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의『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죄송하지만 저와는 초면인 것 같군요. 저는 시몽 반 덴 베시입니다.”
로제와의 권태로운 관계 속에서 더 이상 사랑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던 찰나에, 폴은 업무상 방문했던 집에서 우연히 시몽이라는 젊은 청년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시몽과의 첫 만남 이후로 그간 잊고 있었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이 낯선 청년이, 일시적이지만 그녀의 동반자”가 되는듯한 사랑의 설렘 내지 어떤 풋풋한 마음이랄까. 그럼에도 폴은 자신보다 열네 살이나 어린 이 청년에게 느껴지는 이 기분이, 썩 달갑게 다가오진 않는다. 오히려 이 기분이 현재 로제와의 관계가 권태롭다는 것을 더 분명히 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 한편, 시몽은 폴과 처음 만나자마자 그녀에게 빠져버리고 만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여성에게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뭔가 알 수 없는 것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 같달까..” 폴과의 첫 만남에서, 시몽은 직관적으로 폴이 행복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헤매고 있음을 파악한다. 그간 숱하게 여성들을 만나왔지만, 그 관계들 속에서 시몽은 어떠한 열정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폴의 존재는 여느 여성과는 달리 시몽으로 하여금 내면에 어떠한 열정을 불사르게 한 것이다. 단순한 연민의 감정도 아니고, 외로움과 고독감 속에서 헤매고 있는 폴의 존재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열정이었을까.. 폴과의 첫 만남 이후로 시몽의 내면은 온통 폴로 가득차게 된다.
@ “그 사람을 사랑하세요?” 폴은 로제에 대한 익숙함 때문인지 아니면 그러한 권태로운 관계에 어떠한 미련이 남아서인지, 시몽의 적극적인 구애에 갈팡질팡 한다. 그러한 와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시몽으로부터 온 뜻밖의 편지가 폴의 마음을 움직인다. 결국 폴은 로제와의 권태로운 관계를 직면하고 시몽의 풋풋한 사랑에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된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작품은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이 24살 때 썼던 작품이다. 사랑의 홍역에 몸저 눕더라도 다시금 또 영원한 사랑을 찾아나갈 이십 대 중반의 시기에, 사강은 이 작품 속 여러 인물들을 통해 사랑의 덧없음을 그리고자 한다. 그간 사랑에 있어서 어떠한 열정도 발견할 수 없었던 시몽이 폴을 만남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상승하는 모습. 한편, 로제와의 권태로운 관계 속에 허덕이는 와중에 우연히 만난 시몽으로 하여금 사랑의 풋풋함을 재차 느끼고 다시금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폴. 그리고 폴의 진지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에 허덕여 새로운 만남을 통해서 이 공허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로제. 사강은 지극히 냉담한 태도로 어떠한 극적 변화도 가져가지 않은 채 소설을 마무리한다. 소설 전반부에서 독자들이 느꼈을 법한 기대, 즉 ‘사랑’이 이들 세 명의 운명을 바꿔줄 것만 같은 기대에 사강은 어떠한 부응도 하지 않는다. 시몽은 폴에게 버림 받고, 폴은 로제와의 권태로움으로 다시금 도피하고, 로제는 다시금 공허함 속에 침잠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씁쓸하게도, 사강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랑에 의한 기대를 사랑으로 저버리도록 한 것이다.
‘사랑의 영원성을 믿느냐’는 어떠한 인터뷰에서
사강은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 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삼 년이라고 해 두죠.”라고 대답한다.
@ 정말 영원한 사랑은 없는 것일까? 우리가 보고 흔히 믿어 오던 영원한 사랑은 무엇일까. 이러한 무기력한 질문 앞에서, 사강의 답변 중에서 “제가 믿는 것은 오직 열정이에요.”라는 대답이 눈에 들어온다. 이 답변을 통해, 역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열정에 의한 사랑은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강이 부정한 사랑은 생물학적 본성으로부터 기인하는 욕구에 의한 사랑이다. 이와 반면, 사강이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랑은 바로 ‘열정’이다. 그 열정은 상대방 존재에 대한 열정이지 않을까. 시간 속에서 금세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육체적 조건들 이면에 존재가 있다는 것. 시간 속에서 무화로 흩어져버릴 유한한 조건들을 걷어치우고도 남는 존재 그 자체. 그 존재에 대한 열정만이 바로 영원한 사랑이리라.
@ 사강이 지극히 우울하게 내린 결론 앞에서, 독자들은 그 결론 이후의 여백에 작중 인물들이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상승해 나가는 모습으로 채워보는 것도 흥미 있으리라 생각된다. 흥미로운 건, 책 표지에 사용 된 그림이 영원한 사랑에 관한 샤갈의 그림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