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연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일상을 공유하는 그 자체는 사회생활의 범주를 벗어나 인간관계라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에 마주하게 된다. 그 자체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 중에 연애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관계 중 가장 힘들고 어려운 현실이 아닐까 싶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에 모든 마음과 행동을 맞춰간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만큼 연애라는 건 하고 또 해봐도 경험치를 쉽게 늘려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연애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을 해나가는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은 이야기로 다뤄졌다. 더 이상 무엇을 더 얘기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소재를 늘려가며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연애는 우리 모두에게 신선하고 재밌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여기 김한결 감독이 가장 친숙한 이미지의 연애를 소재로 가장 대중적인 작품 한 편을 가지고 왔다.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가장 실감나고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소소한 재미와 함께 더했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2019)를 들여다보자.
영화는 결혼 직전에 예비 신부의 외도로 파혼을 하게 된 재훈(김래원 분)과 신입사원으로 함께 일하게 된 선영(공효진 분)의 애정 전선을 아기자기한 사랑싸움으로 재밌게 다뤘다. 흔하디흔한 소재를 가지고 또 한 번 우려먹으려 시도한 건 사실이다. 솔직히 소재 측면에서 질리도록 접해본 흔한 소재인건 맞다. 그렇다면 김래원, 공효진 두 베테랑 배우를 통해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그 차이점을 배우의 연기력과 강한 개성에서 찾고자 하는 냄새가 강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 바 있으니 연기력에 대한 건 충분히 검증됐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멜로 장르에서 추구해야 할 로맨스 요소를 듬뿍 담았다. 직설적으로 날리는 말투와 동갑내기 설정을 통한 반말의 오고감, 술자리를 통한 주사와 필름의 끊김 등을 통해 서로가 밀당을 주고받는 과정을 최대한 리얼하게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연애와 관련한 주제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 스토리 자체가 개연성을 띠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주연 배우 두 사람의 연기가 아무래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재훈은 파혼에 따른 슬픔으로 매일같이 술에 절어 산다. 필름이 끊겼을 때의 연기를 잘 해내야 하는 부담감을 안았다. 선영은 연애에 있어 지극히 냉정한 자세를 취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전후반부로 나뉘어 재훈과의 애정전선에 빠져드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야 했다. 그것도 아주 조금씩 천천히 속도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영화는 가장 평범하고 보통의 삶이 가장 어렵고 힘들면서도 아름다운 삶이라는 명제를 알리고자 계속해서 노력한다. 술자리 이후 친구의 도움으로 하룻밤 신세를 진 선영은 육아에 지친 친구에게 “너 지금 좋아 보여.”라며 너스레를 떤다. 장난치지 말라며 얼굴을 찌푸린 친구였지만 감독은 이 순간 관객들에게 단순하고도 강한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약한 건 어쩔 수 없다. 흔한 소재를 넘어설 수 있는 특별한 힘이 필요했지만 일반적인 그것을 넘어서기까지의 힘은 부족했다. 그래서 제목부터 보통의 연애를 지향하고 있지만 말이다. 애초에 일상의 흔한 연애담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반드시 그게 장점으로 작용한 것도 아니다. 그에 비해 제시한 스토리는 파혼과 카톡, SNS, 친자확인 등 일상적이지 않은 요소들로 채워져 현대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해도 모두가 이해할만한 평범함을 벗어나 자극적인 요소들을 아우르고 있다. 애초에 장점으로 작용할 것을 기대했던 부분들이 오히려 단점으로 따라왔다는 거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점이 많다 하겠다.
부족한 여백을 채우고자 개성파 배우들을 대거 투입시켰다. 정웅인, 장소연과 같은 무게감 있는 중견배우들을 주축으로 강기영, 이채은, 정혜린, 손우현, 박근록 등의 떠오르는 배우들을 나란히 포진시켰다. 여기에 윤경호와 손여은 등이 특별출연을 해 관객들의 눈길을 뺏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단지 다양한 역할을 늘어놓아 사건을 이어가기 위한 분위기 메이커로만 위치시킨 건 아니다. 오히려 김래원과 공효진을 잇기 위한 과정 속에서 사건의 발단을 제공하는 스토리 리더로서의 역할까지 두루 주어졌다. 배우 정웅인은 직장 대표로서 구성원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제대로 해냈으며, 특히 강기영은 김래원과 공효진 사이에서 때로는 애교를 때로는 추태를 보이며 신선한 재미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동시에 해냈다. 선영을 둘러싼 인터넷 소문과 동료들이 그녀 몰래 주고받는 메신저 내용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까지 제대로 해내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무게와 가치가 전혀 모자람이 없다.
두 사람이 자주 만나는 커피숍과 포장마차 음식점 또한 제대로 된 오작교가 됐다. 다만 장소에 포인트를 주기 보다는 술을 통해 이어진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소소한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는 거다. 그들이 주고받는 입모양 게임은 물론 맨 정신에 고백을 하거나 뽀뽀를 하는 장면 등은 두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고 이어주는 이벤트가 됨과 동시에 관객들이 무리 없이 이를 받아들이게끔 속도를 줄여주는 완충 작용을 한다. 그럼에도 감정의 서툰 표현과는 달리 속도가 빠르게 다가옴은 비단 필자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을 것만 같다. 아쉬운 점은 이벤트를 통한 속도의 완충작용 효과를 유도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잦은 술자리와 억지스러운 만남, 서로에 대한 집착 등이 한데 어우러져 부자연스러운 감정의 충돌을 야기했다는 거다. 이러한 점만 제외한다면 영화는 일상의 가볍고 재미난 소재로 관객들에게 무리 없는 소소한 웃음과 감정을 선사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김한결 감독은 작품을 통해 누구나 꿈꾸는 사랑에 대한 시각이 사실 알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보통의 것에서 흘러나옴을 인지시켜 주고 싶었던 듯하다. 거짓과 가식 없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생 서로를 바라보며 아끼고 사랑하는 것,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사랑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게 사랑임을 관객들에게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상대방에게도 특별함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 또한 잊지 않고 말이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사랑은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보통의 연애를 통해 이뤄나가는 것임을 강조했다. 평범하고 보통의 그것이지만 그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기운을 찾고자 할 때 가장 떠오르는 한 편의 영화로 남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