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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Jun 12. 2018

각자의 언어로 아기이름을 만들다



 태어나서 누군가의 이름을 만들어본 적은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진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이 이름으로 지금까지 지내 왔다. 내 이름은 부모님이 이름 짓는 곳의 조언을 참고하여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평범한 이름이지만, 이 이름을 짓기 위해 아마도 부모님은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임신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강아지나 동물도 키워보지 않았던 내가 뭔가 이름을 만들 기회는 없었으니까. 아내의 이름도 지극히 평범한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조금 남자 이름 같은 느낌이어서 아내는 그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자 이름 같은데 여자 이름이니까.


나: 자기는 자기 이름이 좋아요?
아내: 내 이름 너무 남자 같아요. 어렸을 때는 정말 싫어했어요.
나: 그래도 한국어 발음으로 들으면 귀여운 이름인데요.
아내: 그래요? 나 요즘도 일할 때, 새로운 사람을 이메일로 만나면 다들 내 이름 보고 남자라고 생각해요. 실제 만나면 다들 놀라네요. 남잔줄 알았다고요.
나: 헉. 그렇구나. 내 이름은 너무 평범해서..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아내: 아닌데요. 자기 이름에는 꽃이 들어가서 중국에서 보면 되게 부드러운 느낌이에요.
나: 그래요? 한자로는 무궁화라는 의미니까 좀 부드러운 느낌은 있긴 해요. 근데 한글로 쓰면 전혀 티가 안 날 뿐.. 하하


 이름이라는 게 평소에는 알지 못하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굉장히 중요하다. 태어나고 평생 동안 사용해야 하는 것. 최근에는 개명 등의 제도를 통해 이름을 바꾸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대부분은 받은 이름을 죽을 때까지 사용한다. 그만큼 이름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지만, 개인의 삶에서 무조건 주어지는 필수 아이템 같은 것 같다. 어쩌면 부모님이 주는 선물 중 가장 오래 사용하는 선물이 아닐까?


나: 자기야. 이제 임신 초반도 넘었으니까, 우리 아기 이름도 만들어야 되지 않아요?
아내: 그렇죠.. 자기는 어떤 이름이 좋아요?
나: 잘 모르겠네... 일단 우리가 딸을 원하니까 딸 이름만 생각할까요? 요즘 유행하는 이름은 채윤, 서윤, 서은 같은 이름이 있어요.
아내: (한자를 확인한다) 윽... 너무 촌스러워요. 중국어로 하면 너무너무 촌스러운 이름이에요. 완전 시골에서만 써요.
나: 응??? 그래요? 근데 아들이면 어쩌지? 우리는 아들이면 돌림자 써야 할 수도 있어요.
아내: 복잡하네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이름을 지으면 한국과 중국에서 다 사용 가능한 이름이어야 했다. 한국어로 이쁜 이름을 하면 중국어로는 촌스럽거나 이상한 이름이고, 중국어로 이쁜 이름을 하면 한국어로 이상한 이름이 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 부모님은 혹시 아들일 경우에 대한 걱정도 하셨다.


어머니: 아직 성별은 모른다니?
나: 네 아직은 모르고 좀 더 지나야 해요. 16주 즘 되어야 알려 준다고 하네요. 저희 생각엔 딸일 거 같아요.
어머니: 나도 딸이면 좋겠다.
아내: 저희가 이름을 만들고 있는데 어려워요. 한국말로 만들면 중국어로 이상한 이름이 되네요.
아버지: 아들이면 돌림자 넣어야 된다.
나: 에이 그것까지 생각하지 말고요. 요즘 돌림자 꼭 안 넣어도 돼요. 우리 선택이죠.
아버지: 그래도 해야 되지 않나?
나: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조금 자신 없는 말투로..) 딸이 확실해요.


 무슨 확신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 아기가 딸일 거라 확신했다. 아니, 딸이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나라에서 모두 이쁜 이름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난 후, 어떤 TV 인터뷰를 보다가 그 대상자가 순 한글 이름을 쓰는 것을 보았다. 그때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 자기야!! 우리 이름을 한국어, 중국어 각각 만들자.
아내: 이름을 두 개 만들자고요? 근데 정부에 등록은 하나만 되잖아요.
나: 네 내 생각에는요. 순 한글 이름을 하나 만들어서 그걸 한국에서 쓰고요. 중국어 이름도 만들어서 중국 친척들에게는 그 이름으로 부르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각각 만들면, 각각 이쁜 이름을 만들 수가 있어요.
아내: 오 좋은 생각이네요. 그럼 중국 이름은 내가 만들게요. 한글 이름은 자기가 만드세요~


 그렇게 우리는 각자 이름 만들기에 집중했다. 나는 순 한글 이름을 주욱 검색해 보고 나열해 놓고 그 의미를 같이 살펴봤다. 진짜 이렇게 많은 한글 이름이 있는지 몰랐다. 한글 이름은 대부분 그 뜻도 참 이쁘고, 이름 자체도 어감이 좋았다. 가은, 가온, 다솜, 나나, 맑음, 가을, 하늘 등 정말 다양한 이름들이 많았다. 그 이름 중에서 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새나, '새처럼 자유롭고 아름다운'이라는 뜻을 가진 이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성까지 붙이면 조금 놀림을 당할 수 있는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새나 라는 이름은 영문으로 간단히 표기할 수 있고, 어감이 좋았다. 태어날 내 아기가 이 이름으로 자유롭게 어떤 것이든 하길 바랬던 나는 결국 이 이름을 선택했다. 이 이름을 가족들에게 공개했을 때, 어떤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아내는 중국어 이름 때문에 여러 모로 고민하는 듯했다. 나는 중국어 이름이 어떤 것이 예쁜지 전혀 알지 못한다. 성룡(청룽), 이연걸(리젠제) 등 몇몇 배우들의 이름만 알기 때문에 어떤 이름이 나올지 꽤나 기대하고 있었다. 아내는 드디어 중국 이름을 만들었는데, 중국어 발음으로 챠오모 였다. 侨 [더부살이 교] 와 墨[먹 묵] 자를 쓰는데, 한국 발음으로 읽으면 교묵 이 된다. 물론 한국 이름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 이름이긴 하다. 귀엽게 중국어로 모모라고 부르면 애칭도 만들어진다. 이 중국 이름은 중국에서도 많이 없는 이름인데, 그래도 예쁜 이름이고, 중국 뜻으로는 똑똑하고 이쁘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아내와 식구들 모두 이 이름을 아주 좋아했다.


나: 저 아기 태어나면 이름은 새나 라고 하려고 지어놨어요. 순 한글 이름으로 새처럼 자유롭고 아름다운, 이라는 뜻이에요.
아내: 마침 이번 주 병원 다녀오니까 딸이라고 해서 편하게 지으면 될 것 같아요. 이름 예뻐요.
어머니: 이름은 너희가 같이 지어야지 우리는 별 의견이 없다. 한글 이름이라 이쁘다. 그리고, 내가 아기 임신할 즘 꿈을 꿨는데 새와 관련된 꿈이었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네!
나: 정말요? 오 뭔가 딱딱 맞는 느낌이네요. ㅎㅎ
아내: 신기해요! 어머니가 무당이세요?
나: 하하하;; 무당은 아니죠 하하 ;;;
(몇 주 후...)
아내: 그리고 중국 이름은 챠오모 로 하기로 했어요.
부모님: 응? 뭐라고?
나: 아 중국 발음으로 챠오모 라고 하고요. 한국 발음으로는 교묵이에요. 더부살이 교와 먹 묵 자를 써요.
어머니: 그렇구나. 사부인한테도 말씀드렸나?
아내: 네네, 저희 식구들도 귀여운 이름이라고 좋아시하네요.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아기 이름을 만들었다. 아기가 태어나 자라고 있는 지금도 각자의 언어로 부른다. 아기는 신기하게도 그 이름 모두 자기 이름으로 생각하고 각각 불러도 쳐다본다. 아이가 더 컸을 때,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이름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물론 커가면서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아이가 바꾸고 싶어 한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태어나고 자신의 의식이 생긴 다음에 이름 때문에 자신이 고통스럽다면 언제든 그 이름을 바꿔도 된다. 그래도 그전까지는 나와 아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아기에게 준 그 이름은 소중히 불려질 것이다. 그렇게 나와 아내는 태어날 아기에게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첫 선물을 했다. 우리의 첫 선물인 그 이름이 정말 평생 잘 간직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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