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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의 반복된 싸움 속에서

게임 체인저

by 이동기

세상은 진실과 거짓의 반복된 싸움이다. 누군가는 거짓으로 진실을 감추려 하고 누군가는 그 진실을 파헤치고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영화는 국내로 넘어오면서 원제와 전혀 다른 제목을 택했다. 재미있게도 바뀐 제목은 우리말이 아닌 영어다. 영어로 쓰인 원제를 굳이 다른 영어 제목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의외로 훨씬 타당성 있고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감독의 연출 메시지가 표면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보다 함축적이고 무거운 세상의 진실에 대한 도전임을 이해하게 된다. 거짓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용기, 그 용기가 어떤 무게와 가치를 지니는 지 진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이 여기에 있다. 피터 랜즈먼 감독의 영화, <게임 체인저>(201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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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피츠버그의 한 지역에서 시체 검시관으로 근무하는 주인공 베넷 오말루(윌 스미스 분) 박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자신의 꿈이었던 미국에 정착해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자 제 위치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체 한 구를 부검하게 되는데, 그는 바로 미식축구의 인기가 상당한 피츠버그 지역에서 한 때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받은 바 있는 전 선수 마이크 웹스터(데이빗 모스 분)였다. 베넷은 그런 자초지종을 모른 채 일상적인 검시를 시작하는데 뭔가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겉으로 전혀 이상 없어 보인 그의 뇌가 정밀 검사 결과 엄청난 타격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여기에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살사고로 들어온 또 다른 전 미식축구 선수의 시체를 부검하게 되는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하게도 그의 뇌에서도 똑같은 증상이 발견된다. 결국 이로 인해 이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게 된 그는 사인이 미식축구 선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몸싸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이 은퇴 후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감퇴되거나 환청이 들리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어져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베넷은 이 사실을 정식으로 학계에 보고하는데 이때부터 사건은 전환의 국면을 맞이한다. 지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미식축구 종목의 특성상 미식축구협회가 직접 나서서 연구결과를 전면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협회는 미식축구의 인기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 해 관련한 의사들을 포섭해 연구결과를 반박했고 결국 베넷 박사는 홀로 거대 집단인 협회와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간다.


영화는 초반까지는 분명 주인공인 베넷 박사를 중심으로 두 가지 이야기를 펼쳐 나가려는 듯이 보인다. 환자를 중심으로 병의 원인을 파헤쳐가는 것과 여주인공인 프리마(구구 바사-로 분)와의 관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균형을 무려 약 40여 분간 이어가고 있음을 감안해보면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 해석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점차 중반으로 들어가면서 그녀와의 영역은 다분히 축소되고 사건의 균형이 베넷 박사와 미식축구협회와의 대결로 전환된다. 결국 이야기의 대부분은 미식축구 선수들이 계속된 뇌진탕으로 뇌가 파괴되어 가는 병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진실을 알리려 하는 그의 노력으로 압축된다고 하겠다. 간략히 요약하면 이야기의 구도가 두 가지 초점에서 한 가지로 모아진다는 것이다.


영화적 차원에서 스토리를 분석하자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구도이지만 전혀 재밌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와는 다르고 관객들은 영화에 재미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 압축된 스토리에 재미를 위한 요소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흥행을 위한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감독은 이를 위해 미식축구협회를 부각시켜 베넷 박사와의 재미난 대결 구도를 형성시켰다. 그런데 사실 이 공방전이 재밌게 보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풍성하게 넣어야 했다. 논리적인 공방전도 좋고 협박과 위협이 가해져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입장도 좋다. 사실 식상하긴 하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대결 구도를 제시한 중반 이후부터 너무 많은 부분들을 건너뛰어 버린다.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많은 내용의 삭제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갈등을 좀 더 사실적으로 비추기 위해 줄리안 베일스 박사(알렉 볼드윈 분)도 배치시켰다. 중반부터 이제는 2명이 된 주인공들이 환자 아니 죽은 전 선수들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제 2의 싸움을 준비하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사실감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다. 좀 더 많은 사례와 더 깊은 연구를 통해 제대로 된 결과를 입증하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과 도전은 수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줄리안과 베넷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줄리안이 과거 피츠버그에서 일할 때 자동차에 기름칠 하듯이 온갖 약물을 동원해 선수들을 몰아세웠다는 말에 베넷은 그게 무슨 의술이냐며 그를 몰아세운다. 그 때 답하는 줄리안의 “비즈니스였죠.”라는 한 마디는 이 영화를 통틀어 관객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전달되는 대사이자 감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와 같이 강력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는 만큼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보다 사실적으로 드러내고자 애를 쓴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카운터펀치가 부재했음이 아쉽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얻어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보다 극적으로 보다 절실하게 그리고 보다 감동적으로 그들의 마지막 승리를 전달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는 못한 것 같다. 메시지가 분명한 반면에 연출은 밋밋했고 마지막 승리는 극적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흐름 속에 맡겨 버렸다. 화면은 미식축구의 화려한 스포츠 겉면에 가려진 선수들의 상처와 고통을 조명하고자 노력했지만 마지막 장면을 워싱턴으로 끌고 가면서 미국식 영웅주의로 마무리 짓는 게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영화를 보다보면 초반 장면에서 ‘게임을 끝내야지, 그래야 이긴다.’라는 말이 나온다. 미식축구의 세계에서 내뱉을 수 있는 통념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메시지에도 어울리는 대사이다. 주인공 베넷 박사는 진실을 마주한 채 이와 끊임없이 부딪히고 대결하는 외로운 싸움을 벌여왔다. 그는 나이지리아에서 자라면서 미국은 천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이었고 늘 진정한 미국인으로 인정받기를 기대했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마이크 웹스터라는 영웅이 허무하게 죽었는데도 다들 쑥덕대기만 할 뿐 아무도 그 이유에 대해 묻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러한 현실에 개탄하며 이게 자신이 꿈꿔왔던 천국이고 미국이라는 현실에 물음표를 부여한다. 그는 스스로 혼자만의 게임에 빠져들었고 매 순간마다 끊임없이 이기려고 노력해왔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이룩한 마지막 승리는 이 영화의 원제를 자연스레 바꿔주었다. 그 가치가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 <게임 체인저>로 바뀐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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