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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Aug 11. 2021

하라는 대로 한 것 같은데

잘 다니던 인턴쉽에서 잘린 이유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말도 안 되는 월급을 받다가 잘린 후, 나는 바로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정보처리기능사는 초등학생도 보는 시험이라, 그리 어렵진 않았지만 어쨌든 비주얼베이직으로 무언가를 구현하는 실기시험이 있었기에 공부를 좀 했다. 시험 준비기간도 짧았고, 개인용 컴퓨터도 마땅히 없어서 형 집에서 어렵게 공부해서 결국 간신히 합격했다. 이제 자격증이 있으니 산업기능요원을 뽑는 회사에 정식으로 지원하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았는지 알았다. 군대 대신 가는 산업기능요원이라고 해서, 그 회사의 평사원들 연봉과 차별을 두면 안 되는 것도 알았고, 인턴기간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등 병역특례 T.O. 는 각 회사마다 자리가 정해져 있고, 보통 회사마다 한 해에 1명에서 많아야 5명 내외였다. 따라서 일반적인 취업보다 훨씬 어려웠고, 특별한 포트폴리오가 없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난 이전 회사에서 몇 개월을 굴려가며 만든 작업들 중 쓸만한 것들을 골라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계속해서 이력서를 보냈다. 휴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1년밖에 할 수 없었기에 벌써 10월이 넘어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IT제품 유통을 하는 꽤 큰 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새로 만든 마케팅 부서가 있는데 거기에 채용하고 싶다는 얘기. 그래서 용산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건물 전체가 회사 소유인 기업에 처음 면접을 보러 가서 조금 떨렸지만, 드라마에서나 보던 회사 느낌에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케팅 부서에 들어가서 면접을 보는데, 그 부서 전체에 자리가 3자리뿐이었지만 사무실이 그 전 회사의 전체 사무실 크기랑 비슷했다. 하도 당했던 게 있던 탓일까, '그래, 이런 게 진짜 회사지...'라는 생각으로 면접을 봤고, 바로 내일부터 출근하자고 했다. 그리고 내가 디자인을 할 장비로 와콤 타블렛을 가장 좋은 걸로 지원해주겠다고. 3개월 인턴기간 동안, 연봉은 1000 정도였고 인턴이 끝나면 1600을 준다고 했다. 그게 여기 회사의 신입사원 연봉이라고. '인턴기간인데 전 직장보다 두배나 많잖아? 역시 제대로 된 회사는 다르네!' 생각을 하며 기뻐서 용산 지하도를 춤추듯 뛰어왔다.



출근을 하고 인턴쉽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딱히 뭘 시키질 않았다. 커다란 방 안에서 뭘 하는 건지 팀장, 또 다른 산업기능요원 선배, 그리고 나 셋이서 그저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이전 직장에서 항상 밤을 새우며 무언가를 만들고 보고하기도 하고, 나름 프로젝트를 혼자 맡아하기도 했던 터라 이런 상황이 조금 익숙지 않았다. 그래서 '뭘 하고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면, 지금은 딱히 업무가 없으니 대기하고 있으라는 말 뿐이었다. 아마도 여기에서 내 업무는 회사 홈페이지 만드는 일, 플래시 배너광고나 홍보용 마케팅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만드는 일일 텐데, 지금 당장은 없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나난 칼퇴근을 했다.


그러다가 배너를 만드는 일이 들어왔다. 난 이전에 작업한 경험을 최대한 살려서, 최대한 멋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기존 플래시 배너가 그저 깜빡거리며 이미지가 지나가는 정도였다면 난 영화 예고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심혈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론 아주 칭찬을 받았다. 그때, 연말이라고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선물을 보내주었다. 사장님의 인사가 들어있는 김치 박스세트였는데, 기존에도 그런 걸 받아본 적이 없어서 살짝 감동했다. 야근도 없고, 일은 편하고. 계속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홈페이지 디자인을 해서 올리는 족족 팀장이 마음에 안들어 하는 것이었다. 내가 디자인을 못했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었다. 나중에 팀장이 직접 해서 보여준 디자인을 보니, 입체적인 버튼 이미지 등 나와는 디자인 방향이 다른 것이었다. 난 색과 비율을 중요시한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했으니까. 내가 이전 회사에서 배운 것은, 웹에서는 로딩 속도가 중요했고 빠르게 로딩하려면 이미지보다는 html 코딩을 이용한 색상과 분할 배치가 중요했었다.

2000년도 당시의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메뉴 바 이외엔 대부분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에 내가 하려고 했던 디자인 컨셉인 2000년도 IBM 홈페이지.


웹사이트 디자인은 당시의 브로셔 디자인과 거의 동일하게 흘러간다. 난 당시의 트렌드에 맞게 중후한 기업의 느낌을 내기 위해 IBM과 비슷하게 가져갔는데, 당시 미국은 여전히 인터넷 속도가 느렸기에 저런 식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었었고 우리나라는 메가패스 등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면서 인터넷 속도가 좋아져 웹페이지가 입체적으로 바뀌기 시작하던 때였다. 팀장은 그런 이미지를 좀 더 선호했다.


2000년도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기업 홈페이지 디자인


사실 디자인적인 이야기를 하면, 위와 아래의 디자인은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다. 웹디자인은 플래시가 나오면서 더 무겁고 진한 느낌으로 디자인이 바뀌다가, 플래시가 없어지고 html5의 반응형 웹으로 바뀌면서 디자인은 다시 심플해졌다. 대신 인터넷 속도가 빨라져서, 큰 사진이나 영상을 통째로 써버리는 경우들이 생겼다. 디자인은 디자인 자체뿐 아니라, 그 디자인이 적용되는 기술에 따라 디자인에 제약이 생긴다. 그리고 난 고전적인 2D 브로셔 디자인스러운 아래 디자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도 했다.


그림자를 넣고 입체적으로 만들어 잘라 넣으면 더 튀어나오고 들어가 보인다고 하면서, 나와 팀장은 디자인에서 이견을 보였다. 물론, 미국 기업 홈페이지가 색상 배색이 좀 원색적이라 우리나라 홈페이지에 비해 튀는 감이 있어서, 색상은 바꾸어서 디자인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에 대해서 팀장과 나는 서로 맞지 않았다. 몇 번의 조율 끝에 나도 팀장이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해서 주었다. 그 정도면 팀장이 원하는 대로 해냈다. 그런데 팀장은 내가 한 것을 완전히 갈아엎고, 다음날 자신이 한 것을 보여주며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을 1시간 동안 늘어놓았다. 내가 봤을 때 다른 점은 별로 없어 보였다. 가독성이 떨어지거나 디자인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선호하는 디자인의 차이인 것 같았다. 나는 내 일이 다 끝났기도 하고,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 그만 퇴근하겠다 했다. 팀장과 선배는 계속 작업 중이었다. 팀장은 나보고 들어가 보라고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침장이 나에게 말했다.


"카시모프 씨, 이번 달 말까지만 나오면 돼요. 그동안 수고했어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당시는 벌써 1월이 되었고, 곧 있으면 난 복학해야 했다. 그리고 업무상 이견이 좀 있었다고 해서 자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월말은 1주일 정도 남았는데, 그동안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다른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1월이 가기 전에 산업기능요원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영락없이 복학해야 했다. 난 등록금도 없었고, 휴학을 1년 써버린 것에 대해 남는 게 없이 그냥 군대로 끌려가야 할 처지였다. 그래서 그렇게 쿨하게 말하고 있는 얼굴 앞에 차마 난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왜 잘렸나요? 제가 실력이 없는 건가요? 아니면 성격이 마음에 안 들었나요? 일하다 보면 부딪힐 때도 있고, 조율하면서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 팀장님이 만든 디자인도 엄청 구려요!"





사실 나중에 지나고 알게 된 것이지만, 내가 잘린 이유는 단순히 팀장과 이견이 있었다거나, 모두들 하는 야근에서 얄밉게 빠져나가서가 아니었다. 그 팀의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했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일단 팀장은 나와 여러 가지로 성격이 맞지 않았다. 연예인 가십거리 이야기하면서 시간 보내는 거나, 마초적인 성향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거나, 일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나. 그래서 난 갈수록 점심을 따로 먹는 일이 많아졌다.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서로 간의 친밀감으로 공감대가 형성되면 서로가 얼굴 붉히지 않고 해결해보려 할 텐데. 물론, 내가 그런 이유는 바로 이전 직장에서, 서로 간의 정을 빌미로 말도 안 되는 업무량만 강요하는 회사에 질린 탓도 있었다. 너무 극단에서 극단으로 갔던 것이다. 일을 할 때는, 당연히 일과 관련되게 깔끔한 업무처리도 중요하지만 업무능력을 보여주기 힘든 인턴이나 신입사원은 다음과 같은 것도 중요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호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날을 세우지 않고 부드럽게 대처했더라면? 보여주기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라도 보였다면? 팀장과 방향이 달라도 의견을 잘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아마 인턴쉽을 통과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첫 한 달은 일하는 동안 아주 성공적으로 보냈으니까. 이 얘기는, 무조건 야근하고 회식하고 상사 비위 맞추고 하라거나, 일은 못하는데 사람만 착해져라 라는 뜻이 아니다. 회사는 사람이 모여있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일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가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어있다. 적어도 몇 년을 얼굴 마주치고 살 부대끼며 일을 하게 될 거라면, '같은 공간에 계속 둘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 회사에서 난 그러지 못했다. 뭐 다시 돌아보면, 합격하면 그곳에서 3년을 일해야 한다 생각하니 아찔하긴 하다. 떨어지길 잘했다.



그럼 이제 1달 안에 나는 또 다른 회사를 구해야 했다. 2달 반 동안 만든 배너와 이전 회사에서 추린 포트폴리오를 들고, 구직사이트를 뒤지며 하루에도 수십 통 이력서를 보내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가 복학 결정을 1주일 앞둔 1월 마지막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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