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과 연시의 하와이 (1)

2024. 12. 27부터 2024. 12. 31까지

by 양양


<2024. 12. 27>


절대 안 올 것 같았던 하와이 여행날이 밝았다. 사실 공항까지는 정신없고 피곤해서 실감이 잘 안 났다. 내가 계획을 짜서 가는 여행도 아니라 더더욱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가늠할 수 없다. 그래도 이번엔 그 예측 불가능성조차 즐겨보려고 한다. 24년의 연말과 25년의 연초. 잠시나마 현실을 떠나 꿈을 꾸고 돌아오는 느낌이 아닐까? 아마 오랫동안 이 기억으로 살아가게 될 테니, 순간을 깊이 소중히 느껴야겠다. 할머니도 잘 챙겨드려야지.


하와이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베렛'의 집에 도착했다.

*베렛: 고모의 남자친구분

아직은 낯설고 정신없었지만 개운하게 샤워하고 엄청 맛있는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먹으니 비로소 10일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오히려 너무 대접받고 행복해서 불편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달까?


첫날이니만큼 간단히 동네투어를 했다. 앞바다도 보고실내 서핑도 구경했다. 그 짧은 찰나에도 하와이 사람들이 정말 낭만 가득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의 날들이 너무나도 기대된다.


<2024. 12. 28>


본격적인 여행 첫날. 와이키키에 왔다. 미군 호텔 바에서 파인애플 주스와 감자튀김 등을 먹고 나는 홀로 스투시를 사러 갔다. 그런데 역시나.. 낮에 가니 호놀룰루 에디션은 구할 수가 없었다. 무조건 오픈런해야 한다는데 혼자 와서 사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엄마와 코나커피를 마셨다. 커피도 커피지만 흑임자 퀸아망이 정말 맛있었다. 커피는 무조건 뜨겁게만 가능하다고 해서, 오랜만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크흠. 아직은 하와이와 조금 낯가리는 중이다. 우리 친해질 수 있을까?


커피타임을 가진 후 대망의 크루즈를 타러 갔다. 조금 생경하기도 했지만 뜨겁게 지는 해부터.. 야경까지 참 행복했다. 특히 빌리 아일리시의 'what was i made for'을 들을 땐, 정말 꿈꾸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도 크루즈 댄스타임에 나가서 막 춤추시고ㅎㅎㅎ 말 그대로 우린 Family, 그 자체였다. 모두에게 행복한 순간이 있고 그걸 공유하는 건 얼마나 귀한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지나친 행복은 되려 고통에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2024. 12. 29>


오늘은 하루를 느지막이 시작했다. 늦잠도 자고 따뜻한 아침식사를 했다. 아보카도, 베이컨, 호밀빵, 계란, 샐러드 등을 한 상에 잘 차려놓고 다 같이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 시간은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고모랑 동네 마트 구경도 했다.


1시가 좀 넘어서 바닷가로 향했다. 가는 길에도 멋진 풍경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해변에 도착해서 아빠는 냅다 바다에 뛰어들고ㅋㅋ 나 역시 발을 담그고 놀았다. 미리 준비해 온 고추장 삼겹살을 구워 먹었는데 기가 막힌 맛이었다. 아마 그 주위의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 맛있는 냄새는 뭐지' 싶었을 거다. 여기 와서 계속 고기만 먹었더니 진짜 3일은 단식하고 싶어 진달까...ㅋㅋ


아무튼 혼자 노래도 듣고, 엄마랑 바다도 좀 걷고. 공놀이하는 사람들, 해양 액티비티를 하는 사람들 등등. 각자의 방식으로 해변을 즐기는 걸 보니 내 마음까지 즐거워졌다. 유럽 여행 때도 느낀 거지만, 사진 안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사연을 가졌든, 무조건 훌륭한 피사체가 된다. 그들이 사실은 전혀 특별하지 않고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사랑스러워진다.


또 한 가지 든 생각. 왜 내가 행복한 순간이나 행복이라는 감정에 이질감을 느끼는가.. 싶었는데 아마 내가 근본적으로는 우울을 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근본적 슬픔이 어디서 탄생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기쁨이나 행복을 느끼는 건 늘 순간뿐이고 곧바로 익숙한 불행이나 공허함으로 다시 회귀할 것을 내심 알고 있어서 좋은 것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고, 쉽게 찾아지지도 않을 것 같다.


오늘은 해안가만 다녀와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게 좀 아쉽게 느껴져서 집 앞에 있는 주민들을 위한 수영장에 갔다. 뜨거운 자쿠지에 몸도 담그고 수영도 하고. 때마침 사람도 없어서 마치 우리가 전세 낸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노을까지 진다. 잊을 수 없는 순간 하나 추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오랜만에 내가 계획을 세우지 않은 여행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하와이에서 하고 싶은 것도 참 많고 가고 싶은 곳들도 많은데, 모든 것들을 다 나에게 맞춰 할 수 없다는 사실도 내가 배워야 하는 것들 중 하나다. 때로는 흘러가는 대로, 즉흥적으로. 많은 걸 보고 경험하는 것도 좋은 여행이지만 제대로 쉬고 공백을 즐길 줄 아는 자세도 또 다른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적당히 유연해질 줄 아는 방법. 나는 이걸 깨우치고 싶다.


<2024. 12. 30>


하와이에서의 아침이 다시 밝아왔다. 오늘은 꼭 오전 11시에 출발하려 했는데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수다와 음주에.. 다들 늦잠을 잤다. 11시 30분쯤 길을 나서서 첫 번째로 들른 곳은 ' dole plantation'. 원래 예정에는 없었으나 우연히 만나게 되어 갈 수 있었다. 가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좋아. 입구 쪽 기념품 샵에 가서 파인애플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베렛이 기념품도 사주셨다.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정말 맛있었다!


점심은 지오반니 새우트럭에서 먹었다. 유명한 맛집답게 줄이 어마무시했다. 후기 중에는 기대보다 별로였다는 평도 있어서 걱정했지만, 내 입맛엔 잘 맞았다. 매운 새우는 지나치게 매워서 갈릭 새우가 더 잘 들어갔다. 폴리네시안 문화센터로 가는 길은 참 길었다. 하와이도 교통체증이 심한 곳은 정말 심한가 보다. 중간에 너무 졸렸는데 베렛과 이야기를 나눠야 해서 필사적으로 참았다.


사실 폴리네시안에서 다양한 걸 관광하고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티켓에 포함이 안되어있던 건지 정작 센터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대신 규모가 큰 뷔페에서 맛있는 걸 잔뜩 먹었다. (덕분에 지금 배가 터질 것 같다..) 마음 같아선 일주일은 음식 없이도 견딜 것 같다. 그리고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 쇼가 저녁 7시 시작이라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중간에 무슨 투어버스가 있다고 해서 타려고 했건만, 알고 보니 그게 몰몬교 포교를 위한 버스였다. 하와이에도 이런 포교 활동이 있다니. 어이가 없다. 하염없이 걸어 다니며 쇼를 기다리는 중.


쇼는 굉장했다. 처음에는 으잉? 뭔가 민속촌 공연 바이브였는데 마지막 불쇼가 정말 압권이었다. 삶에 대한 전반을 다루는 내용이어서 더욱 좋았다. 끝나고 1시간 정도 살 떨리는 (?) 드라이브를 한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 아직도 배가 부르다.


<2024. 12. 31>


어느덧 하와이에도 24년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베렛은 일 때문에 출근하고 할머니는 피곤하신지 잠에 드셔서 고모, 나, 아빠, 엄마 이렇게 넷이 나섰다. 관광지로 사람이 몰리지 않는 전망대 두 곳에 갔다. 두 곳 모두 정말 끝내주는 경치를 볼 수 있었고, 그저 감탄만 나왔다. 오히려 사람이 별로 없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는 미국 분위기 물씬 나는 펍에 가서 맥주와 마르게리따 피자도 먹었다. 내가 느끼고픈 분위기 그대로였다. 껄렁(?) 대는 종업원도 사실 굉장히 자유롭고 쿨 해 보였다.


내가 너무 가고 싶었던 '솔트 앳 아워 카카아코'에도 드디어 방문! 성수동이 조금 더 북적이고 화려한 느낌이긴 하지만, 그곳도 그곳대로 매력이 있었다. 2차 점심식사로 또 피자와 햄버거를 먹었다. 파인애플이 올라간 피자와 두툼한 패티의 버거였다. 맛은 있는데.. 미국인들이 왜 그렇게 살이 찌는지 알겠달까.


다 먹은 뒤에는 알라모아나 센터에 가서 제대로 쇼핑했다. j.crew 에 가서 기본티들도 사고, 자라에서 사고 싶은 옷들을 마구 샀다. 한 25만 원 정도... 그래도 다 3~40% 세일 중이라 비교적 저렴하게 득템 했다.


한인마트에서 김치, 소주, 재료들을 골고루 사서 본격적으로 새해 전야를 준비했다. 집에 오니 이미 베렛이 스테이크, 매시드 포테이토, 샐러드 등등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 주었다. 함께 호박 파이도 만들었는데, 실수로 계란을 안 넣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그 시간 자체가 너무너무 따뜻하고 재미있었으니까.


12시가 다가올수록 여기저기서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다 각자 자기 돈으로 터뜨리는 것이라는데 연말을 이렇게 화려하게 보내는 하와이 사람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덕분에 나도 원 없이 아름다운 불꽃을 감상하고 요란하게 한 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가 생겼다. 이 기운을 받아 25년은 더욱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24년도의 아쉬운 마음들은 이제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반갑게 25년을 맞이하자.

반가워 25살의 나!


**부록

스물다섯에는...


(1) 건강한 몸을 만들자

(2) 생각보다는 실행을 우선시하자

(3) 우울보다는 행복을 남기자

(4)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자

(5) 몸도 마음도 독립하자

(6) 용기를 내어 사랑하자

(7) 남에게 친절하되, 나를 가장 소중히 하자

(8) 새로운 곳을 여행하자

(9) 마음에 드는 옷들을 입자

(10) 좋은 책들과 영화를 보자

(11) 내가 바라는 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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