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빗구미 Oct 02. 2018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육아 100일



임신 과정과 출산의 과정을 하나하나 겪어 나간다는 것은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일종의 의식과 같이 느껴진다. 1년이 되지 않는 그 기간 동안, 최대한 상대방을 배려하고 불편하지 않게 서로 조심하는 편이었다. 어쩌면 이 기간에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 편한 것을 신경 쓰면 되니까 오히려 더욱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챙기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밥을 먹을 때도, 외출을 할 때도 단지 몸만 조금 무거울 뿐 이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기간에는 별다르게 다툴일이 없었다.


아내: 자기야 기저귀 좀 가지고 오세요.
나: 여기요. 또 뭐 필요하죠? 아! 티슈 티슈!
아내: (큰 소리로) 얼른 가져오세요~
나: 여기요. 어~ 그래 당근아 금방 갈아줄게 아빠 봐. 여기 까꿍~
아내: 여기 이것 좀 받아요. 얼른 가서 수유할 준비 좀 해주세요.
나: 그래요. 알겠어요. (번개처럼 뛰어간다.)


출산 후에 겪는 모든 과정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것들이다. 물론 TV나 책에서 육아 과정에 대해 많이 보고 읽었다. 이미 머릿 속에서는 알고 있는 것이다. 힘들고, 잠을 못 자고, 계속 바쁘다는 건 많이 들었다. 육아라는 것이 시작되고부터는 집은 또 하나의 일터가 된다. 아이가 혹시 응가를 하지 않았는지, 울지는 않는지, 위험한 걸 빨고 있지는 않은지, 배가 고프지는 않은지, 졸리지 않은지 계속 체크를 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둘이 아이를 보고 있어서 뭔가 계속 정신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나: 아 왜 이렇게 정신없지.
아내: 자기가 정신 똑바로 차려요. 맨날 뭐 할 때 왜 이렇게 당황하세요. 너~무 느려~
나: 아니 그래도 잘 신경 쓰고 있어요. 자기가 요즘 맨날 뭐라고만 하네요. 
아내: 자기가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왜 이렇게 허둥지둥이에요? 이해가 안 갑니다. 
나: (....)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좀 더 빨리 해볼게요. 
아내: 중국 남자들도 요즘은 육아를 정말 잘해요. 한국에서도 육아 프로그램이 인기인데, 중국도 그렇답니다. 자기가 좀 더 분발하셔야 해요. 안 그럼 내가 힘들어요.
나: 아... 알았어요. 아빠 육아가 요즘 트렌드인가?... 아무리 그래도 육아 너무 힘드네...


사소하게 강한 말들이 내뱉어지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중국에서는 육아를 어떤 식으로 하고, 한국에서는 육아를 어떤 식으로 한다는 둥,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육아 관련 말의 종착지는 결국 나의 육아에 대한 것이었다. 육아 초기, 아이와 관련된 뭔가를 해야 하면 아내가 먼저 행동을 시작 하고 내가 보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바로 처리해야만 하는 그 일들이 계속 나를 당황하게 했다. 왠지 모르게 한 발 늦었고, 늘 머리 속은 하얗게 텅 비어버렸다. 손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일까. 한 동안 그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아내 입장에서는 좀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그래서 각 나라의 아빠들은 어떤 육아를 하는지, 내가 하는 것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자꾸 이야기를 했다. 


2-3시간마다 모유 수유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물론 낮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밤중 수유는 적응이 어려웠다. 마치 신이 우리를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 너희 사랑의 강도를 테스트 하마'. 밤에 2-3시간마다 깬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수유를 해서 아이가 안정되는 때도 있었고, 그냥 깨서 울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서로 번갈아가며 아이를 안고 재웠다. 어떤 날은 아무리 안고 있어도 잠을 안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냈다. 그걸 거의 100일 동안 해야 했다.



당근이: 응애~응애~응애~
나: (벌떡) 어 당근아 아빠가 안아줄게
당근이: 응애~응애~응애~
아내: 이리 줘봐요. 수유부터 해보자.
(잠시 후)
아내: 어휴.. 한참 안고 있었는데 안 자고 찡찡하네요. 자기가 좀 해봐요.
나: 네네 내가 안을게요. 당근아. 이제 좀 자자.
(30분 경과)
나: 팔이 너무 아파요.  왜 이렇게 안 자고 울지? 이제 잠들었으니 눕히자.
(눕히는 중...)
당근이: 응애~응애~응애~
나: 너무 짜증 난다. ㅠ.ㅠ 잠 좀 자자 당근아. 
아내: 이리 줘요! 


밤에 한참 보채던 아이 때문에 서로 짜증도 좀 냈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해야 한다고, 내가 좀 더 육아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몸이 힘들어지니 서로에게 큰 소리도 내게 되었다. 큰 다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때 나와 아내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서로 이해를 해야 했다. 왜 이렇게 의견이 다른지 서로 알아야 했다. 


아내: 자기가 왜 이렇게 어설퍼요.
나: 나는 최대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노력하고 있다고요. 
아내: 자기가 더 잘할 수 있어요. 좀 더 디테일하게 신경 쓰세요. 
나: 음.. 자기야 자기가 당근이 낳고 육아하면서 좀 변한 것 같아요. 이제 나를 너무 객관적으로 보는 거 아니에요? 아기가 더 소중한 가요? 좀 섭섭하네요.
아내: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당연히 아기가 우선이죠. 우리가 같이 챙겨줘야 할 1순위잖아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자기도 중요하죠. 근데 지금은 당근이가 우선이죠. 안 그래요?
나: 맞아요... 그래도...

왠지 모를 섭섭함이 들었다. 많이 들었던 그 감정. 내가 2순위로 밀렸다는 그 섭섭함. 그 감정이 들 때마다 나 자신이 철부지 어린애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섭섭함을 아내에게 이야기해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내도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혼한 이후 가장 심하게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며 논쟁을 벌였다. 다툼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고, 논쟁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하지만 그 논쟁에는 서로의 감정도 담겨있었다. 그래서 그 기간을 견뎌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출산 후 육아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결혼생활은 완전히 다른 단계로 접어든 것이었다. 


아마도 100일 정도의 육아 기간 동안, 육아 방법에 대한 조율기 혹은 교육 기를 거쳤는지도 모른다. 그 기간 동안 아이는 잠도 여러 번 나눠서 자고, 많이 보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말을 못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면 그렇게 보채면서 부모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일 거다. 그 기간은 아빠와 엄마의 육아 방법 조율기 이기도 할 테지만, 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성향을 알아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토록 힘들게 보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낸 만큼, 우리는 서서히 육아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강력한 논쟁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육아 하수에 머물러 있을지 모른다. 여전히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을 거쳐 조금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이해도가 높아질 때즘, 당근이의 밤 수면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이전 07화 각자의 언어로 아기이름을 만들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