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통해 삶은 진정한 ‘나’를 회복하는 여정임을 밝힌다.
@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굉장한 피로감과 수고로움이 요구된다. 우선 내 스스로가 진정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그동안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은 타인들과의 관계에 근거해서 이루어져 왔다. 그 관계들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요구들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만 같고, 내가 그러해야만 할 것’ 같기 때문에, 쉽게 타인들과의 관계 안에서 ‘나를 형성’하곤 한다. 그런데 계속해서 변화하는 타인들과의 관계 안에서, 내가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요구들을 다 충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지속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불안은 어렵사리 ‘본래의 내가 누구인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도록 한다.
@ 이 질문에 도달했을 때, 도리어 이 여정은 오리무중 속에 빠져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라는 기초적인 질문에서부터, 나와 관련한 여러 관계들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그간 타인들과의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요구들에 대해 답하느라 유보했던 삶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퀘퀘히 먼지 덮인 이 질문들은 내가 의식하지 못한 때에도 줄곧 답을 바라며 기다려왔던 것이다.
@ 이제 여러 질문들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해야만 한다. 행복, 기쁨, 사랑 등등. 그 의미가 무엇인지.. 내 스스로가 하는 대답들이 아무리 촌스러워 보일지라도, 나의 실존에 근거한 언어로 이 질문들을 채워나갈 때, 나 스스로가 진정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진정 사랑할 수 있고, 슬퍼할 수 있으며 기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태도는 불안과 굉장한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간 습관적으로 타인들의 목소리에 근거하여 형성해왔던 내 안의 가치질서들의 뿌리를 캐내어, 온전히 내 목소리로 다시금 주춧돌을 세우기란 여간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 속에서 괜히 나 혼자만 타인들과 괴리된 채로 고립된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닌지 끊임없는 의심을 하게 된다.
@ 그럼에도 내 안의 불안은 끊임없이 나로 하여금 이 여정을 따르도록 한다. 구체적인 대상이 없는 이 불안은 근본적으로 ‘나 답게 살라는 내 안의 울부짖음일 것’이다. 진정 살아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이 불안의 여정은 언젠가는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서있을 수 있는 목적지로 인도해줄 것이다. 때로는 이 여정 안에서 불안 때문에 지쳐 쓰러져 더 이상 못 갈 것만 같을지라도, 진정 나답게 살았었던 사랑과 기쁨의 체험이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이 길을 가도록 부추겨 끝내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이끌 것이다. 그 희망으로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