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프라이탁
“저 가방은 뭐지?"
2010년 겨울, 스위스 로잔이었다. 오랜 벗이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던 곳이었다. 희한한 가방과 마주했다. 낡고 투박했다. 컬러는 맹렬했다. 힙한 청년들이 가방을 어깨에 둘렀다. 그러고서 자전거를 탔다. 패션에 정통한 동생에게 저 생경한 가방의 정체를 물었다. 트럭 덮개로 만든 가방이야. 프라이탁 형제의 이름을 땄어. 파슨스 스쿨을 다니던 동생은 저 가방이 뉴욕에서도 핫하다고 했다. 프라이탁이 세상에 나온지 17년이 되던 해였다. 스위스 출신이었다.
창의성
소설가 김영하는 '창의성'은 나쁜 생각, 이상한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프라이탁 형제의 생각이 꼭 그랬다. 명민한 디자이너였다. 트럭의 방수포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어찌 보면 그냥 쓰레기였다. 저걸 가지고 가방을 만들면 멋있겠다. 튼튼하겠다. 비를 맞아도 스케치가 젖지 않겠다. 형제는 행동이 민첩했다. 제작에 착수했다. 5년 묵은 트럭천을 구했다. 집 안의 목욕탕에서 때를 뺐다. 고약한 냄새가 아파트를 감쌌다. 이웃들의 거센 항의는...뭐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의 재봉틀로 박음질을 하고 나니 그럴듯한 메신저 백이 완성됐다. 방수천이 몸통, 안전벨트가 어깨끈 이었다. 괴상했다. 그런데 마음을 파고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가방이었다. 지인들에게 '발명품'을 시연했다. 반응은 애매하지 않았다. 자신의 것도 만들어 달라 아우성이었다.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그제서야 사업자 등록을 했다. 가방 위에 형제의 이름을 새겼다. 프라이탁 형제의 ‘창의성’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광적인 규율
경영학계의 스타 짐 콜린스와 모튼 한센은 ‘위대한 기업의 선택’ 이라는 책에서 '위대한 기업'의 특징 중 하나로 ‘광적인 규율’을 꼽았다. 규율은 본질적으로 ‘일관성 있는 행동’ 이다. 그리고 ‘위대한 기업’은 그저 어떤 규율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광적으로’ 준수한다.
프라이탁이 그랬다. 말끔한 프라이탁은 상상하기 힘들다. 신제품마저 수천 킬로의 도로를 누빈 흔적들로 그득하다. 남들처럼 좋은 천을 고른 후에 대량으로 생산하면 될 일이다. 원하는 디자인과 색을 구현하는데도 그 편이 수월하다. 당장의 매출 그래프를 치켜 세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프라이탁은 타협하지 않는다. 굳이 '재활용'을 고집한다. 가방이 품은 사연을 '지킨다'. 광적인 규율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브랜드의 진정성이 보존된다. 공장에서 찍어낸 '예쁜' 명품백들은 이제 가짜처럼 보인다.
프라이탁의 ‘광적인 규율’이 주는 보상은 확실하다. '제품의 강력한 임팩트'와 '오리지널리티'이다.
프라이탁은 제품이 곧 브랜딩이다. 가방 하나 하나가 말을 건넨다. 온몸으로 스스로의 사연을 전한다. 프라이탁의 가방을 싫어할 수는 있다. 잊을 수는 없다. 제품이 지닌 임팩트가 그만큼 강력하다. 프라이탁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브랜드 영상에는 오롯이 ‘제품’을 담는데 집중한다. 가방의 구석 구석을 보여준다. 물건을 넣어본다. 이런 영상만 수백 편이다. 지겨울 만도 한데 의외로 흥미진진하다. 광적인 규율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프라이탁은 ‘오리지널’로 대접받는다. 프라이탁의 뒤를 이어 재활용을 컨셉으로 하는 수많은 브랜드들이 생겨났다. 소방호스, 폐우산, 폐자동차, 심지어 우유팩까지 제품으로 만들어진다. 어느 누구도 프라이탁 만한 지위를 갖지 못한다. ‘제 2의 프라이탁’이라는 수식어에 갇힌다. 탐스(TOMS)가 나온 후에 비즈니스와 연계된 기부 아이디어는 모두 탐스의 아류라 느껴졌듯, 프라이탁의 ‘후예’들의 처지도 비슷하다. 프라이탁이 ‘광적인 규율’에 집착하는 한,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스토리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류(사피엔스)가 수십 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 할 수 있었던 비결이 ‘허구의 등장’이라고 했다. 즉, '스토리' 덕분이다. '스토리' 덕분에 서로 만난 일 없는 가톨릭 신자 두 명은 함께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다. 병원을 설립하기 위한 기금을 함께 모은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스토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만이 가지는 능력이다.
프라이탁이 성공할 수도 있었던 것도 결국 ‘스토리’다. 프라이탁 형제가 사업을 시작한 이야기가 중심축이 된다. 매장에서 직원들은 형제의 '스토리'를 위인전 읽듯 고객에게 들려준다. 형제의 모습을 담은 엽서가 매장 한켠에 놓인다. 세상에 똑같은 프라이탁 가방이 없다는 또 다른 '스토리'도 준비되어 있다. 이 '스토리'에 감화된 된 자들이 30~70만원대의 가격을 지불한다.
같은 스토리를 품고 있는 자들의 ‘동질감’은 자연스럽다. 거리에서 서로를 알아본다. 뭘 좀 아는 사람인데. 의식 있는 친구인데. 유독 프라이탁의 커뮤니티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스로 프라이탁을 맨 모습을 촬영해서 올린다. 유대감은 굳건해진다.
프라이탁을 쓰는 주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상관없다’고 했다. 이 브랜드가 예전보다 핫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조금 무거워도 상관없다. 쓰레기 같은 가방을 이 가격에 사왔냐고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아도 상관없다. 그 안에 자부심과 뿌듯함이 있었다. 프라이탁의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