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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Jan 29. 2019

상대방의 표정으로 기억되는 행복한 순간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우리는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상대방이 행복해하면 더 큰 행복을 같이 느끼게 된다. 그래서 늘 같이 있는 사람을 신경 쓰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을 때, 같이 간 사람의 반응이 별로 좋지 않을까봐 보는 내내 영화보다는 옆 사람의 반응을 보던 시간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갔을 때, 옆에 있는 아내의 표정에 많이 신경 쓰게 된다. 아내의 반응을 보고 나도 같은 감정을 느끼려 노력한다. 그만큼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같이 감정과 그 순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아동심리전문가 서천석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그런 포스트를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모든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기 어렵다. 즐거웠던 순간의 기억들 중에서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는 것들은 같이 경험했던 상대방의 반응 때문이다. 같이 했던 그 사람이 행복해했던 그 표정과 감정은 우리가 그 순간을 더욱 기억에 남게 만든다.


아내: 왜 그렇게 제 얼굴을 자꾸 보세요?
나: 이뻐서요.
아내: 눈 좀 봐요. 어디 아파요? 눈에 뭐가 들어갔나요?
나: 뭐예요~ 하하하. 자기 표정 보는 거예요. 우리 태국에는 처음 여행 왔잖아요. 난 여행 올 때 자기 표정도 담아가고 싶어요.
아내: 우리 사진 많이 찍잖아요. 사진에 표정을 담아주세요~
나: 그래요. 자기 저기 서봐요 같이 찍어요. 하나, 둘, 셋!
아내: 자 봅시다. 검사.검사. ... 이게 뭐예요. 내 머리가 엄청 커 보이네. 자기가 좀 뒤에서 찍어주세요~


결혼하고 나서도 옆에 있는 사람의 감정을 살피려 애쓴다. 장모님과 이야기할 때, 어머니와 이야기할 때, 처남과 이야기할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그들의 표정을 본다. 다 같이 떠난 여행에서 사람들이 밝은 모습으로 웃는 모습을 보면 그 여행도 밝은 빛으로 기억된다. 사진으로도 남기지만, 그 시간에 음악을 함께 기억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참 지나 사진을 보며 그 당시를 생각하면 함께 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때 들었던 음악이 떠오르고, 그 광경이 떠오른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에 집중할 때는 몸이 힘들지만, 아이가 자라는 한순간 한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둔다. 그런데 사진으로만은 그 당시의 분위기를 담는데 한계가 있다. 좀 더 기억에 담으려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나 표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늘 아이 사진을 담을 때, 사진을 찍는 아내의 표정에 주목한다. 아내는 밝은 표정으로 아이를 카메라에 담는다. 약간 지친 듯 보이는 표정에도 미소가 담긴다. 그건 아이를 볼 때 저절로 나오는 표정이다.


나: 자기가 당근이 사진 찍어봐요.
아내: 맞아요. 내가 찍어야 돼요. 자기가 아직 이상하게 찍어요.
나: 많이 찍어요. 난 옆에서 볼래요.
아내: ‘찰칵’, ‘찰칵’
나: 사진 찍는 거 재밌어요?
아내: 이거 꼭 담아둬야 해요. 다들 아기들 금방 큰다고 하네요.


당근이가 좀 더 크고 나니, 이제는 아이의 표정도 내 기억 속에 담는다. 막 아이스크림 맛을 알았을 무렵, 맥도널드 콘 아이스크림을 사서 자리로 갈 때, 당근이가 소리치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처음 키즈카페에 가서 온갖 놀이기구들을 보고 웃으며 뛰어가던 아이의 표정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퇴근하고 집 문을 열었을 때, 날 보며 “아빠!”라고 하던 그 표정은 내 마음속에 박혀있다. 그건 쉽게 잊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니다. 뭐든지 처음 하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경험하게 해 주고 재미있는 놀이를 같이 하는 건, 내가 그 아이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일 것이다.


가끔씩 아이가 떼를 쓸 때가 있다. 막대사탕을 먹고 싶다며 길에 철퍼덕 앉아서 사달라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의 표정은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그렇게 솔직하게 드러낼 줄 안다. 가만히 아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의 얼굴을 보며 말한다. “당근아 오늘 막대사탕 하나 먹었잖아? 하루에 하나씩만 먹는 거야. 많이 먹고 싶은 거 아빠가 아는데, 우리 내일 또 먹자~”. 그 말 뒤에 아이의 실망하는 모습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그 표정도 내 마음에 담는다.


남는 건 아내와 아이의 표정이다. 그들이 저 멀리 중국 심천에 가 있는 요즘, 나는 자주 그들의 얼굴 표정을 떠올린다. 휴대폰의 사진첩을 열어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그 당시를 추억한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을 본다. 웃는 표정을 보이면 그때 힘들었던 표정이 보이고, 짜증 내는 표정을 보면 서로를 위로하면 토닥이던 위로의 얼굴도 보인다. 혼자 온갖 표정들을 떠올리며 과거의 우리를 머릿속에서 움직여 본다. 그리고는 참다못해 휴대폰을 들어 영상통화를 건다.


나: 자기야 잘 지내고 있어요?
아내: 우리 잘 지내죠. 자기도 오늘 별일 없었죠?
나: 자기가 너무 보고 싶어요.
아내: 좀만 참아요. 당근이도 아빠 보고 싶어 해요. 당근아~ 아빠한테 말해봐~
당근이: 아빠~! 아빠! 이것 좀 봐요. (끊어지는 전화)
나: 아이고 끊어버렸네~


누구나 추억을 마음속에 담는다. 저장한 예전의 추억들을 꺼내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추억들 속에는 같이 그 상황 속에 있던 상대방의 표정도 담겨있을 거란 것이다. 어쩌면 삶에서 추억을 만든 다는 건, 평생 동안 상대방의 얼굴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행복했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오늘은 혼자 카페에 앉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이 내 머릿속에 저장된다. 오늘은, 혼자 만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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