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배운다는 일은 힘들다. 한국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지날 때까지 영어를 내 입으로 말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문제 풀기 중심의 교육 환경 속에서는 입 밖으로 다른 언어를 뱉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른 친구들이 가던 어학연수조차 다녀오지 않았다. 취업할 때도 영어는 넘지 못한 벽이었다. 감히 도전 조차 하지 못했다. 토익 점수도 높지 않았던 내게 영어는 절대 넘을 수 없는 괴물과도 같았다.
취업 후 어느 순간, 갑자기 회화 학원에 등록을 했다. 일대일로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 수업, 일주일에 세 번 하루 한 시간씩은 오롯이 혼자 외국인과 대화해야 했다. 내 눈은 상대방을 보지 못했고 땀은 얼굴을 가득 적셨다. 몇 마디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 두려움을 몇 번이나 직면하고 나서야 상대방에게 더듬더듬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단어, 한 문장을 이야기하다 보니 간단한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그때 외국인 강사가 늘 하던 말이 있다.
"네가 알고 있는 단어는 생각보다 많아. "
"정말? 나는 내가 아는 단어가 정말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웬만큼 말할 수 있는 단어는 다 알고 있어. 그걸 조합해서 내뱉는 게 안될 뿐이야. 연습하면 할 수 있어"
말하는 걸 멈추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던 그 외국인 선생님 덕분에 회사에서 외국인과 컨퍼런스 콜을 하고 메일을 쓸 수도 있게 되었다. 여전히 버벅되는 수준이지만 뭔가 내뱉을 용기를 얻었다. 사실 그때와 지금의 영어실력이 더 성장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그걸 내뱉을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을 두껍게 할 용기를 잃지는 않고 있다.
아내와 결혼할 때, 아내는 조건을 걸었다. '집에서는 한국말 사용금지'. 말이 쉽지 내게는 어려운 미션이었다. 여러 가지 언어에 능한 아내는 중국말이나 영어로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문장을 내뱉어야 했다. 중국말이나, 영어를 써야 했는데 둘 다 버벅대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늘 아내에게 한 소리 듣는다. 반응은 느려졌고, 어쩔 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잠시 담아두었다.
아내를 만나고 중국어라는 제2의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 중국어는 전혀 할 줄 몰랐던 나에겐 어려웠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에 중국어까지 더 학습해야 한다는 것은 꽤 괴로운 일이었지만, 사랑의 힘이었는지 고통을 별로 느끼지 않고 배워나갔다. 영어를 단어와 문법 중심으로 먼저 배웠다면 중국어는 발음 중심으로 표현부터 배웠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중국어 자판은 영어로 발음을 치면 관련 글자들이 나와 고르는 식이다. 예를 들어 '니하오'는 'ni hao'라고 치면 '你好‘라는 글자를 쓸 수 있다. 친숙한 영어로 중국어 발음을 외웠다.
외우는 것도 강제로 시간을 두고 외우지는 않았다. 연애할 때부터 아내에게 카카오톡 문자를 보내면서 계속 사용했다. 문장을 쓰고, 단어를 쓰고 틀린 표현은 아내가 바로잡아줬다. 그렇게 실제로 사용하면서 배우는 건 문법적으로 완벽하진 않아도 재미가 있었다. 내 의견을 표시할 수 있고,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용하는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서 아내뿐만 아니라 처남이나 장모님에게도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건 일견 답답함을 느끼게 하지만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여전히 집에서는 한국말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한국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아이에게 말할 때다. 아내에게는 쓰지 못하지만 아이에게는 한국말로 이야기했다. 아니 이야기해야 했다. 나는 한국어로, 아내는 중국어로 두 가지 언어로 아이를 대했다. 참 신기하게도 아이는 두 가지 언어를 다 알아듣는다. 100%를 다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아이는 알아듣고 상황에 맞는 행동이나 말을 한다.
내가 아이에게 중국말을, 아내가 아이에게 한국말을 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우리 앞에서 그 두 언어를 구분해 낸다. 어쩌면 그건 의도적으로 구분한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아이는 한국말로 혼잣말을 한다. 아마도 아이가 생각할 때도 한국말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보통 한국어를 선택한 우리는 한국말로 생각하고 그걸 입으로 내뱉는다. 아내는 광둥어가 모국어니 광둥어로 생각하고 내뱉을 것이다. 북경어, 영어, 한국어, 대만어 까지 실제로 말을 할 수 있음에도 생각하는 언어는 아마도 모국어인 광둥어일 것이다. 보통은 모국어로 생각하게 되니까. 우리는 편하게 머릿속에 생각하는 언어를 모국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커가면서 중국어를 모국어로 선택할까. 말 그대로 모국어는 어머니의 언어인데, 母國語 또는 mother tongue 같이 언어 하나하나의 뜻을 보면 어머니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아이는 아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지 않을까. 아직은 자라면서 한국에 있을지, 중국에 있을지 불확실하다. 어느 환경에 있던지 아이는 분명 자신만의 언어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 어떤 언어가 될지 현재로서는 단정하여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엄마의 말뿐 아니라 아빠의 말도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부모 모두의 노력에 달렸다.
몇 년이 더 지나면 언어의 글자도 배우게 될 것이다. 아마도 아이는 두 가지 글자를 배워야 하니 더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소리를 배우는 영역에서는 아무 문제없었지만,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아이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조금은 걱정이 된다. 나와는 다르게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가지 언어를 배워야 하는 환경 속에 자랐다. 광둥어를 기본으로 배웠지만, 대만 쪽 언어를 쓰던 장모님의 영향으로 대만어를 배워야 했고, 중국어의 표준어인 북경어는 학교에서 기본으로 배워야 하는 언어였다. 홍콩에서 학교를 다녔던 아내에게 영어도 필수 교과목 중 하나였다. 이렇게 다중 언어에 노출된 환경이 지금의 아내가 보다 빠르게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본능적인 무언가를 만들어주었을지 모른다.
아이는 두 가지 언어가 노출되는 환경에 있다. 아직은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할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둘 중 하나의 언어를 생각의 언어로 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환경을 만들었고, 선택은 아이가 하게 된다. 언어라는 것을 배우는 고통은 늦게 시작할수록 더욱 커지는 것 같다. 아이는 그 고통을 아주 어릴 때부터 맞이 하게 되었지만, 아이에겐 그 고통보단 소통한다는 즐거움이 더 클 수도 있다. 언어를 배우는 모든 과정이 같이 소통하는 것이니, 엄마와 소통하고, 아빠와 소통하는 모든 순간이 아이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일 것이다.
심천에 가있는 아이에게 영상전화를 걸었다. 먼저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빠, 아빠 니하오(你好, 안녕), 츠판러메이?(吃饭了没?, 밥 먹었어요?). 나 아빠 보고 싶다"
아이가 한국말과 중국말을 혼재해서 쓰는 그 문장을 잠깐의 머뭇거림 끝에 이해하고는, 나도 답한다.
"아빠 밥 먹었어. 아빠도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