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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그들의 뜨거운 뒷면

더 셰프

by 이동기

비슷한 주제를 다룬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들을 서로 비교해가며 관람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영화의 연출 방향과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그러하다면 관람객의 입장에서 더욱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비교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굳이 작품의 우위를 점하는 비교가 아니라 각각의 특징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접근해본다면, 작품마다의 매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보다 더 많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가 정리했던 영화들 중 제대로 비교했던 작품은 바로 ‘왓치맨(2009)’과 ‘아키라(1988)’였다. ‘전복이론’ 또는 ‘정화론’에 기반을 둔 이 작품들은 새로운 생태계 형성을 위해 희생을 통해 정화를 택하는 스토리를 갖췄다. 코미디언의 죽음을 둘러싸고 의견의 대립을 보이는 ‘나이트아울’과 ‘로어셰크’의 모습은, 여전히 희망의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 시대 배경 속에서 청소년들의 선택을 두고 양립하는 ‘카네다’와 ‘테츠오’의 대립과 너무나 닮았다. 오늘은 이처럼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유사한 패턴의 두 영화를 비교해가며 그 속에서 열정을 드러낸 영화 한 편을 끄집어내볼까 한다. 스타 셰프들이 대한민국의 예능프로그램을 휘저으며 전국에 제대로 된 먹방 열풍을 이끌고 왔던 지난 2015년, 그 열풍을 이어가고자 존 웰스 감독이 미슐랭 3스타에 도전했다. 영화 ‘더 셰프(201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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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셰프(2015)’는 미슐랭 2스타로 일약 스타 셰프에 올랐지만, 그 후 강박증과 괴팍한 성격 탓에 주위의 신뢰를 놓치고 직장마저 잃게 된 아담 존스(브래들리 쿠퍼 분)가 다시 재기를 위해 미슐랭 3스타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각 분야 최고의 셰프들을 불러 모으는 등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최상의 드림팀을 꾸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 작품은 우리가 그 동안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수없이 보아왔던 가벼운 느낌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셰프의 모습을 묘사한다. 오히려 실제 우리가 보지 못하는 주방에서의 열기와 치열함,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긴장감의 연속을 관객들에게 리얼하게 전달하고자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하겠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다. 필자는 여기서 지난 2014년 비슷한 타이틀로 관객들에게 셰프의 치열함을 전달했던 존 파브로 감독의 ‘아메리칸 셰프(2014)’를 떠올렸다. 우리에게 ‘아이언맨’ 시리즈로 친숙한 존 파브로가 감독과 각본은 물론, 제작과 주연까지 맡았던 영화 ‘아메리칸 셰프(2014)’는 미슐랭과 같은 외부의 평가에 집착했던 주인공 칼 캐스퍼(존 파브로 분)가 한 비평가로부터 혹평을 들으며 자신이 오랫동안 쌓아왔던 모든 명성을 잃고, 거리의 푸드트럭으로 나서게 되면서 새로운 여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들과 함께 푸드트럭을 타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쿠바 샌드위치를 판매하는 그의 먼 여정은, 하지만 그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어 SNS라는 현대적 문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이를 통해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주위 사람들과 가족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행복한 삶에 빠져드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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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 모두 공통점과 차이점이 극명하다.


존 파브로 감독의 ‘아메리칸 셰프(2014)’는 직장을 잃은 주인공 칼 캐스퍼의 슬픔과 절망보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그 동안 놓치고 살았던 주변과 가족들을 되찾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SNS를 통해 사람들과의 소통을 확대시키며 자신의 음식에 대해 비난했던 혹평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반면에 존 웰스 감독의 ‘더 셰프(2015)’는 원제인 ‘The Burnt’의 의미처럼 일반적인 고객들이 알지 못했던 주방에서의 치열함과 압박감을 정성스럽게 표현하는데 주력한다. 그 과정에서 각 셰프 간 경쟁의식과 자신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 그에 대한 평가를 바라보는 시선 등을 종합적으로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현장감을 좀 더 깊이 있고 풍성하게 만들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를 얘기하자면, 두 영화 모두 음식을 다루는 영화답게 화려한 음식의 향연을 보여준다. ‘아메리칸 셰프(2014)’는 영화를 보는 내내 다채로운 색깔과 맛을 내는 음식들을 다양하게 화면에 담았다. 존 파브로가 만들어내는 쿠바 샌드위치의 모습은 그 자태만으로 관객들의 후각을 자극시킬 정도로 아름다운 음식의 맛들을 표현한다. 심지어 이 영화의 포스터는 관객들에게 ‘절대 빈속으로 보지 말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해준다. ‘더 셰프(2015)’ 또한 이에 결코 뒤지지 않는 화려한 화면들을 선보인다. 존 웰스 감독은 실제 주방과 동일한 세트장을 준비하는 한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셰프 마커스 웨어링을 요리 자문으로 참여시켜 요리에 한층 빛을 내도록 노력했다. 특히 출연 배우들 모두 주방에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통해 요리 실력을 키웠는데, 그 노력이 고스란히 화면에 담길 수 있도록 음식의 표현에 애쓴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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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메시지의 표현성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아메리칸 셰프(2014)’는 화려한 음식들로 관객들의 식욕을 자극하면서도, 음식이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이듯이 셰프에게는 요리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전달한다. 주인공 칼이 레스토랑 매니저인 몰리(스칼렛 요한슨 분)에게 푸념하는 장면은 셰프라는 직업이 가진 사회적 감정을 잘 대변해주는 부분이다.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는 건 쉬워. 잘 나가는 요리를 메뉴에 넣으면 되니까. 난 좀 더 나은 요리를 했지만, 사람들은 그 요리를 찾지 않아.” 이 영화는 칼이 아들과 함께 떠난 푸드트럭 여행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던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SNS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셰프라는 직업이 음식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중요함을 깨닫게 한다.


반면에 이 영화 ‘더 셰프(2015)’는 이와 다르게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치열한 ‘삶’의 구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표현하는데 노력했다. 감독은 실제 촬영하는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주방의 일원으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강조했다. 리허설 때 실제 셰프들을 초청해 각 장면과 상황을 설정하고, 요리의 진행 과정을 하나하나 점검해가며 실제 셰프들이 느끼는 부담감과 압박감을 배우들이 그대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이처럼 ‘셰프’라는 직업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통해 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화려한 결과물을 탄생시키는지를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화면을 통해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의 작품과의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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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영화 ‘더 셰프(2015)’는 기존의 셰프나 요리를 주제로 한 영화들이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 위주로 제작되거나, 혹은 음식을 접하고 평가하는 고객들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셰프’라는 직업의 묘사에 보다 초점을 맞춘 연출을 시도한 작품이다. ‘셰프’가 가지는 화려함 뒤에 어떤 노력과 아픔이 존재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미슐랭 스타에 도달하는지 그 치열함과 압박감을 화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진정성이 관객들에게 다가간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튼토마토 지수 29%, 시네마스코어 B-, 국내 누적 관객 수 12만여 명 등 이 영화에 대한 외부 시선의 냉혹한 평가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크게 남겼다. 흥행 실패의 커다란 요인으로 등장인물 간의 설명이 부족했다는 평이 많았는데, 애초에 이 영화는 스토리텔링 자체에 커다란 무게를 둔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영화의 메시지에 무게를 두지만 작품성과 흥행력이 다소 부족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음이 매우 아쉽다. 이와 같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접하기 쉽지 않은 ‘셰프’라는 직업의 신비한 뒷면을 경험하고픈 분들이 계신다면, 이 영화 ‘더 셰프(2015)’를 통해 간접적인 체험을 제대로 하시기를 강력히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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