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6.29부터 2023.07.03까지
<2023. 06. 29>
(1)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지친다.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한 성격이다. 아무래도 나와 다른 누군가를 계속 신경 쓰고 맞춰줘야 하기 때문이겠지? 혼자 있는 게 이렇게 익숙해지고 편해지는 게 괜찮은 걸까. 이제는 누군가와 뭔가를 '같이' 하는 게 더 어색하다.
(2)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정말로. 그리고 이렇게나 진지하고 심각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음도 체감한다. 나는 무언가에서 항상 의미를 찾으려 하고 없는 고민도 만들어서 하는 성격이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정말 이상해 보이겠다 싶다. 한편으로는 여행을 하며 오히려 이런 내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본래 그런 유형의 인간으로 태어났고, 거스를 수도 없다. 이제부터는 이런 나와 함께 살아갈 연습을 해야 한다. 내면이 복잡한 나. 행복감에 무딘 나. 조금은 찌질한 나. 예민하고 소심한 나.
(3)
파리에 온 이후로 처음 비가 왔다. 그리고 요상하게 여유로우면서 습습한 날. 대단한 무언가가 기다리는 하루는 아니었지만, 한적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나중에는 꼭 이런 날이 기억에 남더라. 성당에 들어가 특유의 차분함을 즐기고 나오는데, 정각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또 울컥... 대체 왜 이러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감정이 많이 널뛴다. 이런 하루는 오히려 혼자여서 완성된다.
<2023. 06.30>
(1)
6월이 벌써 이렇게 가다니. 여행이 일상이 되는 느낌은 좀 특이하다. 원래 여행은 반복되고 지겨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아닌가? 그 짜릿함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싫어서 여행을 그리 반기지 않았었는데, 매일 다른 곳들을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 되다니. 신기하다. 자연스레 적응하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23년 동안 행복이나 성공 등을 꿈꾸며 버티거나, 쫓아가는 상태에 익숙해져버렸나 보다. 막상 그 순간에 행복이 존재할 때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생일을 기다리는 게 더 마음이 편하고, 막상 생일 당일이 되면 허무한 것처럼.
(2)
사크레쾨르 성당에 와서 앉아있다. 다들 무슨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 걸까. 나는 또 뭘 기도하고 싶은 걸까. 종교는 없지만 마음이 좀 편해지기도 한다. 마음 편히 살고 싶다. 그리고 그래야 할 것만 같다. 연기라는 꿈도, 직업으로서의 목표일 뿐이고 그걸 과도하게 이상화시켜서는 안 된다. 물론 간절한 마음이 결국 집착을 부르지만. 의도할수록 절대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다. 엄청난 부와 성공을 목표로 내 인생을 끌고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들은 그저 우연히 따라오는 부속물일 뿐. 그 이상의 무언가를 쫓아 살아가고 싶어진다.
나는 나의 미운 부분들과, 나쁜 습관들과, 찌질한 모습들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그래서 도저히 나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는데, 이런 나를 내가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한다. 이 미운 감정과 평생을 싸워야 한다.
(3)
내가 좋아하는 영화 아멜리에 촬영지인 카페 데 더 물랑에 와서 모히또를 마시는 중. 생각보다 모히또의 알코올은 강렬했다. 헤롱헤롱.. 입에도 못 대는 중. 작년 초 봤던 영화의 촬영지에 실제로 오다니!
<2023. 07.02>
주은이와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이주은이 아니고 김주은이다. 파리에서 주은이를 두 명이나 만나다니. 두 명의 주은이들과 함께 벼룩시장도 구경하고 뤽상부르 공원에 와서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파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아쉽다. 어느새 파리라는 도시를 나도 모르는 사이 사랑하게 되었나 봐!
<2023. 07. 03>
(1)
시간은 내 생각보다 훨씬 빨리 간다는 사실을 나는 자꾸 간과하나. 벌써 파리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가장 무섭고 낯선 도시였는데 어느새 정이 들다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좋은 것들도 참 많이 볼 수 있었다. 외로움도 덜어냈고. 미소언니, 고은언니, 주은이, 주은김. 다들 너무 감사한 사람들이다. 개선문 위 야경과 뤽상부르 공원, 맛있던 오리 스테이크까지... 고마웠다 파리야!
(2)
그나저나 오늘은 오지 않기를 바라던 최고난도의 날이다. 밤에 기차를 4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베를린에 도착해서 또 기차를 2번이나 더 타야 민지 집에 도착할 수 있다. 무섭고 걱정돼 죽겠다. 얼마나 당황할지, 무서울지, 피곤할지, 긴장할지 눈에 보이니까. 내가 온전히 나를 책임져야 하는 밤.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래도 지레 겁먹지는 말고 천천히 차근차근해나가자. 또 한 번 성장하는 밤이 되기도 할 거야.
(3)
마지막으로 버스킹을 들으며 마음껏 보는 에펠탑. 앞으로도 절대 이 순간을 잊지 않기를. 너무 현실에 순응하고 싶더라도 23살에 느꼈던 이 낭만을 기어코 기억해 내기를. 그리고 계속 그 허무한 낭만을 쫓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