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치인들을 볼 때 대체로 어떤 절대적인 가치관을 요구하지만, 그 요구에 부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절대선의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절대악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내가 사는 범위 안에서 양심을 지키고 살려고 노력하고, 때론 편법을 쓰거나 정말 위급하면 몰래 부정한 방법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겉으로는 좋은 모습을 유지하고 살려고 한다. 그게 보통의 사람이다.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들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들에게도 한없이 엄격하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보통의 가족>은 그런 보통의 가족들의 이야기다. 이바노 데마테오 감독의 이탈리아의 영화 <더 디너> 원작.
하지만 보통의 가족이라 해서 소득이 보통인 가족을 말하는 건 아니다. 잘 나가는 로펌 변호사와 종합병원 의사인 상류층 집안의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보통은 '양심의 보통'이다. 마치 이 가족들의 성씨가 '양'씨인 것이 눈에 띈다. 돈이 되는 일이면 가해자를 무죄로 만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 변호사 형 양재완(설경구), 자원봉사를 다니고 자신의 신념대로 살려고 하는 소아과 의사 동생 양재규(장동건). 또 양재완의 젊은 두 번째 부인으로 가족들에게 무시당하는 지수(수현), 양재규의 연상의 부인이자 아들을 끔찍이 생각하는 이연경(김희애). 이들 가족들은 서로의 자녀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서로의 입장과 양심 갈등 등이 영화를 끌고 나간다. 냉철한 철면피라고 생각했던 재완에게도 양심적인 마음은 있고, 착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재규에게도 위선적인 부분이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내내 보이는 어떤 이미지들이 더욱 신경 쓰였는데, 어떤 생명에 대한 대부분의 가해나 죽음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행해지는 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들이라는 뉘앙스의 장면들이다. 다른 생명과 내가 가족과 같이 같은 바운더리에 있을 때는 양심도 느끼고 적극적으로 보호하려 하지만, 야생동물과 인간과 같이 다른 바운더리에 있을 때는 그런 것이 없다는 점이다. 재완은 멧돼지사냥을 해 멧돼지를 총으로 쏴 죽이고, 재규는 로드킬로 고라니를 죽이게 된다. 재완은 단지 유희를 위한 적극적 살해지만, 재규는 어쩌다 마주하게 된 사고 살해다. 그러나 그 결과의 끔찍함은 같다. 사냥개에게 물리고 총에 맞아 죽은 멧돼지나, 길에서 차에 치여 붉은 핏자국을 그린 고라니나.
삶과 죽음에 경중이 있을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떤 죽음은 그럴만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죽음은 안타깝다고 여긴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여 끔찍하게 타국인을 죽이면서도 당당하고 그 죽음을 조롱할 수 있는 건, 철저히 상대방을 '자신의 가족' 바깥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게 모르게 어떤 죽음에 대해 가치를 매기기 쉽다. 그것이 실제 혈연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연관되면 더욱 그렇다. <보통의 가족>은 그러한 삶과 죽음의 가치, 양심의 척도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보통의 가족의 모습을 그리려 해서인지, 캐릭터들이 진부할 정도로 평범하다. 그들의 관계와 소소한 갈등, 대사들은 클리셰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전형적인 모습들이다. 그래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극의 갈등이 관객에게 크게 전달되지 않는다. 또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재완과 재규의 심리가 변하는 과정인데, 그 과정이 머리로는 어떤 마음인지 이해가 가지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보통의 가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평범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어설픈 CG도 재미가 반감하는 데 한 몫했다. 차에 치이는 장면이나 동물이 죽는 장면에서 마치 B급 인도영화에 나올 법한 CG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전달하려는 이야기는 알겠지만, 재미나 설득력은 조금 아쉬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