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달리면 1등이더라.
국민학교때는 2부제로 수업을 했었다. 중고등학교때도 한 반에 76명까지 있었다. 단 한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고3 여름방학 때 60개쯤의 한샘국어 테이프를 4번을 들었다. 그리고 국어만큼은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시험은 쉬웠다. 하지만 결국 3수를 했고, 지방전문대를 겨우 들어갔다.
앞이 캄캄했다. 뭘 해야 사람구실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지 막연했다. 그러면서도 대충 살아가고 있었다. 막연히 살다가 결국 큰 실패를 맛보았다. 그때가 겨우 32살이었다. 그 후 8년을 지독한 가난과 싸웠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주말부부로 살다 40살 되어서야, 50만원짜리 월세집에서 가족과 같이 살 수 있었다. 그리고 30대를 반성했다.
40대는 다르게 살기로 맘을 먹었다. 그리고 남들과 같은 길에서 뛰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혼자 뛰는 걸 결정했다. 이미 빨간 시장에서는 원 없이 뛰어봤고, 그 안에서는 내가 등수 안에 들지 못한다는 사실도 깨우쳤기에 이판사판이었다.
그후, 남들과 다른 (허허벌판)입지에서, 한가지만 잘 파는 식당을 만들자고 권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분명히 결과가 좋았다. 열에 8개가 먹고살만한 식당으로 만들어졌다. 간간이 대박식당, 전설의 식당도 만들어냈다. 그 덕분에 40대의 10년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넉넉한 돈벌이를 해냈고, 노후까지 걱정이 없을 만큼 얼추 준비를 끝냈다.
만일 내가 40대에도 남들과 섞여 뛰어 등수에 들기를 결정했다면 지금의 결과는 결단코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