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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Dec 11. 2018

텅 빈 공간 속 행복한 돌잔치



아이가 한 달 두 달 커가는 순간을 지켜보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 행복을 주변에 알리기 위해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 1년을 크게 축하하는지도 모르겠다. 육아의 힘든 순간도 많이 겪지만, 가만히 아이의 눈을 들여다볼 때면 따뜻한 사랑이 자라난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내 사랑도 자란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덧 1년이 지난다. 


아내: 벌써 당근이 태어난 지 1년이 다되어 가네요. 
나: 빠르다. 우리 돌잔치는 할 거죠?
아내: 음.. 근데 돌잔치해야 되나? 외가 쪽은 사람도 없잖아요.
나: 그렇죠... 그래도 간단하게 하자. 그냥 가까운 데로 한 번 알아봐요. 자기가 멀리서 하는 게 좀 불편하면요.
아내: 네 가능하면 가까운 데서 하면 좋겠어요. 1년까지는 최대한 조심하려고요.


나와 아내는 여전히 출산 초기 당근이가 아팠던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신생아 중환자실 그리고 결핵 사태로 인해 1년 동안 정말 얼마나 가슴 졸이고 조심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주의를 기울여 당근 이를 보살폈는데 1년이 된다고 하니 우리도 무언가 축하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다면 먼 길을 한 발 한 발 살피며 내딛어 왔다. 


우리는 최대한 주변에서 돌잔치할 장소를 찾았다. 사실 최근에는 돌잔치를 크게 하지 않기 때문에 작은 장소를 찾기는 수월했다. 하지만 집 주변에는 거의 50석이 기본인 장소들이 많았다. 여기저기 한참을 문의한 끝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로 예약을 했다. 음식도 괜찮았고, 그나마 주변에서 가장 기준 인원 수가 적은 곳이었다. 


돌잔치 준비는 결혼 준비와는 다르다. 결혼식에는 많은 손님들이 방문하여 축하를 해 주는 큰 행사지만 돌잔치는 그에 비하면 아주 작은 소규모 행사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거의 가족만 모여서 하는 편이다. 그래도 행사는 행사여서 이런저런 사소한 것을 준비하는데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결혼식 준비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준비는 내가 챙겼다. 그리고 결정해야 할 것이 있으면 아내에게 설명하고 같이 결정했다. 그렇게 우리의 공식적인 두 번째 가족 행사를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사실 처음에는 돌잔치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마음속에 당근이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씩 자라온 것 같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우리의 사랑이 자라는 만큼, 미안함도 커졌다. 그동안 백일도 챙기지 못했고 스튜디오 사진도 찍지 못했다. 누군가는 그건 다 쓸데없는 거라고 이야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못해준 입장에서는 그만큼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어쩌면 나와 아내는 그렇게 진정한 부모의 길을 들어섰는지도 모르겠다. 


나: 결혼식만큼은 아니어도 챙길 것이 많네요.
아내: 그러게요. 그래도 당근이 첫 생일이니까 우리가 잘 준비하자. 동영상도 고르고 사진도 고르고.
나: 스튜디오 사진은 안 찍어도 될까요? 
아내: 내가 듣기로 돌잔치 장소에서 스냅사진을 찍어준다고 했어요. 그거면 될 것 같아요.
나: 그래요. 음.. 근데 사람이 몇 명이나 올까. 50명이 안될 것 같은데... 
아내: 그럴까요? 자기 친구들은 오지 않아요? 
나: 초대장을 주긴 했는데, 올지는 모르겠어요. 요즘은 돌잔치는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요. 
아내: 혹시 많이 안 와도 실망하지 말자. 우리끼리 재미있게 하면 돼요.


사실 두려움이 컸다. 결혼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 줬지만, 돌잔치에는 오지 않으면 어쩌지. 그 막연한 두려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 어려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받아들여야 했다. 그 순간은 돌잔치 당일에 바로 찾아왔다. 돌잔치에 친지들이 방문하고 친구들이 방문했지만 중간에 위치한 테이블들은 채워지지 않았다. 1시간 반 정도를 기다리다 모인 사람들과 함께 MC가 진행하는 행사도 하고 밥도 먹었다. 가운데 빈 테이블은 나와 아내와 당근이가 행진을 하고 춤추고 앉았다. 그렇게 가운데서 나의 가족과 함께 하는 그 순간 두려움은 없어졌다. 


사람이 없으니 다른 친지나 친구들도 참여도가 높아졌다. MC가 시키는 대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당근이 와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당근이의 돌잔치는 모두가 참여하는 행사가 되었다. 사람이 걱정하던 사람들도 막상 행사가 시작되자 적극적으로 행사를 즐겼다.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대다수의 손님들이 가져갔다. 


당근이는 돌잡이로 무엇을 잡았을까. 평소에 공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당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골프공을 잡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만 원짜리 지폐를 잡았다. 나와 아내도 만족했다. 당근이가 무엇을 잡던 본인이 원하는 걸 잡았으면 우리도 만족한다. 행사 내내 잠깐잠깐 울먹이긴 했지만 당근이는 끝까지 울지 않아서 행사를 한결 수월하게 끝낼 수 있게 해 줬다. 


아내: 어휴. 자기가 고생이 많으셨어요.
나: 아니에요. 자기가 고생했어요. 이렇게 우리의 행사가 끝났네. 돌잔치 다음은.... 결혼식인가?
아내: 자기야! 뭔 소리예요. 당근이 결혼시키려면 아직 멀었어요. 
나: 하긴.. 그리고 결혼식은 본인이 준비해야지 하하.
아내: 잘 끝나서 다행이에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자기가 실망하지 않았어요? 우리 가족들이 멀리 있어서 아쉽네요.
나: 아니에요. 그래도 다들 참여도 많이 하고 더 재미있었어요. 기억에 많이 남을 거예요. 직접 참여했으니까요. 당근이는 기억 못 하겠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남았으니까.
아내: 그래요. 그래도 잘 끝났으니 된 거죠. 


돌잔치 내내 방문한 사람들의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넨다. 모든 사람들은 축하의 말을 건네고, 아이에게도 인사를 한다. 결혼식에 방문한 사람들보다 돌잔치에 방문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는 좀 더 가까운 사람들인 것 같다. 내가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 방문한 사람들. 그들은 나와 아내, 그리도 당근이 와 함께 파티를 즐기고 한참을 미소 짓다 돌아갔다. 비록 텅 빈 행사였지만 그 속을 우리는 행복과 사랑으로 채웠다. 상투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돌잔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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