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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Oct 03. 2024

<조커:폴리 아 되> 당신은 조커에게 아무 관심도 없다

많은 영화에 악당들이 등장하지만, '조커'만큼 이상하리만치 인기를 얻는 악당은 드물다. 조커는 안티히어로가 아니라 그냥 진짜 악당이다. 조커는 외모가 광대 공포증을 자극하고, 그 웃는 모습과 광기 어린 캐릭터가 저지르는 악행이 상당히 자극적이며 배트맨의 숙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무표정의 검은 배트맨과 대비되어 더욱 인기가 생겼다. 게다가 배우 히스 레저가 조커 역을 연기하다 자살하는 일이 생기자 아이러니하게도 조커의 캐릭터성이 더 부각되는 현상이 생기고야 말았다.


그래서인지 현실에서 조커의 분장을 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종종 생겼다. 이번에 개봉한 <조커: 폴리 아 되>의 전작인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는 이런 조커에게 특별한 서사를 부여하고, 조커와 같은 인셀(Incel: 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독신주의자)들에게 범죄를 일으키도록 자극하는 영화라는 비판이 많았다. 영화 <조커>는 그 밖에도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정신병이나 장애를 앓는 사람에 대한 공포나 편견이 들어가 있고, 시민혁명이나 시위를 범죄 취급하는 사회 기득권층의 시선이 들어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담시의 하층민들이 스스로를 조커와 동일시하면서 조커를 추종하고 환호하는 장면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아나키스트인 브이가 독재 파시즘에 대항하고 시민을 선동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인 가이 포크스가 혁명의 상징이 된 것도 와전된 바가 크지만, 조커가 과연 그러한 정도의 사상을 가지고 그 정도의 일을 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영화 <조커>에서 조커는 그저 개인적인 광기의 복수를 한 범죄자일 뿐이다. 그러나 호아킨 피닉스의 엄청난 연기, 토드 필립스의 연출력 등이 맞물려 사람들이 조커에 열광하도록 만들었다. 즉 영화가 재미있기 때문에 좋지 않은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인기를 얻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영화의 영향으로 조커 분장을 하고 현실에서 시위를 하는 일도 생겼다.


소수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을 열심히 하는 호아킨 피닉스의 입장에서 영화 <조커>가 달갑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후 호아킨 피닉스는 마치 사죄라도 하듯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정신질환을 가진 인물에 대해 제대로 표현했다. 조현병 혹은 망상증을 가진 환자가 바라보는 세상과 사회에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단죄하고 세상에 미안해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말이다. 이번 <조커: 폴리 아 되>는 더욱 전작에 담지 못한 메시지들을 풀어내고 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 시리즈는 악당 조커의 기원이 무엇인지 풀어내는 시리즈지만, 2편을 통해 그것이 어떻게 더욱 섬뜩하게 변모하는지 그려낸다.


다만 1편인 <조커>는 재미있지만 메시지가 위험했던 것에 비해, 2편인 <조커: 폴리 아 되>는 메시지는 완성적이나 영화의 재미가 덜하다. 특히 조커의 연인으로 알려진 할리 퀸이 등장하면서 둘이 얼마나 정신 나간 나쁜 짓을 하는지 보고 싶었던 관객들을 완전히 배신하는 내용이다. 예고편에 등장했던, 둘이 같이 계단을 내려오며 발차기하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는다. 1편에서 춤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조커가, 이번엔 할리 퀸과 조우하면서 같이 노래를 부르며 뮤지컬 영화의 색을 띠게 된다. 그런데 그 뮤지컬이 이야기 흐름을 끊어버리는 부분들이 생기고 심지어 조금 지루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실제 영화의 내용은 1편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 재판받는 법정 드라마에 가깝다. 이 영화는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에게 관심이 있다면 재미있게 볼 영화이고, '조커'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불편해할 영화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1편인 <조커>는 시도 때도 없이 웃는 병과 망상증을 가진 남자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총을 가지게 되면서, 사회에 가진 불만을 조커라는 캐릭터를 통해 터트리는 내용이다. 그렇게 조커라는 희대의 악당이 탄생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1편에서 조커로 변신한 '아서 플렉'은 우리가 아는 배트맨의 숙적이라고 하기엔 몸과 마음이 너무도 나약해 보였다. 광기와 무대체질, 이상하게 웃는 것만 닮았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당한 것을 되갚아주는 살인 말고 다른 살인을 하지 않았다. 난쟁이 동료를 놀리지도 않고, 자신이 스토킹 하던 여자를 해코지하지도 않아 오히려 불쌍하고 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2편인 <조커: 폴리 아 되>는 그 후 아서가 재판을 기다리며 벌어지는 시기의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그 사이에 조커는 영웅처럼 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나온다.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에서 나오는 '그 영화'가, 마치 <조커>1편을 말하는 것 같은 뉘앙스다. 더욱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조커가 되었던 아서는 정신과 약을 먹으며 재판 준비를 하고 있다. 변호사는 아서 플렉이 중증의 정신분열증이라는 걸로 심신 미약을 주장해 사형을 피하려고 한다. 검사인 하비 덴트(해리 로티)는 그 정도의 병이 아니라며 사형시키길 원한다. 그러던 중 아서는 노래를 부르는 치료 클래스에 있는 할리(레이디 가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할리는 조커의 추종자이고, 아서의 내면에서 조커를 부추긴다. 그러면서 변호사가 아서와 조커를 분리시키려는 행동을 비난한다.


이 영화의 부제인 '폴리 아 되(Folie à Deux)'는 공유정신병적 장애를 말하는데, 이것은 한 사람에게 나타난 망상적 증상이 주변 다른 사람에게 퍼지는 것이다. 조커의 연인인 할리 퀸이 등장하는 부제 때문에 이게 할리퀸 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인 줄 알았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아서는 할리의 말을 더 믿게 되고, 결국 변호사를 해임하고 직접 조커로 분장해 조커로써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재판 도중 벌어지는 일들은 조커가 아닌 아서의 본성을 자극한다. 친구였던 난쟁이 개리 퍼들스(리 길)와 말을 주고받는 과정은 뭔가 예리하거나 논리적인 모습은 없고, 오히려 "넌 원래 이런 사람 아니잖아"라는 개리의 말에 아서는 흔들린다. 그리고 치료감호소에서 자신을 추종하던 남자는 화난 간수에게 목 졸려 죽는다. 1편에서 자신이 조커가 되어 기분이 좋았던 것은 그저 사람들이 환호하는 무대의 중심에 있다는 이유 하나였는데, 자신이 조커가 됨으로써 슬퍼하거나 죽는 이들이 보이자 아서는 조커가 되는 것에 회의를 가진다.


더욱이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1편에서 그가 사랑했고 스토킹 하던 옆집주민인 소피 듀몬드(자시 비츠)는 아서의 엄마가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는 어릴 때 아서에게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줄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지어 들려줬고, 그래서 애칭으로 '해피'라고 불렀다고. 그 영향으로 지금도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아서는 자신을 학대하고 속였던 엄마를 죽일 정도로 증오했다. 그런데 겨우 '조커'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생각했는데, 그 조커마저 자신이 증오하던 엄마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걸 알았으니 무척 허망하지 않았을까?


아서의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트리거는 이것이다. 내 앞에 있는 당신이 진짜 나, 아서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아서는 조커를 벗어버린다. 조커는 없었다 선언한다. 조커라는 캐릭터를 통해 아서의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는 고백을 한다. 이에 조커를 추종하던 할리는 실망해 재판장을 떠나버린다. 조커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조커라는 캐릭터에 관심이 있지, 아서라는 인물에는 관심이 없던 것이다. 


이후 폭발로 재판장이 무너지고 탈출하게 된 아서는 조커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실체를 알게 된다. "도시를 다 불태워버리자"라고 말하는 그들이야말로, 아서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조커'라는 캐릭터 뒤에 숨어서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하려 하는 것이다. 바로 '폴리 아 되', 아서가 가진 망상과 정신증세, 조커라는 캐릭터가 유령처럼 사람들에게 퍼져가고 있다. 이것은 영화 내의 고담시가 악마화되어 가고 있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조커>1편을 보고 조커를 추종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다. <조커> 영화를 보고 조커를 추종하는 당신들, 당신들은 아서에게 관심이 있었나? 그저 그 캐릭터를 핑계 삼아 자신이 혁명가인양 포장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그 절정은 바로 다시 잡혀온 아서가 면회를 가는 도중 한 사이코패스에게 난도질을 당하며 죽는 마지막 장면이다. 아서의 조커는 '조커의 탄생'이었지만, 아서는 약하고 선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저 사랑받고 싶고 무대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조커라는 캐릭터가 번진 다른 범죄자는 그 내면은 필요가 없었다. 아서를 난도질해 죽인 사이코패스는 죽어가는 아서 뒤에서 자신의 입을 칼로 찢으며 기괴하게 웃는다. 그것이 바로 진짜 광기 어린 조커의 탄생이며, 그 과정은 종교의 탄생과도 비슷하다. 종교는 그 종교가 추앙하는 성인들이 아니라, 대부분 그 제자들에 의해서 미화되고 세력이 만들어진다. 코믹스의 설정에서도 조커는 다른 악당들과 달리 독특하게 본명도 알려져 있지 않고, 기원도 모호하다. <조커: 폴리 아 되>는 그런 조커의 특징을 '폴리 아 되'라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광기도 비슷하다. 역사적 맥락이나 실제 인물들에 대한 관심은 없고, 그저 어떤 행동, 말투, 또는 그런 집단의 광기에 동참하는 게 재미있으니까 그렇게 행동하며 타인을 조롱하며 무참히 짓밟기도 한다.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때는 그에 따른 맥락이 있고 책임이 주어지지만, 사회현상이 되어버린 광기에는 맥락도 책임도 없다. 그저 재미있으니까. 그래서 더욱 무서워지는 것이다.



카드 게임에서 조커는 무슨 카드든지 될 수 있는 와일드카드를 말한다. 4가지의 모양과 색 그 어느 것이든, 조커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구도 아닌 존재다. 조커 카드가 좋은 이유는, 조커인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이용할 있어서이다. 그렇게 조커는 아서의 몸을 떠나간다.

이제 진정으로 누구든지 될 수 있으므로.







*더 많은 영화의 리뷰는 아래의 <카시모프의 영화관>을 봐 주세요 :)

https://brunch.co.kr/magazine/newmovies


* 영화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해보는 글들인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시리즈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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