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빗구미 Oct 23. 2018

중국 여자는 드세다?




고정관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을 살다 보면 딱 정해진 생각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남자는 적극적이어야 하고,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부터, 10대는 어때야 하고, 30대는 어때야 하다는 둥, 우리는 어떤 틀 안에 대상을 넣어 그 안에서 해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다양한 글을 읽다 보면 어느덧 이런 관념이 내 생각이 되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내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오랜 기간 동안 그런 정보를 접하다 보면 어떤 현상이나, 사람을 볼 때 구분 짓기를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세그멘테이션을 하게 된다.


아내를 만나서 연애할 때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중국 여자이기 때문에 드세거나 강하지 않냐는 사람들의 질문이다. 친구, 직장동료, 가족들까지 중국 사람에 대해 일반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 아내를 대입하여 그럴 거라 생각한다.


친구: 중국 여자 만나는 거 힘들지 않냐?
나: 뭐가 힘들어. 다 똑같지. 그냥 사람이랑 연애하는 건데.
친구: 아냐. 중국 여자가 좀 쎈데... 너는 좀 조용한 스타일이라 나중에 힘들어지는 거 아니냐?
나: 에이. 그거 다 잘못된 일반화야. 내 여자 친구는 조용하고 수줍은 스타일인데.
친구: 아냐 그래도 나중에 결혼하면 본성이 나올지 몰라. 잘 탐색해봐 실제 성격을~
나: 참... 이놈아 너 연애 걱정이나 해라 짜슥~
친구: 내 얘기는 왜 나오냐. 걱정돼서 하는 말이여~ 술이나 마셔~


주변에서 하도 그런 물음을 하다 보니, 정말 그런가 생각하게 된다. 오래 만나다 보면 실제 강한 성격이 나올까? 아니 이렇게 부드러운데 뭘 강해. 그래도 결혼하면 또 달라지는 거 아니야? 혼자서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으니, 내 머리만 아팠다. 내 머리 속 구분 짓기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나: 자기야, 중국 여자들이 쎄다는데 진짜예요? 다 그런가요?
아내: 누가 그래요? 중국 여자가 강하다고 하나요?
나: 주변에서 다들 중국 여자가 쎄다고 하는데, 나보고 조심하라며 ^^
아내: 음.. 실제로 중국 대도시 쪽은 중국 여자들이 좀 강한 면이 있어요. 상해나 북경 같은 대도시는 여자들이 일도 많이 하고 주체적이어서 커리어우먼들도 많고요.
나: 그래요? 그럼 결혼하면 남자가 주부하고 그러나? 아니, 아내 말이 더 힘이 있나요?
아내: 보통은 남자도 요리를 하고, 여자도 하죠~ 다들 알아서 각자 요리할 때는 잘 해요. 중국 남자도 요리 잘한답니다. 그리고 아내 말이 힘 있는 게 아니고 똑같은 위치라고 해야 하나? 그래요.
나: 아.. 대등한 위치. 그럼 성격이 좀 쎈건가?
아내: 아니 아니, 자기가 잘 못 이해한 거예요. 누가 강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서로 똑같은 위치라는 거죠. 남편과 아내 다요. 집에서 비슷해요.



중국의 대도시 여성들은 사회생활도 많이 하고, 전문가 집단도 많다. 그래서 남편과 대등한 위치에서 집안일을 분담하고 대소사를 결정해 나간다. 그리고 보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개발해 나가는 여성들이 많다.  사실 이것도 어떤 큰 틀에서 전체 사회집단으로 바라봤을 때 이야기고, 개개인의 특성은 다 다르다. 예를 들어 도심지 근처 외곽 지역에서는 아직도 남아선호 사상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의 위치는 동등하지 않다. 하지만 도심부 중심으로 들어오면 여성은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집안일은 철저히 분담한다.


실제로 아내는 연애할 때는 완전히 순진 무구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늘 내 결정을 따르고 잘 맞춰줬다. 이렇게 보면 강한 여성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혼 준비를 시작하고, 결혼과 출산까지 거치는 동안 아내는 자신의 일에도 집중하고 가정 내에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의 커리어가 쌓여가는 것이 느껴졌을 때, 아내는 더욱더 주도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욕심도 냈다. 육아에도 전문가가 되어, 늘 나보다 한 발 앞서갔다. 이런 변화 과정을 알지 못한다면, 아내도 누군가에게는 강한 중국 여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내는 드세지 않다. 나와 만나고 나서 내 의견을 듣고 같이 결정한다.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면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지만, 상대방이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설득을 한다. 집안일도 둘이 나눠서 한다. 식사 준비를 할 때는 요리를 각자 하나씩 준비한다. 밑반찬은 먹고 싶은 사람이 만든다. 이래라저래라 시키지 않는다. 그저 같이 논의해서 결정할 뿐이다. 또한 회사 업무를 처리할 때는 매우 꼼꼼하고 전문적이다. 아내의  회사 안에서는 꽤 역동적인 직원으로 평가받는다.


아내: 자기야 내가 내일 갑자기 출장 가야 할 것 같아요.... ㅠ
나: 앗. 이렇게 갑자기?
아내: 자기가 우리 회사 알잖아요. 항상 급 출장이에요.
나: 그래요. 내가 당근이 잘 보고 있을게요. 자기가 다녀와요. 내가 하루 휴가 쓰면 돼요.
아내: 고마워요. 내가 주말에 하루 당근이 데리고 놀게요. 자기가 혼자 놀아도 돼요.
나: 아니어요. 같이 노는 게 좋아요~ 자기가 출장 가서 일 잘 마무리하고 오세요. 자기가 이제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구나 ^^
아내: 그래요! 내가 없으면 안 되죠 하하하.
나: 자기가 이렇게 부드러운데, 왜 중국 여자들은 드세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아내: 그거 중국 드라마 때문도 있어요. 드라마 속 상해/북경 여자들은 완전 쎄요. 막 회사 사장 뺨도 때리고 막 사귀자고 하고.
나: 뭐야. 막장 드라마가 중국에도 있어요?
아내: 아내의 유혹만 하겠어요? ^^ 하긴 그 드라마 중국 리메이크도 있어요. 암튼 그런 TV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있어요.
나: 그렇구나. 어쨌든 그런 것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중국 여자가 쎄다고 하는 이미지가 생겼네요.


한국에도, 미국에도, 중국에도 드센 여자들이 있다. 아니, 드센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드센 여자'라는 구분 짓기는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그저 한 사람 한 사람 돌아보다 보면 좀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다. 이 시대에 어떤 유행을 만들거나 관념을 만드는 데에 방송매체만큼 강하고 빠른 것은 없다. 방송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는 실제 그 시대를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떤 관념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중국 여자가 드세다는 개념으로 중국사람을 구분 짓기 하는 것은 좋은 태도는 아닌 것 같다.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고정관념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스며들어 우리 뇌를 사로 잡는다. 결국 그게 상대방을 바라보는 잘못된 색안경일지라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다른 나라 외국인에 대한 시선은 좋지 않다. 특히 중국 사람에 대한 시선은 말도 못한다. 중국 여자가 드세다는 시선 뿐만 아니라, 중국 사람 하면 '짱개' 라고 낮추어 부르며 하대 하는 것도 일종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나쁜 구분짓기다. 한 번에 모든 시선이 바뀌진 않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들을 바라볼 때 올바른 잣대로 보고, 올바른 말로 그들을 부르는게 좋을 것 같다.    






    

  

이전 12화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왜 행복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