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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Oct 31. 2024

<더 킬러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영화감독 4명이 뭉쳐, '킬러', '에드워드 호퍼',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모티브로 앤솔러지 영화를 만들었다. <아무도 없는 곳>의 김종관 감독, <연애의 온도>의 노덕 감독,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 특히 이명세 감독은 강동원 주연의 <M> 이후 17년 만의 새 작품이라 반가웠다. 


각각의 영화들은 '킬러'를 주제로 하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각 영화마다 어떤 식으로든 등장한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모퉁이의 한 식당을 그린 그림인데, 그 안의 사람들을 멀리서 잡아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게 하는 그림이다. 4명의 감독들도 '킬러'의 다양한 모습을 자기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더 킬러스>는 마지막 이명세 감독의 파트 <무성영화> 말고는 그다지 어려운 영화가 아니라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이 4개의 영화는 블랙코미디의 색채를 띄고 있는데, 특히 킬러가 킬러답지 않게 굉장히 허술하고 조악하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학습된 킬러들은 어둡고 섬세하고 심지어 철학적인 면모도 갖춘 모습이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킬러들은 그렇지 않다. 죽이지 않으면 안 되니까 죽인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것이 시켜서이든, 돈 때문이든, 힘이 넘쳐서이든. 거기에 대단한 명분은 없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또 이 4개의 영화가 전부 다, 입장이 뒤바뀌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살해 위협을 받는 입장에서 죽일 수 있는 입장으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신하고 둔갑하고 변모한다. 킬러라는 것은 고정된 캐릭터가 아니라 유동적이다. 그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변신>은 흡혈귀를 모티브로 한 블랙코미디지만,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신하는 모습은 순간 섬뜩할 정도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여 다른 사람을 가해하는 일이 아주 빈번하게 일어난다. <보통의 가족>에서도 학폭을 당한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하는 노숙자에게 화풀이하지 않는가. 힘을 얻었다 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그 폭력성이, 타인의 눈에 얼마나 괴물같이 보일지 영화를 보며 느껴진다.


<업자들>은 실제 중국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살인 청부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 결국 엉뚱한 피해자가 될뻔한 사람이 다시 돈을 주고 하청을 시키는 과정, 마지막에 일을 받은 외국인이 '최저임금'으로 고소한 것까지. 특히 선량한 모습으로 절대 죽어야 할 사람이 아닌 것 같던 피해자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죽여야 할 대상을 찾아 서슴없이 살인을 의뢰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언제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이 영화에서 마지막에 10만 원을 받고 살인을 도와주기로 한 상태는 아무래도 봉준호 감독이 카메오로 출연한 것 같다고 느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봉준호가 카메오로 나왔다는 정보는 볼 수 없어서 당혹스럽다. 하지만 영화 끝나고 목소리 비교해 봤는데 너무 똑같은데. 봉준호 맞을 거야 아마. 아마도..? 아닌가..? 쳇. 모르겠다. (알고보니 이명세 감독의 아들 이반석이라고 한다. 보니까 이명세 감독하고도 닮았다.)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는 79년, 10.26 사태 이후 혼란스럽던 국내 상황이 담겨 있다. 이 영화에선 모두가 유명한 살인자인 염상구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의 얼굴도 모르고 나이도 모른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진다. 79년 당시 한국은 시대의 봄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봄을 기다렸다. 하지만 정작 등장한 통치자는 기대했던 것과 아주 다른 인물이었다. 염상구에 대해 알고 있는 단 한 가지는 수선화 문신이 있다는 것이다. 수선화는 예쁜 꽃이지만, 뿌리와 잎에 독이 있는 독초이다.


<무성영화>도 역시 79년 한 발의 총성이 있었고, 그 이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숨어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웃지 않는 스마일, 말하지 못하는 보이스와 함께 선샤인은 식당을 하고 있는데, 그곳에 두 명의 킬러가 찾아온다. 이 영화도 10.26 당시 혼란스러운 한국의 정황을 그대로 나타낸 듯하다. 통제되고 한정된 상황에서 숨어 지내는 시민들, 누굴 죽여야 하는지도 모른 채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고 협박하는 킬러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침묵을 강요한다. 하지만 그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던 선샤인과 보이스 스마일은 킬러와 싸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는 엔딩에 영화는 컬러로 바뀐다. 실제로 컬러방송은 그 이전부터 기술은 있었지만, 박정희 시절에는 컬러방송을 하지 못했다. 완전한 전체 컬러 방송은 81년 1월 1일이 되어서야 하게 된다. 과연, 여기에서 숨어 살던 이들은 누구일까? 침묵하지 말고 이제 행동해야 할 때인,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더 많은 영화의 리뷰는 아래의 <카시모프의 영화관>을 봐 주세요 :)

https://brunch.co.kr/magazine/newmovies


* 영화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해보는 글들인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시리즈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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