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는 없다. 짧은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이후 대학교 공부와 취업에 매달리다 보면 어느덧 30대 중반을 훌쩍 넘어버린다. 결혼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앞만 보고 달린다. 물론 잠시 숨을 돌리며 여행을 가거나, 다른 경험을 하면서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에도 우리의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똑같이 흰머리와 주름을 만들고 지난 시간을 회고하게 만든다.
아이와 함께 가까운 키즈 카페에 가려고 택시에 올랐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 분이 아이를 보며 연신 귀엽다고 말씀하신다.
"너무 귀엽네요. 지금 몇 살이에요"
"(아이가 손가락 네 개를 앞으로 내민다)"
"네 살이에요? 아휴. 너무 귀엽네. 지금이 제일 귀여울 때에요."
"그렇죠. 지금이 정말 너무너무 이쁜 것 같아요."
"시간이 정말 빨라요. 지금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세요. 정말 훌쩍 지나가요. 나는 지금 손주들도 다 커서 대학생이에요"
"와 손주들도 귀엽겠어요!"
"아니, 10대만 넘어가도 귀여운 맛은 없어요. 다들 자기 하고 싶은 거하는데 바쁘지. 잠깐잠깐 용돈 줄 때나 좋지, 이제는 잘 오지도 않아요. 네 살 정도가 참 귀여운 때에요"
빨간 신호등을 앞에 두고 택시 기사 분의 얼굴은 잠시 좋았던 과거를 다시 떠올리는 표정이다. 기사 분의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하지만 이내 그 미소는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가끔 만나는 손주들이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아주 어렸던 때처럼 애교를 하거나 살갑지는 않은 듯 아쉬움의 감정이 그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여전히 기사 분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아이나, 손주들의 어린 시절 모습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고 추억하며 그때의 따뜻함을 마음으로 느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옆에 있는 아이를 가만히 쳐다본다. 그런 이야기는 전혀 관심 없는 아이. 그저 얼른 키즈카페에 가서 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는 기대에 부푼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말한다. "아빠 왜요?".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해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가고 있다는 것이 아깝다는 느낌이다. 매일 칼 같이 퇴근하여 집에 와서 아이와 잠깐 놀고, 아이를 재우고,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집 밖으로 나가 같이 시간을 보낸다. 그 모든 시간들은 내 기억 속 어딘가, 아이의 기억 속 어딘가에 남는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은 계속 가고 있다.
결국 아이는 다섯 살이 되고,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스칠 때마다 기사 분이 안타까워하던 것처럼 아이와 서먹해질까 두려움이 생긴다. 나도 아이가 자라면서 서먹해질까. 나도 아이의 네 살 무렵 시기를 그리워하면서 살게 될까. 아이는 내 손을 끌고 어디론가 인도한다.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향해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아이의 네 살은 함께 했던 시간들로 기억될 것이다.
택시 기사 분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건 어쩌면 함께 했던 시간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자신의 옆에 있는 가족들과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한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밖에서 뛰어놀던 자신의 옆에 누군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시간을 보낸다. 어떤 고민도, 어려움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그때, 아이는 주변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지금도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아이가 자고 일어나면 다시 나의 손을 이끌고 같이 놀자고 할 것이다. 어떤 시점이 오면 그렇게 잡아끌며 같이 놀자던 시간은 줄어들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 각자의 관심 있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이미 동생과 그런 관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 십 대 시절까지 동생과는 거의 24시간을 같이 보냈다. 같이 놀고, 게임하고, 같이 영화를 보고, 운동도 같이 했다.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었기 때문에 많은 의견을 나누었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존재였다. 하지만 30대가 넘어가면서 서로 다른 지점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낸 수많은 시간들은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이 되어 갔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너무나 귀여운 중학교 시절 동생의 모습이 그대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앞으로만 가는 시간을 잡고 싶었다. 수없이 손을 뻗어 저 멀리 가고 있는 시간과 동생의 손을 잡아 보려 하지만 그저 흘러가 버리고 만다.
어쩌면 아이와 나 사이에도 그런 관계의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귀여운 네 살의 아이는 어느덧 훌쩍 자라, 자신 만의 무언가를 가지게 될 것이다. 내가 저 앞에 가는 아이의 손을 잡으려 해도 아이는 꿋꿋이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더 지금 아이와의 시간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키즈 카페를 가도, 놀이터에 가도, 동물원에 가도 아이의 옆에서 아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같이 한다.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의 모습을 내 마음속 깊이깊이 담는다. 흘러가는 시간과 아이가 성장하며 달려가는 것을 잡을 수는 없지만 그때가 오기 전에 아이의 모습을 꼭꼭 담아둘 수는 있다.
언젠가는 택시 기사 분이 회고하던 그 장면을 그대로 내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때가 온다면 내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아이와의 시간을 떠올리고 싶다. 아이와 내가 보낸 소중한 그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