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쇼트
진실과 거짓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세상은 진실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이를 주제로 하나의 영화를 풀어내자면 정말 끝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 재밌는 이야기를 하자면 누군가는 진실을 얘기하고 누군가는 거짓을 얘기하지만 반드시 진실이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거짓이 현명할 때도 거짓이 속 시원해질 때도 있다. 세상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진실과 거짓이 쉽게 이해되지 못하는 구석도 있다. 경제가 바로 그렇다. 복잡하고 어려워 국민들은 이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를 이끄는 이들은 자신만의 자만에 빠져 국민들을 쉽게 호도한다. 그 속에서 나름 진실을 파헤치고자 노력한 이들도 있는데 과연 그들이 대중의 편에 서서 경제의 진실한 면을 이끌어주었을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풀어냈지만 강력한 메시지도 함께 담았다. 영화 <빅 쇼트>(2015)다.
영화 <빅 쇼트>는 부실 모기지론의 위험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금융권을 상대로 일종의 도박을 걸어 한 때 월스트리트를 흔들어 놓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짧은 러닝 타임에 담백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흥미로운 스토리를 풀어냈다기보다는 그들의 활약사를 짧게짧게 끊어놓았기에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거기에 스토리 자체가 세계 경제를 흔들어 놓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루고 있어 여기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이를 이해하며 시청하기엔 부담감이 크다. 그런 내용을 아담 맥케이 감독이 간결하고 담백하게 압축시켜 놓음은 시청자들의 무거운 마음을 한편으로 가볍게 풀어낸다 하겠다.
영화를 두고 굳이 간단한 한 줄 요약을 하자면, 수년 전 어느 광고에서 부르짖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스를 외칠 때 혼자서 노를 주장할 수 있는 용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많은 이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맹신할 때 이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해보자.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미국 주택담보대출의 커다란 구조로 만들어진 경제학 용어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은 다양한 등급으로 구분되는데 최상위 프라임 등급 아래에 놓인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바로 서브프라임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프라임 모기지에 비해 대출금리도 높고 신용점수가 낮은 이들에게 적용되는데, 문제는 당시 모기지 상품이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유통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상품을 운용하는 회사는 주택대출자에게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이 채권을 다시 금융상품으로 유통시켜 대출 재원을 마련했다. 채권을 구매한 금융회사는 이를 다시 펀드로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판매했는데 이렇게 물고 물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니 어느 한 쪽이 무너지는 순간 연쇄 파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존재했다. 물론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와도 연결되어 있기에 이 파장은 아주 크게 번질 가능성이 높았고 말이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상품의 등급을 매기는 게 아주 중요하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이 등급 판정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아주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최대한 쉽게 풀어내려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영화는 이러한 금융 구조를 쉽게 설명하고자 중간중간에 여러 인물들을 집어넣어 그 용어에 대한 정의와 구조까지 이해시키려 노력한다. 거품목욕을 하고 있는 배우 마고 로비라든가, 행동경제학의 아버지 리처드 탈러와 셀레나 고메즈 등이 합성 CDO 등을 쉽게 설명하는 모습은 관객들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는 이런 과정을 볼 때 얼마 전 비슷한 경제 사태를 다뤘던 국내 영화 <국가 부도의 날>(2018)과는 조금은 차이를 둔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이미 벌어진 사태를 온 몸으로 받아내는 다양한 계층의 시점에서 사태를 해석하려 했다면, 이 영화 <빅 쇼트>는 앞으로 다가올 사태를 미리 예측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이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내용 측면에서만 말이다.
굳이 두 영화의 비슷한 점을 찾자면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서의 윤정학(유아인 분)이 영화 <빅 쇼트>의 이들과 비슷한 모델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이러한 예측을 초반에 흘리는 강한 명제를 통해 관객들에게 넌지시 그 의미를 비추기도 한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잘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명언이 바로 그 것이다. 여기에 영화 중반에 ‘진실은 시와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를 싫어한다.’라는 말로 관객들을 우둔한 멍청이로 만들어버리는 문장 또한 이들에게 강한 경고 한 방을 날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주인공들의 행동이 과연 어떤 시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감독이 주장하는 메시지가 좀 더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 분) 박사는 펀드매니저로서 수많은 관계자들의 비난 속에 오랜 시간을 꿋꿋이 버텨낸다.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 분) 또한 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브라운필드의 찰리 갤러(존 마가로 분)와 게이미 시플러(핀 위트록 분)는 이 과정을 통해 수많은 돈을 벌었다.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 분) 역시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국민들에게 이 사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 게 아니라 이 틈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였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서의 윤정학과 같은 성격을 지녔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들의 천재적인 감각과 융통성은 인정하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많은 대중을 낮춰 비유하는데 노력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뭔가의 가치를 평가할 때 권위자의 말을 듣는데 그 권위자를 사실이나 결과를 바탕으로 선택하지 아니하고 권위 있어 보이고 친숙한 사람을 선택한다는 말로 대신한다. 결국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비참한 그리고 냉혹한 현실을 고발한다. 실제 은행들이 저지른 일임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국민의 혈세로 보너스를 두둑이 챙기고 로비를 통해 개혁을 중단시켰다는 사실을 집중 조명하면서 말이다. 감방에 간 은행 간부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는 사실까지 언급하며 사회에 대한 강한 고발을 드러내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감독의 메시지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 영화는 논픽션이지만 사회고발성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영웅의 이야기를 조명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감독의 의도가 충분히 강하게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지는 않지만 사회가 많은 국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강력한 경고를 날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가치는 새롭게 다가온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