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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Apr 02. 2019

말없는 포옹이 주는 힘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누구를 포옹하는 일을 굉장히 드문 경우였다. 아주 갓난아기일 때야, 부모님이 많이 안아줬겠지만, 초등학교에 가고,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를 떠올려 보면 누군가를 안게 되는 경우가 없었던 것 같다. 나와 동생 모두 남자였기에, 더욱 그런 기억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형제, 그리고 아버지까지 남자 세 명이 있는 집에는 늘 적막이 흘렀고, 스킨십도 별로 없었다. 어쩌면 그런 분위기가 가족의 화기애애함을 침묵으로 바꿨는지 모르겠다.


동생과 밖에서 공차기도 하고, 게임도 같이 했지만 어른이 되고는 왠지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었다. 각자 이성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아마도 타인과의 스킨십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 같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손을 잡고 포옹을 하면 늘 마음이 따뜻해졌다. 왜 이렇게 따뜻한 행위를 가족들과는 하지 않았던 걸까. 20살이 넘을 때까지 나는 부모님이 스킨십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세대가 세대니 만큼 안 보이는 곳에서 하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서인지 사랑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표현하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는 것.


하지만 내가 사랑을 경험하고 나니, 그것이 이상해 보였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게 많이 표현하게 되고, 스킨십을 통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기도 한다. 20-30대 들은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그렇게 어색해하지 않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했다. 아내와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늘 먼저 표현하려 애썼고, 속으로 드는 생각이나 마음은 입 밖으로 뱉어냈다.


아내: 자기는 정말 표현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보통 남자들은 안 그러는데요.
나: 아니에요. 요즘은 이렇게 잘 표현하는 남자들이 많아요~
아내: 중국 남자들은 별로 안 그런 거 같아요. 우리 아빠도 별로 안 그래요. 늘 바쁘셔서..
나: 부모님 세대는 좀 그런 거 같아요. 우리 부모님도 그러신걸요.
아내: 근데 내가 본 남자 중에서 자기가 진짜 애교가 많아요
나: 에??? 애.. 애교??? 아닌데??? 그럴 리가???
아내: 뭘 그렇게 당황하세요? 맞는데요~


보통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면 그 뜨거운 사랑이 많이 식는다고 이야기한다. 특히나 임신과 출산을 겪고 난 이후에는 육아와 스트레스가 많아지기 때문에 더 애정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서로 짜증 나는 때도 많고, 혼자만의 시간을 더 찾게 되기도 한다. 서로 바쁘면 마주 앉아 이야기할 시간은 많이 줄어든다. 나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아이를 출산한 이후에는 서로 얼굴 볼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 서로 지쳐있었고 기운을 차리기 쉽지 않았다.


거실에 앉아있던 어느 순간, 축 쳐진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는 바로 일어나 아내에게 가서 가만히 안아준다. 그렇게 한 동안 서로를 안고 있다 보면 조금은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서로의 힘듦을 보듬으며 시간을 버텨낸 것 같다. 그 뒤로 하루에 한 번은 가만히 아내와 포옹을 한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침에 일어나서. 특별히 정해진 시간은 없다. 어느 순간 안아주고 싶을 때 잠시 안고 있는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태어난 이후 손잡고 데이터 한 시간도, 길게 포옹을 한 기억도 없다. 아이를 누군가에게 길게 맞기지 않고 꼭 우리 스스로 재우기 때문에 그렇게 둘만의 데이트를 할 시간을 아직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더 그런 포옹의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우리가 포옹하는 걸 아이가 봤다. 처음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면 아이는 얼마 지나고 나서는 포옹하는 나와 아내를 보면 밝게 웃으며 달려온다. 그러고는 내 다리나 아내의 다리를 안고 매달린다. 어떨 땐 나와 아내 중간에서 팔을 잡고 매달리는데, 그때 나와 아내는 쪼그리고 앉아서 세 명이 같이 가만히 안고 있는다. 아이는 나와 아내를 번갈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말없이 가만히 포옹을 하고 나면 다들 기분 좋게 각자 하던 일을 한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이와 노는 동안, 아내는 밀린 일을 그때부터 하기 시작해 밤 12시가 넘는 시간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다. 서로가 각자의 일과 육아에 지쳐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가만히 안아주는 건 꽤나 큰 위로가 된다. 태어나서 20년 넘게 포옹의 힘을 몰랐던 내가 40대가 된 지금 그 힘을 받고 있다. 아내를 안고 아이를 안고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여전히 부모님과 동생과는 포옹을 하기 힘들다. 앞으로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내, 그리고 아이와는 어색하지 않게 포옹을 할 수 있다.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서로를 안고 그 따뜻한 기운을 나누고 싶다. 그 짧고 따뜻한 포옹의 힘은 꽤나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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