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에 나왔던 명대사로, 콤모두스에게 온 가족과 집안이 도륙당한 뒤 죽음의 문턱에서 검투사로 살아 돌아온 막시무스가 코모두스 앞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죽음 앞에서의 당당함, 복수의 대상을 눈앞에 두고 복수를 다짐하는 기개 등 모든 면에서 가슴 벅차오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막시무스 역할을 맡은 러셀 크로우는 이 영화로 세계적인 배우가 된다. 이 영화는 스타일적으로도 대중영화 답지 않게 실험적 연출이 부분 부분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막시무스의 감정과 정서를 잘 드러내는 명 연출로 남아 있다.
그 24년 만의 후속작 <글래디에이터 2>는 많은 면에서 기대와 우려를 하게 했다. <탑건: 매버릭>처럼 시대를 넘는 명작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저 그런 수많은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에 동참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글래디에이터 2>는 전작에서 이어지는 스토리로, 전작의 의문점을 일면 해소해 주는 면이 있으며 반가운 등장인물들도 볼 수 있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아주 조금 모티브를 따온 이야기로, 1편의 주인공인 막시무스나 2편의 주인공인 하노 둘 다 역사기록에는 없는 인물이며 황제들과 원로원들의 스토리도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르다.
<글래디에이터 2>는 멋진 전투장면도 많이 들어가고, 군데군데 잔혹한 장면들도 들어가며 관객들에게 재미를 준다. 평범한 역사판타지 블록버스터로써는 큰 손색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래디에이터>의 후속작이라고 보기엔 몇 가지 큰 단점이 있다. 캐릭터들 액션 스타일이 전무하고, 위와 같은 가슴 벅찬 장면이나 연출이 없으며, 캐릭터의 감정선이 산만하다.
액션 스타일과 캐릭터의 부재
액션 영화에서 액션은 캐릭터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가 다른 여타 검투사들과 다른 점은 용맹함이나 뛰어난 검술도 있지만, 그보다는 '리더십' 그리고 수많은 전장에서 쌓은 '군대 전술'이다. 그리고 싸움을 하기 전 그곳의 흙을 손바닥에 바르며 냄새를 맡는 특유의 모습은, 그가 농사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흙에 대해 가지는 애정을 잘 보여준다. 막시무스뿐 아니라, 같이 친하게 지내는 검투사들마다 액션의 특징이 있다. 흑인인 주바와 게르만인 거인 하켄도 각자의 특징을 살린 액션을 보여준다.
하지만 <글래디에이터 2>에는 그런 연출이 전무하다. 하물며 주인공 하노가 살고 있는 누미디아와 로마제국군이 무엇이 다른 지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선 검술도 전술도 비슷하게 표현해서, 하노가 가지는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로 누미디아는 기병으로 유명하고 갑옷 없이 짧은 검으로 싸우는 게 유명하다고 하니, 그 점을 잘 살린 전투를 했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그리고 주변 동료 검투사들은 검술은 물론이고 이름이나 캐릭터들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검투사들 간의 전우애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노의 모습이 그저 막시무스를 흉내 낸 것처럼 보이듯, <글래디에이터 2>는 <글래디에이터>를 흉내 낸 것처럼 보일 뿐이다.
또한 전편의 빌런이었던 콤모두스는 호아킨 피닉스의 젊은 시절 명 연기와 어우러져 다채로운 빌런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광기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고, 상실의 아픔이 어떻게 욕망으로 변하는지 보여주는 인간이다. 그러나 2편에서의 폭군인 게타와 카라칼라는 콤모두스보다 더한 역사적 폭군임에도 불구하고, 그 서사나 내면이 전혀 그려져있지 않아 납작한 캐릭터가 되었다. 그저 붉은 머리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빌런이 되는 것인가 좀 실망스러웠다. 게다가 여기서도 할리우드에서 만연한 진저 차별이 드러나는데, 원래 카라칼라의 모습은 고대부터 검은색에 가까운 머리색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진저 차별이란 서양에서 얼굴이 하얗고 주근깨 있는 붉은 머리를 '이상한', '머리 나쁜', '미친' 캐릭터로 그리며 은근히 혐오하는 문화다.
관객을 사로잡는 연출의 부재
<글래디에이터>에는 다른 역사물과 차별되는 멋진 포인트들이 있었다. 야만족이나 도시 외곽의 시골과 다르게 서늘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비된 로마의 모습과 궁궐이 그것이다. 또한 콜로세움의 웅장함은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보이도록 일부러 연출했다. 하지만 이번 <글래디에이터 2>에서는 CG의 발달로 먼지 나는 로마의 모습에 현실감을 더 주려고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노예 검투사들이 콜로세움과 로마에 대해 가지는 마음이나 동경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줄거리의 구성이 1편과 2편이 비슷한 것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많은 인기 블록버스터 속편이 그런 공식을 따르고 있고, 관객도 어느 정도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비슷하게 할 거라면 더 똑같게 만들었어야 한다고 본다. 1편에서 막시무스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은 그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고조되며 막시무스의 멋짐이 폭발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2편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복수심이나 개성을 드러내는 장면이 없다. 충분히 그럴만한 여지가 있는 소재와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검투사는 그저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관객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1편의 막시무스를 데리고 있던 주인 프락시모는 말한다. 관중의 환호와 인기를 얻어야 그것이 검투사의 힘이 되고, 그것이 황제로 하여금 자유를 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2편에서는 하노가 검투사로 승리해야 하는 이유가 딱히 없다. 스토리상으로 볼 때, 그가 굳이 검투사여야만 하는가 싶기도 하다. 그러기에 2의 검투장면들은 멋져 보이게 애를 썼지만 절박한 이유가 없으므로 밋밋하다.
캐릭터 감정선의 산만함
1편에서는 막시무스, 콤모두스, 루실라 셋이 가지는 상실감과 감정이 잘 전달되었었다. 이야기가 심플하기도 했지만, 각자 나름의 이유로 감정선을 영화 끝까지 그대로 타고 갔다. 그러나 2편에서 하노의 감정선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가 가진 분노와 복수심이 왜 중간에 그렇게 바뀌는지, 그 설명이나 연출이 부족하다. 루실라는 더욱 겉도는 느낌이다.
특히 산만하다고 느낀 것은 다름 아닌 관중이다. 콜로세움에 와 있는 관중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 잘 표현이 되지 않았다. 1편에서 관중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과 혼연일치되어, 막시무스의 매력에 푹 빠져들어 그를 응원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2편의 관중들은 혁명을 원하는 건지, 처벌을 원하는 건지, 영웅을 원하는 건지 잘 알 수가 없다. 그저 황제와 검투사의 연설 등에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토리도 마지막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데, 캐릭터의 감정선에 이유가 부족하다 보니 스토리의 개연성도 떨어진다. 더군다나 대규모의 군대가 등장하는 마지막 씬은 모든 면에서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글래디에이터>는 단순한 액션 판타지가 아니다. 거기엔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울리는 그것이 있다. 2편은 흥미진진한 역사 판타지 블록버스터와 팝콘무비로써 즐길 거리는 충분히 있으나, 그것이 <글래디에이터 2>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기에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심지어 음악마저도 중간중간 막시무스 회상장면에서 1편에서 한스 짐머가 만든 테마 음악이 나오는데, 그때만 음악이 귀에 들어왔고 나머지는 무슨 음악인지 기억도 잘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