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못 먹는 음식이 있다. 대체로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인데 홍어나 냄새가 강한 음식은 잘 먹지 못한다. 나 자신이 못 먹는 음식은 보통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가족들이 못 먹는 음식을 하나하나 챙기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단 부모님이 무엇을 못 먹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나 먹을 것에만 신경 썼을 뿐, 수없이 같이 먹었던 부모님이 무엇을 싫어하고, 못 먹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아내와 처음 만나 연애하던 시절에도 그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배고프면 아무 음식이나 먹었고, 상대방도 같이 먹으니 그것에 대해서는 별 고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꽤나 중요한 문제다.
지난주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음식을 포장해가는 어떤 어머니와 식당 직원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초밥과 다른 음식을 포장해가려고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중인 듯했다.
식당 직원 : 혹시 연어나 광어 좋아하세요?
어머니 : 아니, 나는 해산물을 못 먹어서요. 맛을 잘 몰라요. 허허허
식당 직원 : 제가 좀 더 챙겨드리려고 해요. 어떤 종류를 좋아하시는지 몰라서요.
어머니 : 그냥 맛있는 걸로 알아서 챙겨 주세요.
식당 직원 : 이건 그럼 누가 드시는 거예요? 어머니가 안 드세요?
어머니 : 나는 바다에서 나는 건 통 못 먹어요. 가서 우리 남편이랑 아들 줄라 그래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어머니는 집에 가서 뭘 드실까. 남편 분과 아드님이 드실 맛난 초밥과 음식을 포장해 가셔서 준비를 해두시고 옆에 앉아 김치와 밥을 드시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저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른 것, 그것은 정말 상대방을 아낄 때 나온다. 자신이 못 먹는 음식일지라도, 자신이 싫어하는 음식일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먹고 싶어 한다면 기꺼이 준비를 하는 마음. 그것이 그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중국 사람인 아내는 한국음식을 즐기지 않는다. 특히나 매운 음식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집에서 김치찌개나 매운 재료가 들어가는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연애할 때는 그런 음식을 꽤 먹었다. 그땐 아내도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같이 앉아 매운 음식을 먹어줬던 것도 나에 대한 배려였다. 그 이후에는 나도 아내를 배려하려 노력했다. 가능하면 아내와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를 선택했고,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집에서는 주로 된장을 이용한 국과 볶음 요리를 많이 먹는다. 점점 매운 요리를 먹을 일이 없어지면서 나도 이제 조금 매운 요리도 못 먹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거나, 음식을 포장해서 사가기 위해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 머릿속에는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는 아내나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내가 사간 음식을 집에 가져가서 식탁에 풀어놓고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모습을 상상한다. 음식을 받아 들기도 전에 벌써 마음이 따뜻해진다.
부모님 댁에 방문했을 때, 어머니가 며느리인 아내에게 해주는 음식은 아내가 좋아하는 바싹 익힌 삼겹살이 꼭 포함된다. 밥도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꼬들밥이 아니고 진밥이 나온다. 국은 맑은 국 종류를 준비하신다. 사실 어머니는 꼬들 밥을 좋아하시고, 삼겹살도 적당히 익힌 것을 좋아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갈 때면 늘 우리의 입맛, 특히 아내의 입맛에 맞춘 음식이 준비된다. 장모님 댁에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면 향신료가 적은 음식들이 나온다. 그리고 내가 잘 먹는 고기완자 종류의 음식이 매끼 준비되어 있다. 장모님 역시 그런 요리들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평소에는 다르게 요리하신다고 한다. 장모님도 늘 우리의 입맛, 특히 나의 입맛에 맞춘 음식을 준비해주신다.
자신은 해산물을 못 먹는다고 했던 그 어머니의 마음을 아내에게서 찾는다. 그 마음을 어머니와 장모님에게서 찾는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챙겨주려는 마음. 그건 무심코 지나쳤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가만히 옆에서 상대방을 보고 있으면 기억하게 된다. 상대방이 먹으면서 했던 말, 표정을 담아 두었다가 요리를 해야 할 때나, 음식을 골라야 할 때 마음속에서 꺼내 그 표정과 말이 담고 있는 음식을 따라간다.
가족의 입맛은 시간이 지날수록 닮아간다. 특히나 부부인 나와 아내의 입맛은 점점 비슷해진다. 요리는 싱거워지고, 볶음 요리는 많아지고, 매운 요리는 사라졌다. 마트를 지나가다 내가 못 먹는 듀리안을 발견하면 그걸 맛있게 먹었던 아내의 표정을 떠올리며 몇 개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아내도 자신이 먹지 않는 회를 발견하면 꼭 포장해서 내 앞에 차려준다. 왜 이렇게 많이 사 왔냐고 서로에게 물어보면 상대방이 먹는 모습을 보며 똑같이 답한다. "자기가 좋아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