험담을 담은 007 시리즈식 스파이물은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에서 흘려보낸 긴장감과 굉장히 비슷한 속도를 유지한다. 물론 복잡한 구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음은 그나마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쉽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속도와 구성이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많이 닮았다면 그 긴장감이 천천히 사방에서 조여 오는 두려움을 그려내는 건 영화 <스파이 브릿지>와 닮았다. 분명한 범인을 앞에 두고 가장 객관적인 시선에서 그를 보호하고 지켜내야 하는 과정은 모든 국민들이 자신을 외면하고 있는 환경을 감안했을 때 이 영화에서 비쳐지는 긴장감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분명 존재한다.
배역에 알맞은 균형을 유지한 건 탁월한 선택이다. 5명의 팀원 모두에게 충분한 시간과 역할을 배정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함은 이야기가 어느 한쪽으로 무너지지 않고 여러 상황과 긴장감을 아우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덕분에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보이지 않는 공포를 관객들 스스로 느끼며 이야기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렇게 관객들의 속도를 맞춰주다 보니 영화가 질질 끄는 듯이 느껴질지 몰라도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 팀원들이 하나둘씩 제거되고 몇 남지 않은 팀원들마저 작전 투입을 포기하거나 흔들리는 눈빛을 보이는 건 감독이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와 일치하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이처럼 그 메시지가 명확한 영화다. 마치 감독의 이전 작품 <쉰들러 리스트>에서 역사의 참혹한 순간을 고통 받는 인간의 한 시선을 통해 충분히 드러냈음에 집중하듯이 이 또한 한 사람의 환경과 시선을 통해 가장 절실하게 현장의 아픔과 그 방향에 대한 당위성에 제대로 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하겠다. 영화는 전 세계인들의 기억 속에 끔찍한 악몽으로 남아있는 ‘뮌헨 올림픽’ 테러 사건을 국가 간 분쟁과 개인의 시선의 감정 처리를 통해 날카롭고 세세하게 묘사하는데 성공했다. 끔찍한 역사의 한 순간을 제대로 된 연출과 연기가 만나 아름다운 화면으로 담아냈다는 점에 이 영화의 작품성이 더욱 돋보인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