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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일지 (3)

2023.06.17부터 2023.06.23까지

by 양양

<2023. 06. 19>

(1) 런던 생활도 후반부를 달려가다니.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처음 느꼈던 두려움들이 사그라들고 있다. 돌아가서도, 나는 언제든 어떤 환경이든 적응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아무리 무서운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처음을 두려워말자!

(2) 기가 막힌 풍경의 타워브리지를 봤다. 오늘도 참 많이 걸었네. 타워브리지는 내 기대보다 더 멋있었다. 나도 그에 맞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늘 '이상'과 '현실' 중 '현실'을 담당하고 있다. 꼬질꼬질...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이상이 될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난 어떻게 현실을 잘 살아가야 할까.

런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3. 06. 20>

(1) 비도 오고, 2층 버스는 막히고 트라팔가 광장은 출입금지란다. 날씨도 축축한 것이 참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 그런데 광장에서 한 남자분이 버스킹을 하시는 게 아닌가? 너무 좋아서 한참이나 들었다. 팁도 드렸다. 한 순간에 오늘 하루가 행복해졌다.

(2) 런던의 스콘 맛집에 왔다. 한국인 여행객들이 옆 테이블에 있었는데, 그들의 대화를 엿듣다 보니 조금은 머쓱하고 많이 외로워졌다. 그래도 괜찮아. 난 혼자만의 여행을 만끽 중이니까. (비록 사진 찍어줄 사람은 없지만..) 라디오와 노트와 음악이 있어, 책도 있고. 며칠 남지 않은 런던 라이프를 만끽합시다.

(3) 지금은 야경을 기다리며 버스킹을 듣고 있다. 시간은 왜 이렇게 안 가는지.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삼삼오오 함께인데 나만 혼자다. 나도 내 가족들,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진다. 기분 참 묘하네...

행복과 고독. 나중에 추억했을 때는 어떤 감정이 더 먼저 떠오를까? 이토록 외로운 나. 언젠가는 온전해질까?


<2023. 06. 21>

*오페라의 유령 감상문

레미제라블보다는 내용 이해를 완벽히 하지 못해 아쉽다. 알고 보면 더 좋은 장면들이 많았을 텐데. 그래도 여주인공 크리스틴의 노래 하나는 정말 말도 안 됐다. 실제로 샹젤리제가 떨어지거나 공간을 묘사하는 방식도 참 좋았다. 처음 주제곡이 흘러나오던 순간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화려하고 웅장한 볼거리들과 배우들의 노래실력은 정말 최고였다!


<2023. 06. 22>

(1) 벌써 런던 마지막 날이라니. 아침부터 너무 배고파서 크로와상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새 런던이라는 도시에 정이 든 건가? 조금 아쉽다. 역시 또 한 번 느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적응할 때가 되니 파리로 떠날 때가 되어버렸군. 파리는 또 얼마나 파란만장할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그렇지만 재미도 있겠지! 무사히 파리 숙소에만 잘 도착하길 바랄 뿐이다. 일단 마지막 날을 즐기자.


(2) 피시 앤 칩스 가게에서 따뜻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생각도 못했는데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시고 k-pop 팬이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주셨다. 외롭던 내 여행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너무 행복했고, 또 감사했다. 역시 밝고 따뜻한 사람이 최고.


*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 중 행복은 구름과 같다는 내용이 있었다. 멀리 보면 좋은데 막상 그 안에 들어가면, 그 안에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지금 내가 그렇다. 미술관에서 유명한 작품을 보았을 때 '이게 그 작품이라고?' 하는 것처럼. 내가 유럽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행복감을 체감하는 건 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단언컨대, 돌아보면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 분명.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 지에 대해 자꾸 검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즐기면 된다. 언젠가 불현듯, 내가 오늘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2023. 06. 23>

런던을 떠나 파리로 향하는 날. 험난한 여정이 예상되는 날이다. 게다가 잠도 제대로 못 자서 걱정이다. 무사히 기차를 타고, 택시를 타고 내 짐을 잘 지켜 숙소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너무 막막하긴 하지만 차례차례 하나씩 잘해봐야지. 파리는 또 다른 언어, 문화가 가득한 세상일 것이다. 소매치기 조심하고 정신 바짝 차리자! 그리고 낭만을 찾자. 힘든 일도 분명 있겠지만 또 반대로 분명 예상치 못한 좋은 순간들도 찾아올 거야. 서희야 오늘 하루 잘 이겨내 보자. 파이팅.


*부록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다. 어떤 맛있는 걸 먹어도, 좋은 곳에 가도 항상 울상이다. 그녀는 스스로도 자신의 이런 점을 싫어했다. 하지만 고칠 방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언제나 문제점들과 불행이 더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얼굴은 하루가 갈수록 더 어둑어둑해져 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한 명이 그녀를 보며 소리쳤다.

" 너, 머리 위에 나무가 자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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