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3부터 2023. 07.10까지
<2023. 07. 03>
(1)
일단 첫 기차 무사히 타기 성공! 너무 긴장해서 오히려 우왕좌왕한 것 같은데 마음을 좀 편하게 먹을 필요가 있다. 기차 여행한다고 생각하고 즐기자! 정신줄만 제대로 잡고 있으면 돼. 잘하고 있어. 다사다난했던 파리야. 정말 이별이다. 또 만나자.
(2)
새벽 2시 14분.. 너무 졸리고 피곤하지만 기어코 이 순간을 글로 남겨야겠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기차 4번 갈아타기. 그래도 어찌어찌 마지막 베를린행 기차까지 사고 없이 탔다. 내 생존본능이 나를 살리는 중이지. 앞으로 정말 웬만한 일에는 쫄지 않을 것 같다. 밤샘 기차도 해봤는데! 물론 힘들고 무섭긴 하지만 독일에 도착해서의 나는 한 단계 또 성장해 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어느새 내가 이만큼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에도 뿌듯하다. 서희야. 잘했어. 고생했어.
<2023. 07. 04>
우여곡절 끝에 민지의 기숙사 도착. 확실히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 한식도 오랜만에 먹고! 독일이라는 나라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있을지 참 기대된다. 즐겁게 보내자.
<2023. 07. 05>
(1)
오늘은 드디어 베를린에 가는 날. 원래 혼자 처음 나설 때는 다 무섭게 느껴지고 용기도 안 났던 것 같은데, 확실히 민지가 있으니 걱정이 되지 않는다. 베를린의 느낌은 어떨까? 런던이나 파리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아.
(2)
지금은 베를린 돔 광장에 앉아 햇살과 음악을 즐기고 있는데, 참 좋다. 평화롭기도 하고 외롭지도 않고.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마음. 독일이라는 나라가 꽤 마음에 든다. 적당히 투박하고 적당히 따스한 나라.
<2023. 07. 06>
(1)
어느덧 베를린 여행 2일 차. 편하게 지내고 밥도 잘 챙겨 먹고 잘 씻고 다녀서 좋다. 이래서 생활환경이 중요한 건가? 물론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외로움이 밀려와 너무 힘들지만... 앞으로도 여정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계속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 한 여름밤의 꿈같은 날들을 귀하게 여기고 즐겁게 지내야 한다. 너무 소중한 하루니까. 한국에 돌아갔을 때 마주할 현실은 잠시 접어두고 이 순간을 즐기길 바란다.
(2)
오늘은 카이저 빈헬륨 교회, 하드록카페, 엠앤앤 월드, 전승기념탑, 브란텐부르크 문까지 알차게 돌아다녔다. 어제 새벽에 잠이 드는 바람에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참 재밌었다. 다사다난하지 않은 여행을 한 날이 꽤 오랜만이어서 기분이 이상하다. 외로움과 당황스러움 없이 온전히 재미있고 편안하다니. 그래서 하루가 더 빨리 간다고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남은 2주간의 독일 생활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있을까? 오래 머무는 만큼 즐겁고 행복한 날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2023. 07. 07>
(1)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는 기분이 나도 버겁다. 여행이 너무 즐겁다가도 집에 돌아가고 싶어지고, 오늘의 내가 마음에 들다가도 내일의 나는 최악이다.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그냥. 집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그치만 하루하루가 아까우니 오늘도 베를린으로 향해야지! 또 내 기분을 뒤집어줄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2)
그런 기분이 든다. 낯선 곳에 오니 내가 느꼈던 권태로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집 소파의 차가운 감촉과 매일 타던 1-9 버스의 최애 자리. 매번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지겨운 노래들. 엄마와의 산책. 익숙함에 젖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잊고 있었나 보다. 물론 여행자의 삶이 싫은 건 아니다. 유럽에서는 또 유럽에서의 일상이 있고, 나름 좋아하는 순간들도 생겼다. 아마 한국에 돌아가면 또 유럽이 그립겠지? 익숙함은 익숙한 대로 낯선 마음은 낯선 것대로 어렵다.
<2023. 07. 08>
(1)
오늘은 피크닉을 가는 날. 예상치 못하게 기차가 취소되는 바람에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그래도 조급해지지 않는 걸 보면 내 강박적인 성격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아님 민지와 있어서 괜찮은 건가?) 혼자만의 시간이 분명 필요하기도 하다. 웃기지. 그렇게 외로워하다가도 누구랑 함께 있으면 또 혼자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 한다는 게. 난 정말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없는 팔자인가 보다. 혼자일 팔자인 거다.
(2)
돗자리를 펴놓고 책 앍고 음악을 들으니 내가 읽고 있는 이 에세이의 작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에세이나 싱어송라이터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의식 과잉? 내 방 안에 내가 갇혀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타인이 나와 다른 행동을 할 때 이해하지도 못하겠다. 왜 나만큼 배려하지 않는지, 친절하지 않은지. 그리고 결국 나는 내 방 안에 홀로 갇혀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상상까지도 하게 된다. 매번 생각만 하다가, 내 방 안에서 꿈만 꾸다가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한 채로. 끝이 날까 봐 겁이 난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 이 방에서 나가게 될까?
(3)
지금은 민지가 친구를 만나러 나가서 혼자 방에 있다. 더 외로운 건 뭐지? 원래 누가 있다가 사라지면 더 외로운 법이다. 게다가 나는 이곳에 친구도 없으니.. 이 시간에는 엄마도, 친구들도 다 잠들어있고. 진짜 혼자 남겨진 듯한 시간이다. 여행의 즐거움과는 별개로 복잡한 마음은 계속된다. 그러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자꾸 여행의 결괏값을 바라게 된다. 그런데 이제는 왠지 여행이 끝난 후의 나도 그저 나일 것만 같아서 겁이 난다. 두 달 반의 유럽여행도 내 인생을 뒤집어 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2023. 07. 09>
일요일의 독일은 상점도, 마트도 쉰다. 그래서 오늘은 마우어파크에 놀러 갔다. 플리마켓도 구경하고, 푸드트럭 음식도 먹고 피크닉도 했다. 주말에 이런 일상을 즐기는 독일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이 여유로움.
그리고 나는 좀 쿨해져야겠다. 세상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일들도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끔은 내가 삐뚤어져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정말 정상이라면, 나는 꿋꿋이 비정상으로 살겠다. 그리고 내 삶에 정상적인 것들을 눈곱만치도 들이지 않겠다. 내 자존심이 센 탓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누가 나를 함부로 대하게 놔둘 수는 없는 법이다. 세상에 혼자 남는다고 해도, 절대 잊지 말자. 아무도 나를 구원해주지 않는다.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혼자서도 견고히 살아내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물론 23년의 짧은 경험상, 세상은 나를 절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지. 별 일들로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시련을 주겠지만 그래도 굳건한 나였으면 좋겠다. 내가 얼마나 멋지고 따뜻한 사람인지 적어도 나 자신은 알고 있으니까.
<2023. 07. 10>
(1)
오늘부터 3일간은 혼자 베를린 여행을 다닌다. 혼자 돌아다니는 건 또 오랜만이어서 설렌다. 프라이탁 구경도 제대로 하고, 혼자 맛있는 것도 먹고. 카페와 편집샵 투어도 다녀야지. 독일의 '힙'을 즐겨봅시다.
(2)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고, 맛있는 한 끼를 먹는 데에 돈을 쓰니 아깝지도 않고 기분도 좋다. 내가 지금 얼마나 중요하고 특별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 자각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진다. 이런 순간이 지금이 마지막일 수도 있기 때문에. 감사하자. 감사하자. 감사하자.
*부록
항상 나에게 옳은 길을 제시해 주는 엄마. 내가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할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용기를 낼 수 있게 북돋아주는 엄마. 엄마가 내게 해주는 말은 항상 같다. 눈치 보지 말고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그 말을 잊지 않는 내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