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불청객마냥 설움과 슬픔이 밀려올 때가 있다.
'조수간만의 차'처럼, 규칙적이고 정해진 시간과 정도, 그 깊이에 따라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느닷없이' 찾아온다.
'설움과 슬픔'에 대한 감정을 '단어'로 이해되고, 익숙하지만,
'감정'의 영역에선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늘 새롭게 찾아온다.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만 달라질 뿐,
똑같은 감정을 수없이 겪고 느껴왔음에도,
여전히 '설움과 슬픔'은 통증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갑작스레 이 감정이 찾아올 때, 몇 가지 마음 안에서 움직이는 몇 가지 신호 혹은 예비적 단계가 있는듯 하다.
평소보다 더 밝고 활기찬 순간 뒤,
그리고 평소보다 더 괜찮은 척 애쓸 때,
무엇인가 마음 속 깊은 한 구석에, 나도 모르게 애쓰며 빵빵하게 채워놨던 풍선이
갑작스레 '펑!'하고 터지면,
물밀듯 설움과 슬픔이 확 밀려온다.
정신의 끈을 잡는다한들, 한 번 설움에 들어서면,
그날 하루 웬종일 뭔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젖어들어
마치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젖어 아직 마르지 않은 신발을 억지로 신고 처벅처벅 무겁게 걸어다니는 느낌.
이 순간,
정말 나를 따듯하게 환대해주고, 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고 나 자신을 서스럼없이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사람, 어떤 공간, 어떤 집이 있었으면 하는,
정체를 모를 어떤 '그리움'이 함께 밀려온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감정은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조금씩 이 감정을 다루는 법을 스스로 배워가는 것 같다.
수업을 듣는 중이건, 도서관에서 공부하건, 공동체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건
부지불식 간에 이 감정이 찾아오거든,
그 자리에서 잠시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 스스로에게 애쓴다고 타일러주고 그럴 수 있다'며 도닥여준다.
눈을 감고 잠시 마음을 살펴준다.
마음 깊숙한 저변에
나의 모자람과 부족함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깊숙한 곳에
이런 부족함을 떠받쳐주는 어떤 은은하고 따듯한 장력이 느껴진다.
그 힘에 잠시 내 마음을 맡겨둔다.
그 은은함과 따듯함이 나를 받쳐주는 존재의 힘이 아닐까.
그 존재의 힘을 넘어서, 무엇인가 나를 받쳐주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낀다.
여러 고통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느님께 감사한 것은, 이렇게 하느님의 현존을 어느 때나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설움이 자기폐쇄적이고 자기연민으로 가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나를 조용히 말없이 지탱해주시며
내 일상에 함께 해주신다는 것.. 정말 감사드린다.
내 안에 아주 큰 '선'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죽을 때까지 따라야 할 '선'이다. 그 '선'이 나를 위로해주고 독려해주고 힘을 준다.
오늘도 하루를 잘 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그 '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