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이 끝나고 8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3차 대전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고, 핵무기 등 예전보다 훨씬 발전된 무기들 덕분에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록 근 몇십 년 동안 세계적으로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은 극우가 재집권하고 아베가 저격당하면서,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더 드러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공격한다고 위협을 하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미국에 큰소리치고 있다. 세계는 점점 전쟁을 준비하는 듯 하다. 러시아, 중국, 북한, 일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은 정말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당시 디즈니를 뛰어넘는 엄청난 퀄리티를 보여준 애니메이션 <아키라>
누구나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일본 명작 애니메이션 <아키라>를 만든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은, 굉장히 사실적인 그림의 만화가 겸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당시 만화는 일본인을 서양인처럼 눈을 크게 그리고 과장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오토모 카츠히로는 일본인을 정확히 일본인처럼 그렸으며 여성에 대한 성적인 과장도 전부 배제했다. 그런 오토모 카츠히로의 작풍은 후대에 일본 만화의 새로운 풍조를 가져왔고, 일본 만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아키라>는 전 세계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며 '저패니메이션'의 황금기를 이끈 만화이자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최근에는 이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에 '2020년 도쿄 올림픽 중지'라는 글귀가 벽에 쓰여 있어서, 2020년의 코로나19 팬데믹의 예언이 아니냐는 농담이 돌아 화제가 되었다.
도쿄 올림픽 147일 남았다는 표지판 아래에 '중지다 중지'라는 낙서가 보인다
오토모 카츠히로는 일본의 '전공투 세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공투 세대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68 혁명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일어난 68~70년에 걸친 좌익 폭력 학생운동권 세대를 말한다. 이들은 우익정부에 맞서서 시위를 하다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경찰에 맞서 싸우면서 점점 폭력적으로 변했는데, 일본은 한국과 달리 60살 이후의 나이 든 세대가 더 진보적이고 그건 전공투 세대의 역할이 크다. <아키라>에 나오는 정부와 폭주족들의 싸움은 그것을 오마주한 것이다. <아키라>는 얼핏 보면 사이버 펑크 디스토피아 시대의 초능력 병기를 만드는 SF물이지만, 그 내용에서는 아직도 무리하게 시민들을 탄압하고 시민을 전쟁병기로 활용하고자 하는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아키라>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런 오토모 카츠히로의 작품 중에 <메모리즈: MEMORIES, 1995>라는 훌륭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 작품은 후에 <애니 매트릭스>, <철근 콘크리트>를 만들게 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STUDIO 4℃의 작품이다. <메모리즈>는 총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으로, SF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도 역시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 그리고 원작과 각본은 세편 전부 오토모 카츠히로지만 감독은 세편이 다 다른 만큼, 각기 다른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3개를 감상할 수 있다.
그녀의 추억(彼女の想いで, Magnetic Rose)
<그녀의 추억>은 <아키라>의 작화 감독 보좌, <마녀 배달부 키키>의 원화를 맡았던 모리모토 코지가 감독이다. 모리모토 코지는 또한 STUDIO 4℃의 창립자다. <아키라>의 유명한 오토바이 추격 장면은 이 사람 작품인 만큼 애니메이터로써 오토모 카츠히로의 신뢰를 받고 있다. 음악은 <카우보이 비밥><천공의 에스카플로네>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계의 거장인 칸노 요코가 맡았다.
<그녀의 추억>은 첫 씬부터 또 한 번의 오토모 카츠히로의 '코로나19 예언'이 나와서 화제가 되었었는데, 주인공이 타고 있는 우주선의 이름이 '코로나'호라서다. 코로나라는 단어는 원래 천문학에서 천체의 '플라스마 대기'를 나타낸 것이라 흔한 단어 긴 하지만, 우연의 일치 치고는 재미있다.
우주선 코로나는 조난신호를 받고 구조를 하러 찾아간다. 그러나 그 조난신호는 어떤 음악으로 되어있었는데, 파로 푸치니의 '나비부인' 오페라였고 신호가 나오는 곳은 우주 쓰레기들이 모여있는 곳 한가운데 있는 어떤 커다란 인공 행성이었다. 승무원인 하인츠와 미겔은 그 안으로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잠입한다. 그 안에는 겉보기완 다르게 아주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오페라하우스처럼 꾸며져 있다.
우주 오페라하우스는 아무도 없는 듯 보이고 오래되어 망가져 보였으나, AI 컴퓨터는 작동하는 듯 보인다. 그들 앞에 시종 드는 로봇이 나와서 하인츠와 미겔에게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 마님."이라는 말을 한다. 이 대사는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그들은 음침한 분위기의 우주선 내부를 살피지만 홀로그램과 환상으로 현실과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래부터 다음 파트 전까지는 <그녀의 추억>파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인공 행성은 에바 프리델이라는 과거의 프리마돈나를 추억하며 지어진 것이었다. 에바 프리델은 아주 잘 나가던 프리마돈나였으나, 병으로 노래를 못 부르게 되었고 평단의 혹평을 받았다. 그녀의 모든 행복이 떠나가고 남은 것은 연인이었던 카를로뿐. 그러나 카를로는 그녀를 배신하고 떠나갔다. 카를로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녀는 슬퍼하며 세상과 등을 돌린 것이 미디어에서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 우주선에서는 미겔과 하인츠가 각각 다른 모습의 환상이 펼쳐진다. 미겔은 처음부터 투덜거렸던 대로, 여러 여자들과 놀던 시절을 추억하며 사는 바람둥이 남자다. 하인츠는 가정적인 남자로, 부인과 딸과 아침식사를 하는 장면이 환상으로 등장한다. 미겔은 그 환상 속에 곧 아무 저항 없이 빠져버리지만, 하인츠는 그것이 추억이라는 것을 곧 알아챈다. 딸은 자신이 출발하기 얼마 전 죽었기 때문이다. 하인츠에게는 계속해서 어린아이가 땅에 떨어져 부서지는 환상이 나타난다.
과거의 추억에 갇혀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것을 반추적 사고라고도 하는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계속해서 곱씹게 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의 행복이나 상처가 짙으면 짙을수록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에 자신을 가두려 한다. 에바가 추억의 화신이 된 것은 카를로가 배신하던 그때였다. 하인츠는 에바가 카를로를 죽였다는 것을 알아챈다.
과거의 행복이나 상처에서 벗어나 현실을 인지하는 것은 과거를 극복하는 중요한 단계다. 하인츠는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묵묵히 감내하는 사람이었고, 계속해서 딸이 죽는 고통받는 환상과 마주하지만 그것을 극복해낸다. 에바는 그 상처와 행복을 보여줌으로써, 이곳에서는 환상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에바는 푸치니의 '나비부인'을 노래한다. <그녀의 추억>에서 이 노래가 메인 테마로 등장하는 건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당시 유럽에 만연했던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20세기 초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한 미 해군 핑커톤과 게이샤 쵸쵸상의 이야기로, 전형적인 현지처 스토리다. 제국들이 식민지를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 보여주기도 하고, 동양의 여성이 어떻게 서양에 소비되었는지 아주 잘 드러낸다. 순종적이고 가부장적인 동양인의 모습, 하염없이 기다리다 자결하는 모습과 더불어 시종일관 서양 오페라 가수들이 게이샤 분장을 하고 부르는 오페라다. 그래서 현재 서양에서는 너무 인종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작품이라며 비판을 많이 받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는 이 오페라를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어느 개인 날'은 <그녀의 추억>에서도 메인 테마로 불리는 노래인데, 이것을 부르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 소프라노가 많다고 한다. 여기서 이 노래는 일본제국 시절 추억을 곱씹고 있는 일본 자신들을 비유하기도 한다.
80년대 최고 호황을 누리던 일본은 90년대에도 여전히 지도자층은 극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아시아인이 아닌 유럽인이라 주장하기도 하며, 자신들을 신비로운 일본, 제국이었던 일본을 강조한다. 애니메이션이 비판하던 시절이 훌쩍 지나고 시대가 더욱 바뀌었음에도, 2022년 현재에도 여전히 일본 극우는 전쟁에 대한 사과는 거의 없고 주변국과의 마찰을 일삼고 있다. 또,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려고 하며 제국 시절, 군국주의로 돌아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거기에 더불어 미군의 배가 들어와 자신을 데려가 줄 것처럼 노래하는 쵸쵸상, 피해자이자 가련한 모습인 쵸쵸상이 자신들이라 노래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인츠는 그것에 정면으로 대적한다. 하인츠라는 이름은 독일식 이름이다. 독일은 똑같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전범국가인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과하고 전범들을 숙청하며 지금과 같은 유럽연합의 중심국가 독일로 다시 우뚝 섰다. 과거에서 머물지 않고 벗어난 셈이다. 하인츠는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딸의 죽음과 환상을 이용하려는 AI 로봇에게 대항한다.
"추억은, 도망치는 곳이 아니야!"
에바의 과거에 대한 집념과 원념이 AI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AI의 프로그래밍이 오류가 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 추억에 갇혀버린 에바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과 우주선까지 모두 망가트리며 흡수해버린다. 처음 등장했던 시중 로봇의 말대로 코로나 우주선 자체가 음식이었던 셈이다. 음식을 맛있게 먹어치운 에바의 인공 행성은 그제야 만족한 듯 장미모양으로 변화하며 꽃을 피운다. 마치 주변국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들의 군국주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일본 극우의 모습을 보는 듯이.
그 모든 것이 환상이었을까? 하인츠가 우주 속에서 홀로 깨어나며 우주복 안에 남아있는 장미꽃잎만이 그 과거가 환상이 아닌 실제였음을 말해준다.
최취 병기(最臭兵器, Stink Bomb)
<최취 병기>는 <공각기동대>의 원화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연출 콘티 원화에 참여했던 오카무라 텐사이의 감독 데뷔작이다. 오카무라 텐사이는 감각 있는 화면 연출과 개그감 있는 연출로도 유명하다. 이 애니메이션은 블랙코미디 장르로, 전쟁준비를 하는 일본, 또 그러면서도 미국에 종속된 일본 현실의 모습 등에 대한 풍자를 가득 담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1994년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글로리아 라미레즈 사망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글로리아 라미레즈는 자궁경부암 말기의 심부전으로 리버사이드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디아제팜, 미다졸람, 로라제팜 등이 투여되었고 심장제세동기를 사용했다. 그러자 그녀의 입과 몸과 혈액에서 과일향이 나는 마늘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그녀를 치료하던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이고 병원 직원들까지 23명이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5명이 입원했다. 글로리아 라미레즈는 암환자였으며, 45분 후 사망했다.
사망 후 병원 직원의 집단 히스테리 증상, 혹은 새로운 바이러스라는 가설이 있었으나 사실은 그녀가 암 선고 후 몸에 바르던 DMSO크림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지금은 독성 성분이 있다고 밝혀져 금지된 크림이지만 당시에는 통증을 완화해준다고 해서 운동선수, 암환자 등이 많이 애용했었다. 그것이 전기충격을 가해져 DMSO4로 바뀌고 황산 디메틸이 생겼다는 것이다. 병원 직원들의 증상은 황산 디메틸을 흡입했을 때와 유사한 증상이었다.
<최취병기>에 나오는 노부오는 심한 감기에 걸려있다. 감기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출근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는다. 제약회사이기 때문에 아직 나오지 않은 좋은 감기약이 없나 물어보던 노부오는 실수로 다른 약을 먹고 휴게실에서 잠들고 만다. 한참을 잠들고 일어난 그는, 모든 병원 직원이 죽어있는 끔찍한 현실과 마주하게 되고 병원 본사의 지시로 개발 중인 그 약을 들고 급히 도쿄로 향하게 된다. 자신이 그 죽음들의 원인이라는 것을 모른 채. 그의 이름인 노부오(信男)는 믿을 수 있는 남자라는 뜻이다.
[아래부터 다음 파트 전까지는 <최취 병기>파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부오가 잘못 먹은 그 약은 사실 제약회사가 정부의 의뢰를 받아 만든 약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노부오의 감기 증상, 감기약 등과 겹쳐서 생각지도 못한 다른 반응을 하게 된 것. 노부오의 체취는 동물들을 다 죽이는 살상 병기가 되어있었다. 정부는 긴급히 소집되어 이 죽음의 가스 정체를 알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최취 병기>는 여기에서 현재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첫째, 아직도 군국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비밀리에 화학무기를 개발 중이었다는 점. 둘째, 비상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의 모습. 셋째, 미국에 군사적으로 종속되어 자주적이지 못한 일본 정부다. 노부오라는 사람 하나를 막지 못해서 수많은 군인들이 희생되고, 온갖 미사일과 대포를 쏘며 도시를 파괴한다.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그들은 결국 미국에 일을 맡기게 된다.
시종일관 잘난 척하고 있던 미국은, 자신들이 해결하겠다고 나사에서 개발한 특수 우주복을 가져온다. 그리고 노부오를 마취시켜 데려오겠다고 한다. 즉 노부오를 죽이면 되는데, 미국 역시 노부오를 군사 무기로 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결국 미국은 노부오를 생포하는 데 성공한다. 모든 사건이 다 해결되었고 가스의 농도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한 정부는 그제야 환호한다. 그때, 나사의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가방을 들고 센터 안으로 들어온다. 모든 정부 관계자가 있는 곳에서 서류가방을 전달한다. 하지만 입고 온 사람은 노부오였다! 일본과 미국의 모든 관계자가 있는 곳에서, 노부오는 가스로 가득 찬 우주복 해치를 연다.
현재도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많은 나라들이 전쟁을 위한 무기를 계속해서 개발하고 있지만, 과연 그것을 통제할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인간들은 재난에 대해 안전하게 대처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오토모 카츠히로는 <아키라>에 이어, <메모리즈>의 에피소드 2인 <최취 병기>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제국이라는 욕망을 표출할 수단으로 전쟁을 하고, 전쟁을 위해 너무도 큰 힘을 만들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 힘은 결국 인간을 파멸시킬지도 모른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대포 도시(大砲の街, Cannon Fodder)
<대포 도시>는 마치 프랑스 만화를 보듯 독특한 수작업 그림체인데, 이 작품은 오토모 카츠히로가 직접 감독을 맡았다. 도시 전체가 적을 향해 대포를 쏘는 일을 하고 있고, 한 소년이 아침에 일어나 잠들기까지의 대포 도시의 일상을 그린다. 전체가 원테이크로 되어있는 것처럼 연출해, 마치 이 일상이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유럽식 그림체와 인물을 보면 2차 세계대전의 나치를 연상시키지만 대포를 쏘는 장군들의 제국주의 제복을 보면 러시아나 일본이 연상되기도 한다.
소년은 대포의 포탄이 종을 울리는 시계 소리를 들으며 일어난다. 후다닥 일어나서,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장군의 초상화 앞에서 경례를 한다. 학교로 가면사 하는 인사는 '다녀오겠습니다'가 아닌 '쏘고 오겠습니다'이다. 거리에는 이달의 표어인 "쏴라 쏴, 힘이 닿는 한, 마을을 위해서 (撃てや撃て、力の限り、町のため)"가 넘쳐난다. 이 도시의 모든 집들의 지붕에는 대포가 설치되어있다.
이 도시는 전쟁이 일상이 된 군국주의 국가를 극단적으로 풍자한다. 모든 언어와 기술, 문화는 전쟁용어이며 전쟁기술이며 전쟁문화다. 아이들의 가장 큰 꿈은 훌륭한 장군이 되어 적들을 섬멸하는 것이다. 어른들은 시큰둥하고 영혼 없이 퀭한 눈으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다. 포탄을 만들고 포탄을 쏘는 일이다. 군국주의는 군사력을 국가 최우선 순위에 두고 침략과 약탈을 하기 위해 전쟁을 국가의 근간으로 삼는 이념이다. 우리가 잘 아는 군국주의 국가는 나치 독일, 일본제국, 북한 등이 있다. <대포 도시>는 그러한 전쟁을 일삼는 군국주의의 야욕이 국민들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아래부터는 <대포 도시>파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포 도시>에는 굉장히 쓸데없는 절차가 많다. 거대한 대포를 하나 쏘기 위해 수작업으로 그 일들을 하고, 절차들이 까다롭고 복잡하다. 특히 그 모든 일들을 한 다음에 배 나온 장군이 나와서 스위치도 아닌 줄 손잡이를 잡아당기며 대포를 발사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아날로그로 꽉꽉 채워진 첨단기기들. 이런 쓸데없는 절차들과 군국주의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절차들이 복잡하고 아날로그일수록 더 계급사회를 강화하기 쉽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되고 손쉬운 절차는 빠른 결정과 빠른 변화, 평등한 의사소통을 하기 쉽다. 하지만 절차가 복잡하면 윗선에 내 이야기가 곧바로 전달되기 어려워진다. 전달 내용보다 절차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괜히 옛날 예법이 그렇게 복잡했던 게 아니다. 군국주의는 군대와 국가가 동일시되므로, 군대처럼 계급이 중요시되는 사회다.
그러나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통해 대포를 발사한 곳, 도시 저 너머는 황폐한 황무지다. 포탄 자국들이 수십 개가 있지만, 그곳에는 적도 도시도 아무것도 없다. 이 도시는 허상의 적에게 대포를 쏘아대고 있고, 그것이 이 도시를 돌아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전쟁은 허상이다. 특히, 누가 어느 땅을 차지하고 어느 민족을 해방시키거나 정복하거나 학살하는 의미는 현대에선 거의 없다. 전쟁을 하거나 전쟁을 한다는 긴장감을 유지하고, 기존에 만든 신무기들을 소진하고 또 만들어서 군사산업을 키우고 우익들의 정치 지지율을 높인다. 위험하지도 않은 적을, 위험하다고 포장해 비난하고 소리 지르며 혼자서 대포를 쏘아댄다. 이것이 현대의 전쟁이 가지는 의미라고 오토모 카츠히로는 말하고 있다. 거기엔 허망함과 피폐해진 삶만 가득할 뿐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서 대포를 쏘며, 그 너머를 볼 수 있다.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의미 없는 전쟁이라는 걸. 하지만 아이들은 모른다. 국가가 외치는 적을 죽이려 어린아이들은 오늘도 공부하고 잠자리에 든다. 누구와 싸우고 있냐는 소년의 질문에 아빠는 소년에게 말한다.
"어른이 되면 알게 돼"
전쟁은 인간 역사에 없었던 적이 없다. 우파가 각 국가의 수장이 된 지금, 전쟁의 그림자는 더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알지만, 그것이 과연 전쟁까지 일으켜야만 해결될 문제였을까?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의 경제를 제재하겠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쟁 중에 가장 경제가 멀쩡한 곳은 러시아다. 일본 역시 2차 대전 패망 후 완전히 망가진 나라에서, 한국전쟁을 빌미로 군사물자를 대량 생산함으로써 나라가 다시 설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전쟁을 할만한 적이 아닌데도 비난하고 적으로 돌린다. 그것이 그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니까.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얽혀있는 세상에서 단순하게 '평화롭게 삽시다'라는 말로 전쟁을 하지 말자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타인의 불행이 내 행복이라는 마음은 당장 눈앞의 이득만 생각하는 일이다.
전쟁, 그것은 모두가 자멸하는 지름길이다.
* 이 글은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글입니다.
영화 리뷰와 인문학을 접목한 재미있는 글들이 많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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