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3부터 2023.06.27까지
<2023.06.23>
(1)
정말 우여곡절 끝에 유로스타 기차를 탔다. 온라인 표에 나와있는 좌석으로 갔더니 내 자리가 아니라고 하지를 않나.. 얼른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니 이번엔 모르는 분이 앉아 계셨다(?) 비켜 달라고 하니 금방 비켜주셔서 무사히 타긴 탔다. 얼마나 아찔하던지. 캐리어를 도둑맞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3시간을 가야 한다.
그러니 불현듯 신기한 감정이 몰려온다. 내가 어느덧 23살이 되어 혼자 유럽을 돌아다니고 있다니. 어떤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또 어떤 나는 격렬하게 변화했다. 그래도 이렇게 용기를 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니 참 기특하다. 7살의 나도, 13살의 나도, 16살도, 18살도 모두 그때의 내가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내가 이후의 나를 또 만들어가겠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고 최선의 나를 만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내 안에 영원히 함께 할 어린 나도 받아들이고 보듬어주고 싶다. 일단 너무 멀리 걱정하지 말고 무사히 숙소에 잘 도착하자. 그럼 좀 마음이 놓일 거야.
(2)
파리 숙소에 도착했다. 여행 첫날은 왜 이리 항상 집에 가고 싶은 건지. 무섭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고. 따뜻하고 쾌적한 우리 집이 그리워진다. 깨끗하게 씻을 수 있고, 집 밥이 있고.. 모든 것이 잘 구비된 곳.
그런데 아직도 집에 가려면 두 달이나 남았다니. 나 괜찮을까? 엉망이 되어 집에 돌아가는 건 아닐까? 무섭다
.
<2023. 06. 24>
아아, 파리는 정말 낭만과 우여곡절의 도시구나. 조금은 뻔뻔 당당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의 소심함만 더욱이 깨닫고 있는 격이다. 런던과는 또 다른 언어에.. 문화에. 또 새로이 적응하느라 고초를 겪고 있다. 게다가 나의 급한 성격도 한 몫한다. 여유 있게 둘러보지를 못하고 마음 급하게 내 계획들을 따라가느라 바쁘다. 나는 넉살 좋거나 싹싹한 종류의 인간은 더욱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인간으로 사는 건 참 힘든 일이다.
<2023. 06. 25>
(1)
이렇게나 정신이 없다니! 또 새로운 환경에 온 탓인지 몸 상태가 또 말썽이다. 피부도 다 상하고 불면증이 심해졌다. 외동딸 공주님처럼 굴고 싶지 않은데, 아무래도 나는 정말 온실 속 화초로 컸나 보다. 또 어떻게 적응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제 마주한 에펠탑은 환상이었다. 무슨 천운으로 한국인 룸메이트를 만나서 안전하게 야경을 볼 수 있었다니. 찾으려고 하면 또 행복과 행운이 함께 하는 순간들도 존재한다. 그저 내가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에 달렸을 뿐. 연습이 필요하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 되는 연습. 어떤 불행보다 찾기 힘든 행복을 스스로 찾아내는 법을 터득하자!
*설령 내가 망하더라도, 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보자
*오리스테이크 대신 장조림맛 고기수프를 먹었지만 (아주 맛없었다) 한국어로 인사말을 건네주는 웨이터 덕에 행복해졌다.
(2)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여행 중 친구가 생겼다. 숙소 룸메이트 a 언니의 소개로 만났는데 주은이. 심지어 동갑. 미술 하는 친구답게 자유로워 보여 멋있었는데 세상이 참 좁다는 걸 실감했다. 왜냐면... 나의 대학친구인 하정이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정말 말도 안 돼. 어쩐지 하정이랑 너무 비슷하다 했어. 정말 여행이라는 건, 어떤 인연이 만들어질지 모르는 거구나. 가고 싶던 재즈바도 같이 가기로 했다. 너무 행복해. 외로움이 사라지니 앞으로 남은 파리 여정이 참 기대된다.
나에게도 여행 중 특별한 순간이 생겼다!!
<2023. 06. 26>
(1)
팡테옹, 피카소, 로댕 미술관이 다 닫는 바람에 마레 지구로 왔다. 역시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건가? 그래도 오늘 낭만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에끌레어 하나를 샀는데, 내가 어설프게라도 프랑스어로 인사하는 게 고맙다며 하나를 더 선물로 주셨다. 너무 감사하고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역시 친절의 힘은 세상을 돌아가게 만든다. 룸메이트 고은언니와도 개선문 야경을 함께 보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내 여행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즐기자. 예상치 못하게 다가오는 모든 상황을 다 즐기자!
(2)
고은언니랑 결국 오리스테이크는 또 못 먹고 연어, 닭가슴살 요리를 먹은 뒤 개선문에 올라가 야경을 봤다. 야경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야경과 에펠탑이 멋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감동적인 광경을 혼자 본다는 미안함 때문일까? 혹은 인생에 이런 순간을 마주한 것에 대한 감격일까?
<2023. 06. 27>
(1)
며칠 째 잠을 못 자고 있다. 괴롭다. 하루라도 좀 곯아떨어지고 싶다. 게다가 오늘은 오전 10시에 베르사유 궁전을 예약해 둔 터라 일찍 일어나서 더 피곤하다. 그래도 도착하면 내 피곤함이 날아갈 정도의 풍경이 펼쳐져 있겠지? 지금은 기차 안. 멍하니 달리는 중.
(2)
베르사유 궁전 투어를 한 뒤 탈진해서 스타벅스에 왔다. 파리의 스타벅스라니ㅋㅋ. 이 와중에 휴대폰 보조배터리까지 말썽이다. 휴대폰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텐데. 해결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여행을 오니 몇 배는 더 부지런해져야 하는 것 같다. 모든 걸 다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더군다나 나는 혼자 왔으니 뭔가 잘못되면 탓할 사람도 없다. 지금은 힘든 순간들이 존재하더라도 언젠가 성장한 나 자신을 발견할 거야. 확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