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삶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루이제 린저 - 『삶의 한가운데Mitte Des Lebens』

by 마음의 고고학

루이제 린저(Luise Rinser)는 중년에 접어들었을 때,『삶의 한가운데Mitte Des Lebens』라는 작품을 발표한다. 현대사의 파고 속에서 삶의 극단을 체험했던 린저는 ‘니나’라는 당돌한 여성을 주인공 삼아 인간 실존의 민낯을 드러내고자 한다.


촘촘한 회색빛 그물에 얽혀 있듯 자신의 운명에 얽혀 있는 인간들, 대체 누가 그 그물을 찢어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설령 그 그물에서 벗어났다 해도 그것은 발치에 걸려 있으며 인간은 그것을 끌고 다닐 수밖에 없다. 그 그물은 아무리 얇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 우리 모두는 살면서 한 번 쯤 흔들림을 경험하게 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할 때면 어린 시절 동화 속에서 흔히 접했던 선과 악, 행복과 불행이라는 안정된 이분법적 구도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대한 어떠한 위로도 전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마지 못 해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흔들려야 비로소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침반이 흔들림을 겪을 때 옳은 방향을 찾듯,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흔들림을 겪을 때 허울 좋은 삶의 가면은 벗겨지고 삶의 민낯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고민과 고통의 시간들을 거친 ‘나’만이 진정한 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생 가운데 다시 내던져졌어. 나는 몹시도 나 자신이 부끄러웠었어. 위대할 기회가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알았고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가을 낙엽의 냄새가 났고 나는 울었어. 몹시 슬픈 아침이었어.”



요동치는 번민 속에서 옳은 방향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은 결코 의미 없는 고통의 시간이 아니다. 그간 허울 좋게 포장된 삶이라는 환상이 숨기고 있던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내 스스로 지탱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삶의 필수 단계인 것이다.


“우리가 알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 몰라지는 거야. 그리고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괭이처럼 사는 것을 배우게 돼. 점점 더 소리없이, 점점 더 필연성 없이 그것이 늙은 징조야. 나는 늙어가는 것이 기뻐.”


@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삶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진정한 ‘나’로 성숙하기 위해선, 우리에게 ‘늙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삶의 파고 속에서 일희일비 하던 ‘나’로부터, 복잡스러움 그 자체가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시간 속에서 그려온 내 존재를 찾아나가기 위해선, 그리고 내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선 할 수 없이 우린 늙어가야 한다.


@ Mitte Des Lebens, ‘삶의 한 가운데’라고 번역된 이 책의 제목은 실은 ‘중년’을 뜻하기도 한다. 한 때는 나치즘을 옹호했다가, 전후에는 나치즘에 항거하다 투옥되기도 했던 루이제 린저가 살아온 삶. 린저가 ‘중년’에 들어설 때까지 젊음을 불태우며 자살시도마저 하고자 했던 그녀의 삶. 그 홍역은 더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삶을 더 사랑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몸부림 끝에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로 나온 책이 바로 『삶의 한가운데』일 것이다.



“내가 여태까지 살아보았던가요? 나는 살고 싶어요. 생의 전부를 사랑해요.”


(그림: Lesser Ury – Liegender Akt)

이전 01화진정한 '나'로 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