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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Apr 30. 2019

아픈 아이를 보는 무기력한 아빠




아이를 아무리 잘 보호한다고 해도, 넘어져 다치거나 질병에 걸리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아이 낳기 직전에는 전의를 다지며 최대한 아이가 안 아프게 하겠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쉬운 건 아니다. 아이는 점점 커갈수록 위험한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나가서 만지고 먹고 뛰어놀면서 세상을 배워 나간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만나 관계를 맺고 같이 놀면서 관계도 배워간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과 만나다 보면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발생하는 질병 중 가장 흔한 것이 감기 일 것이다. 콧물, 기침은 또래 아이들이 많이 겪는 바이러스성 질병이다. 힘들어 보이지만 그래도 열이 나지 않으면 뛰어놀 수 있고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아주 심해지지 않으면 집에서 쉬면서 낫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열이 나면 병원에 바로 가서 진료를 받는다. 합병증인 중이염도 흔한 증상이다. 당근이도 벌써 몇 달 때 기침과 콧물을 달고 사는데, 얼마 전에는 중이염 때문에 약을 처방받아먹어야 했다. 그것도 흔한 일상의 장면 중 하나라면 하나일 것이다.


지난 주말은 잠시 쌀쌀했던 날씨가 비 온 뒤 조금 따뜻해진 날이었다. 당근이는 기운이 넘쳤고 온갖 음식들을 먹고 싶어 했다. 키즈카페뿐만 아니라 어디론가 놀러 가고 싶어 했다. 날이 따뜻해진 이후 주말에는 하루는 아내와 함께 외출하고 하루는 나와 아이 만 키즈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기침과 콧물이 나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크게 불편하게 아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밖으로 나갔다.


아내: 내일은 어디로 가세요?
나: 내일은 오전에 결혼식이 있어요. 내가 당근이랑 먼저 가서 거기서 점심 먹을게요.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만나요.
아내: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나: 에이 그럼요. 혼자 충분히 잘할 수 있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내: ㅎㅎ 그래요. 걱정은 안 할게요. 그럼 끝나는 시간 맞춰 만나요. 만나서 어디 가요?
나: 그 근처에 현충원이 있어요. 거기 가서 한 바퀴 산책하고 와요.
당근이: 아빠! 아빠! 아빠! 아빠! 나도 형충 갈 거예요~
나: 하하하 그래그래 아빠가 꼭 데리고 갈게 걱정하지 마.
당근이: 그리고 막대사탕! 딸기맛 좋아요.



날은 너무 좋았다. 결혼식 음식도 맛있었고, 당근이도 굉장히 많은 양의 음식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식당에 설치된 TV로 식을 보고 일찍 나와 아내를 기다리며 간식을 몇 가지 먹었다. 그리고 현충원에서 당근이 와 뛰어놀며 신나게 놀았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 잠든 후에 생겼다. 당근이는 새벽부터 계속 먹은 걸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침까지 계속 구역질을 하며 속을 게워내는 당근 이를 데리고 얼른 옷을 입혀 일요일 진료를 하는 소아과로 향했다.


장염. 아마도 급성 장염인 듯했다. 결국 링거를 맞으며 2시간 정도를 병원 주사실에서 누워있었다. 당근이는 그 와중에도 계속 구역질을 하고 토해서 비닐봉지를 들고 옆에서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장염은 처음이었다. 옆에서 계속 구역질을 하며 울먹이는 아이를 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내가 아닌 나의 아이가 병원 링거를 맞고 힘없이 누워있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저절로 눈시울이 젖어드는 아침이었다.


나: 도대체 왜 장염에 걸렸을까요.
아내: 어제 너무 과자를 많이 먹은 거 아니에요? 자기가 저거 초록색 과자도 사주고요!!
나: 아니에요. 저 초록색 과자는 내가 다 먹었어요. 내가 당근이 한 테 사준 건 두 개뿐인걸요.
아내: 그래요? 이상하네...
나: 근데 어제 놀고 집에 올 때 엄청 지저분한 손으로 과자마저 먹지 않았어요?
아내:아... 맞다... 그랬어요... 그래서 그런가....



아내와 원인을 토론해봤지만 그저 추정할 뿐이다. 결국 결론은 우리 둘 다 잘못했다는 결론이다. 아이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거실에 눕히고 좋아하는 동영상을 틀어줬다. 아이를 잠시 쉬게 두고 지나가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울상을 하고 있는 어떤 중년 아저씨가 보였다. 아침과 점심도 먹지 않았는데, 아이 걱정 때문에 밥 먹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아이가 질병에 걸리는 걸 다 막을 수는 없겠지만 왠지 막을 수도 있었을 질병에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돌아봐도 다시 현재 상태를 돌릴 수는 없다. 최대한 아이가 편한 것을 해주고 싶지만 해줄 게 없다. 복통으로 인해 받고 먹을 수 없고, 복통이 잦아들면 그때서야 죽을 먹을 수 있다. 오후 늦게 잠에서 깬 아이는 배가 고픈지 자꾸 뭔가 먹겠다고 떼를 쓰며 운다. 심지어는 쌀 통 앞에 그릇을 들고 가 앉아서 밥을 먹겠다며 쌀을 그릇에 담고 있다. 정말 배가 많이 고플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줄 수가 없다. 결국 다시 우는 아이를 달래 자리게 앉히고 동영상을 보여준다.


나: 자기야. 당근이 좀 봐요. 참 웃긴다.
아내: 왜요?
나: 자 가만히 같이 보고 있어요. 많이 배고픈가 봐.
당근이: 아빠. 나 이거 사줘요. 나 막대 사탕 좋아요. 딸기맛 좋아. 아빠. 아빠. 나 뽀로로 짜장면 먹고 싶어 해. 사주세요.. 아빠 나 아이스크림 좋아. 나는~ 딸기맛 좋아. 3개 먹을 거야.
아내: 어머.....
나: 지금 계속 먹는 동영상만 선택해서 보고 있어요. 자기랑 똑같네. 자기도 배고프면 먹는 영상만 찾아보는데.
아내: ㅎㅎㅎ 피는 못 속이나 봐요.


내가 해줄 게 없다는 마음은 조바심을 나게 한다. 먹으면 속이 불편하니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옆에서 같이 놀아주고 계속 이야기해주는 방법밖에는 없다. 계속 뭔가 먹고 싶어 나에게 이야기하는 당근이 와 눈을 맞추고 반복해서 설명한다. “우리 다 나으면 먹자. 지금 먹으면 배가 또 아파서 오래오래 못 먹어요” 당근이는 알았다고 대답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배고프다고 울상을 짓는다. 질병에 걸린 아이는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금방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그게 어쩌면 아이들의 생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먹어야 기운이 나고 기분도 좋아지니까.


열이 나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다. 구역질은 많이 잦아들었다. 아이를 일찍 재우고 나니 온 몸이 찌뿌둥하고 머리가 아파온다. 하루 종일 긴장하며 보낸 하루가 그렇게 갔다. 장염의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많은 음식을 못 먹는 당근이는 여전히 먹고 싶은 걸 수다스럽게 이야기한다. 특히나 아내보다는 나에게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들어줄 수가 없다. 질병이라고 하면 감기만 떠올렸던 우리에게 장염이라는 새로운 질병에 대한 경험이 생겼다. 감기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상적 질병이지만, 장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계속 토하는 아이를 보는 게 괴롭다.


무엇보다 신생아 때 힘없이 주사를 꼽고 누워있던 아이가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건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미 3살이 된 아이의 모습과 작은 신생아 때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더욱 가슴이 아파온다. 사소한 질병 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부모 입장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의 모습을 보다 보면 부모는 자연스럽게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온갖 걱정을 하게 하는 아이의 질병엔 특별한 약이 없다. 그저 잘 견디고 아이를 챙긴 후, 아이가 회복했을 때 우리에게 지어주는 밝은 미소가 그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유일한 약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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