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생생한 대만 일지 (1)

2025. 08. 25부터 2025. 08. 26까지

by 양양

<2025. 08. 25>


대만으로 떠나는 날. 사실 이렇게까지 실감 나지 않는 여행은 또 처음이다. 왜일까? 늘 도망치듯 떠났던 여행인데도 새삼 이번엔 더욱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떠안고 가는 느낌이 든다. 원래 혼자 가려던 여행이 2주 전 갑작스레 모녀 여행이 되었다. 오히려 엄마와 함께인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아마 혼자 갔으면 계속 뭔가를 생각하기 바빴을 거야. 최근엔 생각에 골몰되어 있느라 많이 지쳤으니 아무 걱정 말고 마음껏 놀다 오자. 4일 정도는 그래도 되는 거잖아. 새로운 것들도 많이 보고, 많이 걷고, 대만의 정취를 누리고 오자.


드디어 대만에 도착했다. 정신없이 입국심사에 현금을 뽑고 당첨되지 않은 럭키 드로우까지. MRT도 운 좋게 딱 시간 맞춰 탈 수 있었다. 이제야 한숨을 돌린다. MRT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환하다. 날씨도 좋고 하늘은 푸르다. 왠지 이번 여행에 수많은 행복들이 따라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다시 한번 다짐하지만, 계획한 곳들을 욕심 내서 다 가보려 하기보다는 여유롭고 유연하게. 마음 깊이 느끼는 여행을 할래. 꼭 그럴래.


대만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더 정신이 없다. 일단 날이 참 덥고... 차도 빵빵 대고. 무슨 정신으로 호텔 체크인을 했는지 모르겠다. 대만에서의 첫 식사는 이연복 셰프의 추천 만두집이다. 새우만두와 대만식 짜장면을 먹었다. 많이 먹지는 않았는데, 현지 입맛에 맞춘 메뉴인 것 같다. 엄마는 좋아하셨고 내 입맛엔 잘 맞지 않았다. 내가 원래 만두를 좋아하지 않는 탓일지도? (직원들도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


밥을 다 먹고 화산 1914 창의 문화원구로 향했다. 귀여운 팝업 스토어들과 상점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살 건 없었지만 둘러보기 좋은 곳! 고대하던 카리도넛도 먹었다. 대만여행에서 내가 가장 기대하던 메뉴였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이었다. 어쩜 그리 담백하면서도 달달한지. 왠지 또 생각날 것 같은 맛이다.


지금은 <kaffe>라는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제야 더위가 좀 가신다. 커피도 맛나고.. 한국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조용히 쉬어가기 좋다. 이곳에서 더위 식히고, 충전하고 다시 열심히 즐겨봐야지.


다시 길을 나섰다. 베이프, 자라, 스투시까지. 쇼핑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낮보다 해가 좀 가셔서 걷기도 수월해지자 대만의 분위기가 더 눈에 들어왔다. 울창한 나무에 푸릇푸릇하니 이국적인 분위기가 참 좋았다. 쑹산 창의문화공원도 갔다. 발과 다리가 너무 아파서 제대로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대만의 지옥철을 타고 시먼딩으로 넘어왔다. 도저히 야시장을 둘러볼 체력이 안되어서 <now coffee>로 피신 왔다. 현지 학생들이 앉아서 작업하고 공부하는 분위기라 좋다. 음료도 맛있고, 시원하고. 정말 마음에 든다. 피로가 회복되는 기분. 첫날부터 하루가 참 길다.


시먼딩 가서 엄마 지파이 하나 사드리고, 용산사를 둘러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참 기나긴 하루였지만 그만큼 알찼던 첫날.


<2025. 08. 26>


잤다 깼다를 반복했던 어젯밤. 시차도 1시간 밖에 안되는데 왜 이러는지 몰라. 아침부터 부지런히 나가보는데, 대만 버스가 말썽이다. 구글맵 표시와도 다르고 연착도 잦다. 거의 15분은 더 기다린 것 같다. 긴 기다림 끝에 <일갑자 찬음>에 도착했다. 역시나 줄이 길다. 한 한국인 남성분과 합석해서 동파육 덮밥과 버거를 먹었다. 덮밥은 뭔가 장조림 맛이 나서 입맛에 썩 맞지 않았지만 대신 버거는 맛있었다. 찐빵 사이에 동파육 고기와 채소가 들어가 있다. 역시 빵은 실패가 없어.


까르푸에 들러서 둘러보고 (기념품을 안 사니 쇼핑할 게 없다. 머쓱했다.) 시먼딩으로 다시 넘어왔다. 본격적인 먹부림의 시작이었다. 일단 <아종면선>의 곱창국수를 한 입 했다. 곱창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도 맛을 보고는 흡족해하셨다. 아, 분명 한국에서 먹어본 맛인데.. 기억이 안 난단 말이야. 끈적끈적한 질감에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바로 옆 행복당 버블티도 마셨다. 한국에서도 워낙 맛있는 버블티가 많아서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쫀득한 펄과 중간중간 씹히는 흑당이 별미다.


이미 배는 포화 상태였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망고빙수'가 남아있었다. 삼형매 빙수의 오픈 시간에 맞춰갔더니 사람도 많이 없어 좋았다. 망고빙수야 뭐 맛이 없을 수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더운 와중에 빙수가 들어가니 한층 더 달달하고 행복했다. 아 배불러.


근처에 서문홍루가 있어 들러보았다. 어제는 휴무라 못 갔는데, 다행히 오늘은 가볼 수 있었다. 안에는 각종 상점과 기념품 샵이 가득했다. 귀여운 것들이 넘 많아서 눈이 핑핑 돌았지만, 나야 지갑을 잘 여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니 뭔가를 섣불리 구매하진 않았다. 여행 와서 너무 빈 손으로 돌아가나? 그렇지만 여행의 기분에 취해 잔뜩 사도 늘 집에 돌아가면 감흥이 떨어지는 지라 차라리 안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일명 '예스지' 투어를 가는 날이라 13:30에 버스를 타야 한다. 그전에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때우는 중이다. 이 스타벅스는 내부도 넓고 구조도 독특하니 매력 있다.


본격적인 예스지 투어 시작. 첫 코스는 '예류'였다. 각종 화산석(?) 들이 가득한 곳이다. 엄청나게 덥고 습한 데다가 바람이 바닷바람이어서 굉장히 찝찝하다. 그래도 꽤 진귀한 풍경을 봤다.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곳이다.

그리고 벌어진 예류 대참사. 외국인 여성분이 사진 찍어준다고 해서 완곡히 거절했는데, 끈질기게 서보라고 하셔서 마음 급히 가다가 바지와 신발, 양말에 진흙이 범벅됐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닦아도 닦아도 계속 나오던 진흙. 정신없이 나머지를 둘러보고 사진도 찍기는 했는데 뭔 정신으로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뭐, 이것도 추억이 되겠지만 말이다.


만신창이가 된 채로 '스펀'에 도착했다. 천등에 소원을 적어 열심히 날려 보냈다. 당연히 아주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간절한 바람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소소하지만 낭만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스펀의 기찻길. 그리고 닭날개 볶음밥, 아이스크림, 소시지를 먹는 엄마. 나는 그저 입맛만 다신다. 다이어터의 숙명.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역시 '지우펀'이다. 다만, 내가 상상했던 지우펀은 좀 더 화려하고 규모가 클 줄 알았는데 사진에서 본 포토스팟은 그냥 하나의 길목 같은 거였다. 사람도 바글거려서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았고 기념품도 안 사니 할 게 없었다. 너무나도 '관광지'였던 거다.


아! 아쉽다 아쉬워. 가본 것에 의의가 있는 거겠지만, 난 역시 패키지가 안 맞는 사람이다. 시간 제약도 그렇고..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는 자연스러움인데, 오늘 간 관광지들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한 곳에 몰려 인생샷을 남기기 바쁜 사람들,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는 호객행위의 연속. 그저 하나의 상품을 체험하고 온 기분이다. 아, 그렇다고 싫었다는 건 아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하나 알게 되었다는 거지.


잔뜩 지친 몸과 아픈 발. 발 마사지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급하게 이곳저곳 검색해 숙소 근처 마사지 샵을 찾았다. 26번 남자분께서 해주셨는데.. 고수의 향기가 났다. 다른 분들과는 달리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섬세하게 해 주시더라. 덕분에 새 다리로 갈아 끼운 기분. 한층 가볍고 너무 좋았다. 아, 나도 유난 떨지 않고 내가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사지받다가 별 생각을 다 한다.

바쁘디 바빴던 둘째 날도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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