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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May 29. 2018

아기 낳기를 결정하기까지



 20대 초 대학교를 다닐 때는 막연히 결혼 후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여느 드라마나 영화처럼 결혼하면 당연히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그 아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행복하게 가정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생각했다. 아마도 너무 먼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만의 판타지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는 여자 친구도 없었고, 결혼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생각조차 없었기 때문에 가끔씩 그렇게 많이 앞서간 시간을 상상하며 보냈던 것 같다.


 아내를 만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아내가 외국인이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겠지만, 대부분은 일반 결혼 생활과 다르지 않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문화, 취향 차이가 있을 뿐 국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다른 일반 커플과 비슷한 면이 많을 것이다. 살 집을 사거나 전셋집을 구하고, 집에 필요한 가구나 전자 제품들을 하나씩 사나가면서 신혼을 보낸다.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도 우리는 특별히 다른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아내: 우리가 둘이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편하잖아요.
나: 그쵸. 부모님이랑 계속 살다가 이렇게 나와 살면 자유롭고 좋은 거 같아요. 물론 청소와 빨래 같은 일은 많아지지만 나눠서 하면 금방 하잖아요.
아내: 맞아요. 그런데 자기는 아기 낳을 생각이 없어요?
나: 음.. 아직 모르겠어요.
아내: 나도.. 우리 그냥 이렇게 둘이 지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나도 계속 일하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나: 그쵸 당분간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아기 만드는 건, 우리 좀 더 생각해보자.


 사실 결혼하고 주변에서 아기에 대해 많이 물었다. 우리는 그때마다 아기는 아직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아기 낳는 것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딩크족의 삶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일단 맞별이를 하는 데다, 둘 다 추가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생각이 높았고, 벌이가 나쁘지는 않으니 사고 싶은 것들을 사서 생활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느 정도의 자유시간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아내와 산책도 하고 데이트도 자주 하면서 즐겁게 보냈다.  우리는 그 생활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니, 양쪽 부모님들이 슬쩍슬쩍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면서 그냥 지나쳤지만, 생각보다 부담감이 커졌다. 사실 중국에서는 아기는 필수로 낳는다. 아직 그쪽은 딩크족 같은 부부가 많지 않다. 반면 한국은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많고 좀 늦게 낳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양쪽 부모님의 압박도 강도가 다소 달랐다.


장모님: 아이는 언제 낳을 거야? 벌써 나이가 몇인데, 빨리 낳아서 하는 게 낫지!
아내: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우리가 계획 중이에요.
장모님: 00 때나 00월이 좋다고 하더라, 그때 꼭 임신하는 게 좋데!
아내: 엄마도 참!


엄마: 너네도 이제 아기 좀 있어야 되지 않나?
나: 아직 생각이 없어요.
엄마: 그래도 아기가 부부의 끈이라서 있어야 해.
아내: 어머니~ 저희가 잘 생각해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그래 너희가 잘 생각해서 해봐.


 몰론 말의 강도가 다르기는 했지만, 결국 목적은 얼른 아기를 가지라는 이야기다. 장모님도 어머니도 모두 자식이 있어야 이혼을 덜하게 되고 부부가 싸웠을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어떤 끈이 생기게 된다고 하셨다. 나와 아내는 그 생각이 참 올드하고 고리타분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이혼도 큰 흠이 아니고 서로 잘 맞지 않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한국도 그런 점에서는 조금은 나아졌고, 중국도 그런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그 당시는 우리 모두 어떤 반발심이 더 커져서 아기는 좀 더 지나서 생각해 보자고 하고 넘어갔었다.


어느 날은 아내가 중국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이야기를 한다.


아내: 자기야 저 드라마같이 우리 닮은 아기가 있으면 어떨 것 같아요?
나: 글쎄요.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어요. 상상이 안 가요. 난 길 가다가 아기들 봐도 그냥 그래요.
아내: 그쵸 나도 그렇긴 한데, 우리 닮은 아기가 있으면 너무 귀여울 것 같지 않아요?
나: 음... 나 닮으면 안 이쁠 것 같고, 자기 닮으면 귀엽겠다.
아내: 아니에요. 자기를 닮아야 귀여울 거예요. 근데 자기는 아들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
나: 나는 딸! 딸이 좋아요. 내가 남자 형제만 있어서, 너무 삭막하고 싫어.
아내: 나도 딸이라면 좋겠어요!


 뭔가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가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중국 드라마의 주인공 커플이 결국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기르는 모습을 보던 아내가 던진 그 질문 때문에 우리는 아기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인터넷 상에서 접하게 되는 육아에 대한 어려움과 키울 때 들어가는 비용 등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또한 중국은 아직도 남아선호가 남아있다. 장모님도 늘 아들을 낳아야 하지 않냐고 하셨는데, 중국 내 남아선호의 영향도 있었지만, 어느 날 한국 드라마를 접하시고는 거기서 나오는 시댁이 늘 아들이 있어야 대를 이을 수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아들을 낳은 며느리가 더 대접받는 것을 보시고는 그 이후 계속해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반면 어머니는 딸이 좋다고 하셨다. 본인이 아들만 둘을 키웠기 때문에 아들은 아주 지겹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내 집에 가면 아기, 특히 아들을 낳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우리 집에 가면 아기, 특히 딸을 낳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나: 장모님은 왜 자꾸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하시지?? 아들 다 소용없는데. 나도 아들이긴 하지만.....
아내: 중국은 아직도 어른들이 아들 낳으라고 하는 집이 엄청 많아요. 정말 자기가 상상 못 할 정도. 그리고 엄마가 옛날 한국 드라마 보고 지금 걱정돼서 하는 말이에요.
나: 한국 드라마? 막 아들 낳으라고 하고 며느리 구박하고 그런 거?
아내: 네 중국에서 좀 지난 드라마들이 나와요. 내가 보면 너무 올드. 그거 보고 엄마가 더 그러는 거예요.
나: 근데... 우리 아기 낳기로 한 건가? 요즘 자꾸 우리 이야기할 때 전제가 바뀌는 거 같아요?
아내: 음... 내 생각이.. 그래도  아기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닮은 애가 없으면 좀 아쉬울 것 같아요.
내 친구들도 아기 낳고 키우는 애들 보면 힘든데 그래도 뭔가 다른 느낌이 있다고 하네요.
나: 그래요? 나는 여전히 모르겠는데.. 아기가 있는 그 느낌이 뭔지 나는 예측이 안돼요... 그래도.. 그럼 우리가 한 번 시도해 볼까요?


 장모님의 아들 이야기를 시작으로 대화를 하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 둘 다 아기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다기보다는 아기를 낳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몰랐었던 것 같다. 그 당시도 여전히 그 의미를 몰랐지만, 그래도 우리는 방향을 틀어 아기를 낳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사실 임신을 시도하면서 빨리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 우리는 목표를 6개월 정도로 잡았다.


아내: 우리 준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저 생리가 안 오네요.
나: 그래요? 자기가 원래 좀 불규칙 적이잖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테스트기 사서 한 번 해보자
아내: (테스트기로 테스트 후) 자기야 이거 두 줄 맞나???
나: 음.. 희미하네.. 몇 개 더 사 와서 해보자.
(테스트기를 5개 정도 사온 후, 다음 날)
아내: (테스트 후) 이거.. 두 줄인 것 같은데.. 진짠가??
나: 아침에 가장 정확하다고 했죠? 일단 지금 한 번 더 해보고, 내일 아침에 또 해보자.


 우리는 믿을 수가 없어서 5번을 테스트한 후, 그 주말에 원주에 친구 만나러 놀러 가서 그쪽 가게에서 파는 테스트기로 한 번 더 테스트를 해보고는 그때서야 임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인정한 순간도 우리는 서로 어벙 벙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처럼 막 기뻐서 서로 끌어안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무덤덤했다. 정확히 기분이 걱정반, 혼란반이었다. 기쁨이 아주 약간 있긴 했지만 당황스러움이 컸다. 왜냐하면 우리는 6개월을 계획하고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너무 일찍 와버렸다.


 이후 병원에 가서 최종 확정을 선고받았다. 임신 3주 혹은 4주 정도. 이 말은 우리가 '임신해보자!'라고 외친 후에 바로 임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아내: 자기 정자가 너무 강해서 한 번에 되었어요.
나: 헉... 정말인가? 자기 난자가 이뻐서 그런가 봐요. 근데 이렇게 빨리 될 줄이야..... 내 정자가 장군감이네.... 혹시 아들인가?
아내: 아니야 딸일 거예요. 참 대단하네. 너무 당황했어요.
나: 그러게.. 이제 임신이니, 자기가 더 조심해야겠네요. 초기에 힘들다고 많이 하더라고요.  


 양쪽 부모님들은 당연히 너무 좋아하셨다. 우리보다 더 좋아하셨던 것 같다.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조용했는데, 이때만 해도 우리는 아기를 정말 낳아야 하는지 이야기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 드라마의 영향으로 아기를 낳기로 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아기를 낳으려고 결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기를 낳지 않을 거라는 확고한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아기를 낳고자 하는 생각이 조금씩 조금씩 열렸던 것 같다. 아직 성별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임신 초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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