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생생한 대만 일지 (2)

2025. 08. 27부터 2025. 08. 28

by 양양

<2025. 08. 27>


세 번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중산 카페 거리부터 가보기로. 첫날과 둘째 날이 워낙 빡빡했던지라 단수이에 가기 전까지는 조금 숨을 돌리고 싶었다. ATM에서 돈을 뽑고 한층 풍족해진 마음으로 중산 출발!

다시금 풍족해진 마음
이곳이 바로 중산이구나아


아침으로는 ciao ciao scones를 갔다. 얼그레이, 말차 스콘과 커피를 마셨다. 스콘은 당연히 맛있고, 무엇보다도 한적한 오전 시간이 참 좋았다. 일기도 쓰고. 이런 순간이 여행에서 기억에 많이 남더라.

아침스콘은 언제나 옳다
동네에서 탁구치던 아이들. 귀엽다


다음으로는 내가 대만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카페 부부상점에 갔다. 근데 우리만 너무 단출하게 커피를 시켰나 보다. 다들 주먹밥에, 케이크에 푸딩에 한 상 차려놓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화려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즐길 게 없는 분위기다. 역시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다. 카페에서 나오니 갈 곳을 잃었다. 밥을 먹기에도 애매하고, 날은 덥고, 입은 달달해죽겠고.

다들 이렇게나 성대하게 드시는데 말야

그나마 찾은 국숫집은 가스 문제로 30분을 기다려야 한단다. 기다림도 기다림이지만 손님을 대하는 직원의 태도에 그 식당에서는 절대 밥을 먹고 싶지 않아 졌다. 브런치집은 만석이라 내쫓겼다. 그래서 일단은 <빙찬>으로 가기로 했다. 10분 정도를 웨이팅 하고 망고빙수를 시켰다. 너-무 맛있었다. 그냥 술술 들어가더라. 기다린 시간보다 더 빨리 먹은 것 같다. 엄마는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다고 하셔서 매콤한 국수를 먹으러 떠나고.. 나는 중산거리와 빈티지샵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너무 중국(?) 풍에 화려해서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찾지는 못했다. 아, 중산 제일 기대했는데 괜히 아쉽다.

중산의 매력은 역시 골목
내 망고빙수 원 픽!
엄마의 첫 해외 혼밥 도전! 멋있었다 엄마의 용기가


오후에는 지하철을 타고 단수이로 향했다. 너무 피곤했지만 그래도 하루가 아까우니! 최대한 즐겨야지. 날이 너무 습해서 돌아다닌 게 더 힘든가 보다. 역에 내려 버스 타기 미션에 직면. 어리바리한 채로 헤매는데 다행히 한 여성분의 도움으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홍마오청과 진리 대학교를 둘러보았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컨디션이 좀만 더 좋았다면 눈에 더 담았을 텐데, 몸 상태가 영 별로였다. 더워서 그런 건지 체력의 문제인 건지 돌아다닐 힘도 없고, 혼자 온 게 아니니 나도 모르게 에너지를 더 쓰고 있었나 보다. 게다가 하필 다이어트 중에 여행을 오니 먹는 것 하나하나 다 스트레스를 받고 혹시나 살이 쪄서 갈까 봐 강박적으로 굴고 있었다. 여행 와서 먹고 싶은 걸 참는 것도 진짜 고문이다. 여행을 즐겨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홍마오청
진리대학교


그래도 이 와중에 단수이 일몰을 아름답다. 단수이 강변을 걷는데 낭만 치사량 초과하다.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 말차라테를 시켜놓고 더 진한 일몰을 기다린다. 음, 뭐랄까? 뭔가 벗어나고 싶어서 대만여행을 왔는데 조금 피로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마음에는 짐이 한가득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닐 게 아니라 그저 쉬었어야 했나? 아니면 그냥 일상에 충실해야 했나? 나의 지침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왜 여행도 나를 치유해주지 못할까. 길 잃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다. 게다가 내일 하루를 보내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9월. 미리 뭔가를 걱정하는 건 어리석다는 걸 알지만 나에겐 걱정이 가득하다. 어디에 도달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목적지까지 과연 갈 수 있을까? 그럴 힘이 남아있나? 잠시만이라도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청년
각자만의 방식으로 일몰을 즐긴다


일몰은 황홀했다. 야경도. 바람까지 솔솔 부니 덥지도 않고 딱 좋았다. 역까지 걸어가는 중간에 먹어보고 싶었던 모찌(?) 도 먹었다. 우유 반죽 같은 걸 땅콩 가루에 굴려서 먹는 새로운 음식이다. 내 취향에 제격이다. 찰랑찰랑. 쫀득쫀득.

단수이에서 다시 시먼딩으로 넘어왔다. 마지막 날 밤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알아본 과일 가게에서 망고도 사고, 야시장에서 소시지와 고구마 볼도 구매. 그런데 고구마 볼을 먹다가 엄마의 금니가 하나 빠지는 바람에 급하게 숙소로 돌아왔다. 어이없게 빠져버린 금니처럼 지나가는 마지막 날 밤이다.

새로운 음식이다! 너무 맛있다
시먼딩 야시장 제대로 즐기기
여기 망고가 정말 제대로였다


<2025. 08. 28>


대만에서의 마지막 날. 이번 여행은 특히나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해야 하나. 워낙 정신없게 여행해서 그런가? 심지어 오늘은 새벽 5시 즈음 깼다. 꿈도 아주 기묘했다. 꿈에 또 첫사랑이 나왔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사람인데, 뭐지 진짜 꿈에서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막상 깨니 무슨 말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 대화가 참 좋았던 것 같다. 이 놈의 꿈!

다시 잠에 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 이대로는 시간만 축낼 것 같아서 나가버렸다. 시먼딩 돈키호테에 가서 슬렁슬렁 구경하고, 대만식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딴삥과 샤오롱바오를 시켜 먹었는데 흠. 경험해 본 걸로 만족이다. 뭔가... 그냥 그랬다. 저렴한 맛에 간단히 먹는 거겠지? 스타벅스에서 커피도 한 잔 사고, ATM에서 돈도 뽑고. 현지인이 된 듯한 기분을 즐기며 아침을 보냈다.

배고파서 다급해진 발걸음
그냥 그랬다 크흠


이제 엄마와 함께 체크아웃을 한 후 중정기념당으로. 햇빛이 강렬했지만 정말 웅장하고 멋졌다. 내부 전시도 둘러보고 Coco에서 트로피칼 버블티도 사 마셨다. 10시 정각이 되자 근위병 교대식이 시작되었다. 굉장히 엄숙하고 각 맞춰 진행되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15분 정도를 걸어 융캉제에 도착했다. 먼저 누가크래커부터 구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두 곳에서 재빠르게 샀다. 쫄깃하면서도 달달하니 맛없을 수가 없다. 끝도 없이 들어갈 것 같아 무서울 지경이다.

11시 정각에 딱 맞추어 점심 먹으러 융캉 우육면에 도착했다. 역시 맛집의 명성에 걸맞게 오픈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있다. 우육면과 오이무침을 시켰는데, 둘의 궁합이 참 좋다. 우육면이 느끼 해질 때 즈음 오이가 상큼하게 잘 잡아준다. 대만 음식이 전반적으로 입에 딱 맞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먹어봐야 할 것들은 다 먹어봤네?

융캉제 소품샵들을 둘러본 뒤 마지막 날 나만의 공식 코스인 커피타임을 가지러 왔다. Buzi cafe라는 곳인데 정말 마음에 든다. 시끄럽지 않은 분위기에 맛있는 자몽커피가 있다. 떠나기 전에 보물 같은 카페를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기뻤다. 한없이 앉아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아- 떠나기 아쉽다.


한국에 가면 다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지. 일상을 성실하게 보내야 여행의 즐거움도 배가 된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에 조금씩이나마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충실히 살고 싶다. 그렇다고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문제를 회피하는 건 사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니까 그냥 정면돌파해 버려!


제일 좋았던 카페다
내가 그린 엄마
엄마가 그린 나


카페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찐찐 최종 망고빙수를 또 먹으러 갔다. 이번 여행에서 제대로 끝장을 본 게 아마 망고빙수인듯하다. 총 세 지점을 갔는데, 다 각자만의 매력이 있었다. 이곳의 빙수는 화려하고 달달한 매력.

마지막으로 융캉제의 귀여운 소품샵들을 더 둘러보았다. 너무 사고 싶은 파우치가 있었는데, 4만 원이 넘어 포기했다. 이렇게나 비쌀 일이냐고요. 아쉽다 아쉬워.

평생 망고빙수만 먹을 수 있어
그냥 살 걸 그랬다 아직도 생각난다

이제 정말 다시 MRT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여기저기 쉴 새 없이 돌아다녔던 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겁나게 만든다. 그래도 이번 여름, 덕분에 즐거운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좋다.

여름 대만 고마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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