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의 상하이 (2)

2024. 12. 20부터 2024. 12. 21까지

by 양양

<2024. 12. 20>


어제도 잠을 설쳤더니 다크서클이 아주 무릎까지 내려왔다. 원래는 신천지 (그 신천지가 아니다. 지역 이름이다.)를 가려다가 계획 전면 수정. 스타벅스 리저브가 일찍 열길래 여길 먼저 왔다.

손님이 많이 없는 오전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일기를 쓰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그리고 오늘 아주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기대가 된다. 시간 많으니 제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상하이의 스타벅스 리저브
꽤나 으리으리하다


사랑하는 힐데야!

삶이란 우연들로 이어진 긴 사슬이야.

네가 잃어버린 10 크로네가 바로 이곳에 떨어져 있는 것도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어쩌면 그것이 릴레산 광장에서 크리스타안산행 버스를 기다리던 어떤 노부인 눈에 띄었는지도 몰라.

그 노부인이 손주들을 보기 위해 크리스티안 산에서 기차를 타고 한참 가다가 몇 시간 후 이곳에서 그 10 크로네 동전 한 닢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지.

그날 늦은 오후에 바로 그 동전을, 집에 가려면 꼭 10 크로네가 필요한 소녀가 주웠을 수도 있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신의 계시가 이 모든 일 뒤에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지는구나.

-마음은 벌써 릴레산의 오솔길에 앉아있는 아빠로부터


: 여행 중 읽은 ' 소피의 세계'에서 좋았던 구절 필사.


난징동루 쪽과는 다르게 인민광장 쪽은 더 쾌적하고 유럽 느낌이 많이 난다. 에이브릴라빈의 노래를 들으며 걸으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소중해서 아까울 지경이다. 릴리안 베이커리에서 에그타르트도 사 먹고, 아보카도 스무디도 사 먹으려고 했더니 내부 공사 중이라고 문을 닫았더라.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점심으로는 양꼬치를 먹었다. 직원분이 거의 일대 일로 전담마크를 해주셔서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양꼬치는 정말 맛있었다. 볼이 새빨개지도록 먹었으니. 밥 먹은 후에는 티엔즈팡에 갔다. 기념품을 사갈 생각이 없었던지라 마그넷만 가도는 그냥 걸었다. 지도도 안 보고 걸어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로. 하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이들에게는 그저 일상의 풍경이겠지?
릴리안 베이커리의 에그타르트
매정하게 문을 닫은 아보카도 스무디집
볼 뻘개져가며 먹은 양꼬치


지금은 우캉루에 있다.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gathering'이라는 카페에 앉아 김뜻돌의 노래를 듣고 있다. 행복하다. 창 밖으로는 선선한 바람과 사람들이 오간다. 이 순간 나는 영원하고 싶다. 물론 커피는 좀 맛없지만. 기분이나 기억도 마음대로 꺼낼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물론 그럼 소중함이 좀 덜하겠지?

정처없이 걸은 티엔즈팡
카페 창밖으로 사람 구경하는 건 언제나 즐거워
해가 질 무렵의 우캉루

*7살 때, 유치원에서 신데렐라 뮤지컬을 했다. 나는 내심 신데렐라를 하길 원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식탐 많은 먹보 첫째 언니였다.

또래 여자 아이들보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다는 이유였다.

지금 나는 그 7살의 아이에서 얼마나 성장한 걸까?


우캉루를 둘러보고 그랜드마더에 동파육을 먹으러 왔는데 사람이 정말 많다. 한국인도 많고. 이럴 때는 혼자인 게 쓸쓸하다. 게다가 동파육을 내가 먼저 시켰는데!! 다른 테이블은 다 나오고 내 것만 나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몇 번이고 클레임을 걸었지만 조금 있으면 나온다는 말만 반복하고는 또다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결국 30분이 넘어서야 음식을 가져다줬다. 별 일이 다 있다. 혼자 여행하면 이런 게 서럽다.

분노의 동파육


어찌저찌 동파육을 먹고 (근데 이 와중에 맛은 있어서 더 짜증이 났다) 와이탄, 동방명주 야경을 봤다. 너무 아름다워서 황홀할 지경이었다. 한편으로는 외로움도 좀 몰려왔다. 혼자 온 사람들은 거의 없고 다들 친구들과 혹은 연인과. 생각이 참 많아졌다. 내 삶이 괜찮은 것 같다가도 갑자기 너무 지겹고 버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절대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없다."


는 문장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이런 나까지도 품어줄 수 있는 걸까? 아직도 답을 잘 모르겠다.


분명 이 삶이 너무 싫고 지독한데, 어떤 면으로는 이런 상태에 중독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늘 외롭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가득하지만 실제로 누군가와의 관계가 시작되는 건 두려우니까.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가도 대단한 뭔가가 되는 건 부담되니까.

*실제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너무 많은 좌절과 실패가 거듭되어서 무기력해진 걸까? 이 상태가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렸다. 이러다간 어떤 행운이나 행복이 찾아와도 슬기롭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걱정이다. 뭐, 찾아오고 나서 걱정해도 늦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 모든 건 순리대로 흘러가겠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건 연연하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순간에 충실하는 것. 벌써 상하이 여행이 끝나간다. 내일까지 후회 없이 재미있게 즐겨보자.

믿을 수 없이 황홀했던 야경


<2024. 12. 21>


벌써 상하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그래도 어젯밤에는 그나마 잠을 좀 잤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곤하지만 말이다. 아침에 부지런히 체크아웃을 하고, 바로 헤이티를 먹으러 갔다. 갑자기 헤이티가 너무너무 먹고 싶은 게 아닌가. 한국에서는 먹기 어려우니까.

그리고 신천지 (다시 말하지만 그 신천지 아니다. ) 쪽에 와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방문했다. 규모가 크거나 볼거리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독립운동가분들이 활동하던 곳에 나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참 의미 있었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라도 활동하며 나라를 독립시키려 애썼던 그 마음이 무엇이었을지 감히 상상도 안 간다.

아침부터 집념의 헤이티
현지화 되어버린 나
여행 중 의미있는 순간


기대하던 북경오리를 먹었다. 오픈런까지 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본의 아니게 한국인 커플 3팀 + 나. 이런 머쓱하고도 민망한 구도로 둘러앉아 먹게 되었다. 그래도 이 와중에 맛은 있었다. 거의 3만 3천 원이니 당연히 맛이 있어야겠지만!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마지막 끼니다.


점심 먹고 들뜬 마음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바로, '로제 팝업 스토어'에 가기 위해서였다. 이번 상하이 여행 내내 로제의 새 앨범을 주구장창 들은지라 마음이 더욱 설렜다. 게다가 중국에서 사용하는 어플인 위챗이 제대로 되지 않는 나를 직원분들끼리 상의해서 임의로 들여보내주셨다. 내가 정말 간절해 보였나 보다. 로제의 이름이 적힌 휴대폰 케이스를 구매했다. 너무 소중하다. 마지막까지 행운이 가득하다.

신천지 거리
비싼 맛이다 북경오리!
상하이에서 로제를 만나다…

여행의 마지막에는 꼭 나만의 '정리의 커피타임'을 가져야 한다. 어느샌가부터 생긴 나만의 규칙이랄까? 야외 테라스에서 로제의 노래를 들으며, 커피와 함께 일기를 쓰니 이보다 행복할 수가 없다. 이제 곧 베이글을 사들고 공항으로 가야 하지만 마지막까지 충만했다.

일기와 커피 그리고 필름카메라
상하이 안녕!!

상하이여행. 난이도가 높아서 걱정도 많이 하고,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또 유독 행복감을 가득 느끼는 순간들도 많았던 것 같다. 혼자 오랜만에 여행을 와서 그런가? 내가 행복한 순간을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거짓말 같게도 내일부턴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하지만, 늘 그렇듯 씩씩하게 살아가야지.

지루한 현실도 있지만 꿈같은 여행도 함께한다.

지겨운 불운이 있지만 기가 막힌 행운도 있다.

지독한 외로움이 있지만 따뜻한 다정함도 존재한다.

이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나를 살아가게 한다.

그저 내 앞에 놓인 어떤 순간을

진득이 체감하며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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