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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Nov 07. 2019

첫 번째 투잡이 알려준 3가지 지혜

열정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

첫 번째로 선택한 것은 영어였다. 어릴 때는 그렇게 싫던 영어가 대학에서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를 보며 자막으로 공부했더니 신세계가 열렸다. 대학 마지막 2년간은 정말 취미가 '미드 영어'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회사에서 영어를 사용할 기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영어 공부법을 늦게 깨달은 것도 아쉬웠다.


그래서 이왕 하는 것 영어 학원 강사가 되어 보기로 했다. 평일에는 회사원, 주말에는 영어강사. 생각만 해도 왠지 있어 보였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있으니 투잡은 무엇인가 재미있고 열정을 부어 넣을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어차피 영어 공부하려고 했으니,
경험도 쌓고 돈도 벌고!



01 구직광고, 당신이 하는 일을 알려라


꿈은 야무졌지만 막상 일을 구하려니 나를 고용해줄 학원 찾기가 쉽지 않았다. 주중에는 절대 학원으로 출근할 수 없는 회사원. 그를 고용할 이유가 있는 학원, 그 구직자가 단 한 번의 학원 경력이 없는 것을 이해하는 학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금전적 보상을 할 의지가 있는 학원, 그리고 바라옵건대 정말 운이 좋게도 그 학원이 구직자의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할 확률. 이 정도면 뭐.. 찾는 것이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몇 군데 학원에 전화를 해보다가 말은 안 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이거 사람이야?'라는 어조에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이제까지 영어 관련 일을 한다고 들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쭉 적어서 리스트업을 했다. 독서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 얼굴도 모르는 동아리 선배, 아는 친구의 친구 등 그리고 전화와 메시지로 여기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널리 널리 알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예전에 같이 모임 했던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코리야, 오랜만이다.
이야기 들었는데 진짜 하려고?


투잡을 시작하는 것이 막막할 때는 일단 주위에 본인이 하려는 일을 알려야 한다. 때때로 사람이 급하게 필요한 곳이 있다. 동업도 마찬가지다. 그때 들어가서 제대로 한번 보여주면 그 자리는 당신의 자리가 될 확률이 높다. 실제로 나는 며칠 전에도 영상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혹시 촬영 스태프 부족하면 알지?
나코리, 010-XXXX-XXXX



02 프로필, 남들보다 빨리 보내라


우리 원장님에게 네 이야기했더니,
한번 만나고 싶으시대. 프로필 보내.


응? 무슨 프로필? 그때 알았다. 누가 나를 추천해주려고 해도 프로필이 없으면 말짱 황이라는 것을. 그리고 프로필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만들기 시작하는 것도 실례라는 것을.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나에게 투잡인지 10번째 잡인지 상대는 관심이 없다. 그 사람에게는 함께 일할 만한 사람인지,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할 수 있는지와 같이 일반적인 고용 관계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프로필도 없다라니.. '아! 저는 삼성에서 일하고 싶은데 이력서는 없어요'라고 외친 것 같았다. 학원 강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을 때부터 최소한 일반 회사에서 묻는 토익 점수, 어학연수 경험이라도 정리가 되어 있어야 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내가 먼저 우습게 보고 사이드 취급을 해버렸다.


강사님, P 컨설팅이에요.
프로필 부탁드려도 될까요?


바로 어제 받았던 전화다. 이때 '아, 내일까지 보내 드릴게요'라고 하면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기회도 오늘 바로 프로필을 보낸 누군가에게 넘어가기도 한다. 누군가 물었을 때 통화가 끝나자마자 보낼 수 있는 자신만의 프로필을 꼭 만들어서 클라우드에 저장해 두자.



03 열정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


프로필도 없는 회사원 풋내기 영어강사 희망자(?)를 원장님이 부르신 이유가 있었다. 주말 고등부를 담당하는 강사님이 평일반과 함께하다 보니 쉬는 날이 없었고, 시험 기간이 되면 정말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해보고 알았지만 4개 학교의 내신 시험 대비를 한다는 것은 영어나 교육 분야에 어떤 열정이 있더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원장님 앞에서 1:1로 진행했던 모의 수업은 꿈에 나올 정도로 끔찍했지만 채용이 되어 진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이럴 수가!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혹시 이런 말을 하고 실제로 해봤더니 그 일이 상상하고는 완전히 달랐던 경험이 있는가. 영어 학원의 수업은 미드 보면서 좋은 표현을 익히고 농담하며 치맥을 먹는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아이들이 시험기간이 되면 주중에도 주말에도 시간이 없어 허덕였다. 미생에서 '꿈이 있다면 체력부터 기르라'라고 하더니 투잡이 만만하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이때 결정적으로 내가 투잡으로 얻고 싶은 금전적 보상의 마지노선도 정할 수 있었다.


열정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 분명 한계가 있고, 함정도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첫 번째 투잡은 이 외에도 많은 교훈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역시 해봐야 안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고 깨달은 계기가 되었다. 이후부터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지면 생각을 오래 하기보다는 무작정 전화해서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진로를 바꿀 때 사람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첫 단계를 밟지 않고 미룬다는 것이다.
- 헤르미니아 이바라, INSEAD 비즈니스 스쿨 교수


요즘 진로를 바꾸거나 전직을 고민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면 과거와 달리 말을 많이 아끼는 편이다. 실제로 해보면 많이 다를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더 좋을 수도 있고, 더 나쁠 수도 있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도 해봐야 알 수 있다는 것.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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