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음이 굉장히 많이 힘들었다. 매년 가을을 타기에, 이맘때 꼭 큰 홍역을 치르긴 하지만,
1월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계속 겪어온 어떤 설움이나 외로움 내지 서글픔이 참다 참다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가까운 이의 죽음, 특별히 부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것은, 내게 참 많은 변화를 준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 틈 속에서, 웃고 울 수 없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기존의 내 삶을 이루고 있던 가치들은, '죽음' 때문에, 갑작스럽게 도전을 받게 됐고, 이로 인해, 그저 어설프게 알았던 혹은 평범함 속에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공동체가 형성해 놓은 가치들은 뒤짚어졌다.
별로 들춰보고 싶지 않던 삶의 민낯들을 보게 되면서, 이제 내가 기존에 알았던 '가치들'을 내 실존을 통해 스스로 검증해나가야 되는 것이다. 진짜 사랑이 무엇이고, 우정이 무엇인지? 슬픔과 아픔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 질문을 붙이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허물어진 이전의 가치체계 위에, 이제 내 실존이 느끼는 진실한 가치체계를 쌓아올린다랄까.
이 과정은 참 쉽지 않다. 죽음이 뭔지 모르고, 어떤 아픔과 슬픔을 진실로 겪지 않은 평범한 이들 틈 속에서, 다시금 내게 진솔해진 상태에서 가치체계를 쌓는다는 것은, 세상과 사람과 싸우는 일이다. 20대 때는 어설프게, '내가 더 많이 겪고, 내가 더 먼저 겪었기에' 상대적 우울감 속에서, 도전 받지 않고 어떤 어려움 없이 평범한 가치체계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무시했던 교만하고 경솔한 태도 속에 살았던 기억. 지금 돌이켜보면,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의 기원이 뭔지 알 것 같기도.
그러나 이제 이렇게 직접 세상과 싸우면서, 평범함과 싸우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에는 힘 딸린다. 그래서 뭔가 항상 '척'을 해야한다. 평범한 척, 바보인 척, 모르는 척. 이 척 속에서, 요새 많이 지쳤다. 더욱이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삶에 어떤 의연함과 당당함이 있다. 모르기 때문에 더 쉽게 상처주고, 자기 마음데로 하는 구석이 있다. 이런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평범함 속에서, 사람들에게 많이 실망하고 지쳐 있던 상태였다.
어제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친 뒤, 저녁을 먹으러 공동식당에 내려갔다가, 다음 날 다시 캐나다 스카보로로 떠나시는 존 신부님께서 혼자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얼른 먹을 것을 챙기고, 인사를 나눈 뒤 신부님 앞에 앉아 식사를 했다. 며칠 전, 처음 로마에서 존 신부님을 뵀을 때, 굉장히 호탕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농담도 캐내디언 식으로 하시며, 밝고 따듯하게 인사 나눴던 기억. 그 기억 덕분에, 혼자 저녁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선뜻 용기를 내서 신부님 앞에서 저녁을 먹었다. 며칠 사람 때문에 지치고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1918년에 새워진 스카보로 선교회는 100년이 조금 지나지 않아, 문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사제성소 급감의 문제와, 선교회 회원들의 노화로 인해 말이다. 이 문제 때문에, 스카보로 선교회 장상 신부님들 세 분이, 인류복음화성 장관 타글레 추기경을 만나러 온 것이다. 선교회를 닫을지, 아니면 계속 유지할지 문제를 나누기 위해. 신부님께서 스카보로 선교회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자신은 75세의 나이로 이제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고, 대부분 신부들도 이제 다 죽음을 기다리기에, 선교회도 이제 하느님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해야한다며 농담을 하셨다.
그리곤 내게 부모님은 건강하신지 물어보셨다. 나도 모르게 울먹이며 - 정말 오랜만에 이런 감정을 느껴봤다. 맨날 센척하고 강한척하느라 감정을 숨겨왔는데 -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다 말씀을 드렸다. 신부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자, "오... 너 정말 많이 힘들었겠다... 나도 너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아.." 하시며, 당신 부모님도 내 나이 때 돌아가셨으며, 특별히 자기 친 누나가 브리티쉬 콜롬비아 부근에서 행방불명 됐는데, 6년 만에 '실족사'로 밝혀졌다는 아픈 체험을 나눠주셨다.
이 말씀을 하시며, 자기도 신학생 시절에 이 일들을 겪으며, 하느님과 무척 많이 싸웠고, 원망을 많이 했다고.. 그러나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살펴보니,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원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가슴 아파하시고, 하느님 당신을 실컷 원망할 수 있도록 대신 참고 기다려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이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근 몇 주 동안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어떤 아픔과 상처들이, 한 번에 해소된 느낌이 들었다.
신부님께서 매년 여름에 토론토에 올 계획이 있다면, 당신이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찌나 행복하고 든든해지던지. 덧붙여 신부님께서, 나의 모든 아픔과 상처들이, 결국에 미래에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사랑이 되어줄 수 있는 좋은 체험이 되도록 기도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 기도를 하던 와중이었는데.. 사람에게 상처 받는데, 결국 사람에게 치유 받는다. 이는 어찌 설명할 수 없다.
오늘 아침 8시에 떠나시는 신부님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현관으로 내려가니, 신부님께서 정말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시고 안아주셨다. 그리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너는 꼭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말씀하시며, 꽉 안아주셨다. 이 포옹 속에서, 하느님을 통한 형제애 내지 인류애가 전해졌다. 알게 된지 불과 며칠도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이만큼 큰 위로와 깊은 위안을 받았던 적이 있었을까. 하느님이 보내주신 선물이 아닐까 싶다.
결국 깊은 상처와 아픔은, 오히려 내게 진실하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 이것이 어쩌면 하느님의 선물인지도. 내가 평범함 속에 머물러 살고자 했다면, 내 헛헛한 마음과 공허함을 계속 평범한 이들 다수에게 위로 받고자 광대처럼 살았겠지.. 그러나 오히려 내 아픔과 슬픔에 진실할수록, 내가 아프더라도, 사람들에게 더 진실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어제 저녁 때, 내가 신부님께 첫 인상이 참 좋았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신부님께서도 내 첫 인상이 참 인상 깊었다고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가장 웃으며 따듯하게 환대해줬던 사람 중에 하나라고 말씀하시며.. 어제까지 정말 그토록 힘들고 슬펐는데, 그래도 사람이 좋은가보다. 만나는 사람에게, 따듯한 위로와 위안이 되고 싶었나보다. 내가 많이 힘들기 때문에..
우리 모두 삶의 전쟁터 속 한 가운데에서 헤메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로 우크라이나나 가자 지구에는 총탄과 포탄이 오고가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평범함 속에 많이 무뎌져서, 내 일상에서의 안위만 찾고자 한다. 실제로 지구 반대편에선 사람이 총으로 죽어나가고 폭탄으로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평범한 일상 안에 무뎌져, 사람이 소중한지 모르고, 너무 막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짜 총을 쏘는건 아니지만, 내면적으로, 심리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상대방에게 거친 태도로 총을 쏘고, 무관심과 냉대로 포탄을 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범함 한 가운데에서, 우리 모두 각자 삶의 전쟁터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과 사람이 위로가 되어주고, 치유가 되어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