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뮤지컬인 <위키드>가 영화화되었다. <위키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을 다룬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즈의 마법사>를 안다면 새롭게 보이는 캐릭터들의 과거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더불어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사상 가장 흥행한 2위의 뮤지컬답게, 귀를 즐겁게 하는 멋진 노래들이 춤과 아름다운 화면과 함께 울려 퍼진다.
<오즈의 마법사>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캔자스에 살던 도로시가 토네이도 때문에, 집이 통째로 날아가 '오즈'로 떨어진다. 이때 동쪽마녀가 도로시의 집에 깔려 죽는다. 동쪽 마녀는 발과 구두만 집 밖으로 나와있고, 도로시는 그 구두를 신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마법사를 찾아간다. 가는 길은 북쪽마녀가 가르쳐 준다. 가는 도중 뇌가 없는 허수아비, 겁쟁이 사자,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을 만난다. 모든 것이 초록색인 에메랄드 시티에서 마법사를 만나고, 사악한 서쪽마녀를 물리치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도로시 일행은 사악한 서쪽마녀를 물리치고 돌아왔지만 마법사는 진짜 마법사가 아니라 도로시처럼 어쩌다 오즈에 오게 된 오마하 사람이고 서커스 단원이었다. 에메랄드 시티나 거대한 마법사의 얼굴도 전부 서커스를 이용한 속임수였던 것. 도로시는 그가 타고 온 기구를 타고 돌아가려 했으나 가지 못했고, 대신 신고 있던 동쪽 마녀의 구두로 돌아갈 수 있었다.
<위키드>의 두 주인공인 글린다와 엘파바는 바로 <오즈의 마법사>의 북쪽(남쪽) 마녀와 서쪽 마녀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착한 마녀와 사악한 마녀로 나오는 이 둘의 과거를 다루며, 과연 악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가? 선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또 우리가 선이나 악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보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과거를 비틀고 현실 사회와 맞물리는 편견과 혐오, 또는 맹목적인 추종을 돌아보며 입체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를 가진 채 태어난다. 서양에서 초록색은 오래전부터 독을 상징했으며, 때문에 악마를 초록색으로 묘사하는 전통이 있었다. 실제로도 초록색 염료에 독성이 강해서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나 초록색 물감을 쓰는 화가들이 병에 걸리거나 죽기도 했다. 마녀가 무언가를 끓이고 있는 장면에서 먹기 힘들어 보이는 초록색의 마녀수프가 보이기도 한다. 얼핏 피부색이나 인종에 아무런 편견이 없어 보이는 이 오즈에서, 단 한 명 엘파바는 혐오와 편견의 대상이다.
영화 <위키드>에서는 엘파바 배역에 흑인인 신시아 에리보를 캐스팅하면서, 인종이나 피부색 외모 출생등으로 인해 차별받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보여주고 증명하려 했을 뿐인데,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해보다는 오해가 쌓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울분이 쌓여 영화의 마지막에 엘파바가 서쪽마녀로 탄생하는 장면은 노래 <Defying Gravity>와 함께 절정에 달한다. 화려했지만 긴 러닝타임에 조금은 지친 관객에게, 어마어마한 극적 쾌감을 준다. 사악한 마녀가 이렇게나 멋있어도 되는 것인가. 최근 나왔던 뮤지컬 영화 중에, 또한 원작을 영화화한 것 중에 이 정도로 재미를 주는 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보면서 몇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이 영화는 오즈 사람들을 인종 간에 차별을 두지 않고 골고루 캐스팅해서, 오즈라는 세상이 '모두 어우러져 사는 세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 초록색의 엘파바만이 놀림을 받는다는 설정은 조금 와닿지가 않았다. 이미 서로의 피부색이나 외모의 다름, 출신마저도 신경 쓰지 않는데, 왜 유독 초록색이라는 것만으로 그렇게 놀려도 되는 것일까. 클럽에서도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이상한 옷들을 다들 입고 있는데, 엘파바의 의상을 가지고 놀리는 것도 좀 이상했다. 오즈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오히려 메시지를 약하게 만든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또한 주인공을 제외한 군중을 그리는 방식이 좋다고 보이진 않았는데, 뮤지컬을 그대로 옮겨서 그런지 군중들이 전부 아무런 독자적인 생각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로 보였다. 뮤지컬에서야 합창과 군무를 위해서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영화에서마저 꼭 그랬어야 했을까? 찾아보니 원작에선 사자를 구할 때 다른 반발하는 학생들과 도와서 일을 했다고 나오는 모양이다. 몇몇 사람들의 선동으로 모든 군중들의 마음이 한 번에 확확 바뀌는 모습은, 정치인들이 대중을 생각하며 선동하는 모습과도 닮아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실제 대사와 함께 나오기도 하고.
더군다나, 글린다를 짝사랑하던 보크의 캐릭터는 더욱 이상했다. 원래 보크는 먼치킨이긴 하지만, 딱히 진저(빨간 머리)라는 정체성이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원작에도 그렇고, 원 뮤지컬에서도 진저 배우가 맡지 않았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진저로 캐스팅했는데, 주인공들이 다니는 시즈 대학교의 다른 모든 대학생들이 인종이 다르지만 한결같은 보통 사람인 것에 비해 보크는 말도 더듬고 소극적이고 못생긴 찐따처럼 그려지며 줄거리를 봤을 때 좋은 방향의 캐릭터는 아니다. 왜 이 캐릭터에게, 마치 '진저 차별'이 생각나도록 진저를 캐스팅했을까? 저번 <글래디에이터 2>에서도 카라칼라 형제를 역사와 다르게 진저 캐릭터로 만든 것이 요새 흐름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외모로 차별을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 주제인 영화에서 진저를 차별하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좀 다른 얘기지만, 미술을 하는 입장에서 영화 시작에 나오는 굴림체 자막은 정말 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가독성도 떨어지는데 왜 그렇게 했을까. 옛날 느낌을 내기 위해서라면 바탕체나 손글씨로 해도 좋았을 것을.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꽤나 재미있게 봤지만, 다 보고 나오며 잘 생각해 보니 몇 부분은 물음표를 띄게 되는 영화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