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혼자 길을 걷는 걸 좋아했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늘 이어폰을 끼고 걸었다. 술에 취해 센치해졌을 때도, 이별 통보를 받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걸으며 마음을 달랬다. 술을 먹으며 울적함을 달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건 그저 몇십 분이라도 걸을 수 있는 시간뿐이었다. 그러다 누군가와 연인이 되면서는 같이 걷기 시작했다. 걸을 수 있는 거리라면 걸어서 집에 갔다. 청계천을 걷고, 안양천을 걷고, 도심을 걸었다. 손을 잡고 걷는다는 건 또 다른 안정감을 줬다.
몇 번의 연애를 지나 아내를 만났을 때도, 많이 걸었다. 청계천을 손잡고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상하게 가만히 앉아서 하는 얘기보다 걸으면서 하는 얘기는 좀 더 편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상대방과 손을 잡아 마음이 연결되어서 일까. 오래 걸으면 상대방과 나의 손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이 느껴진다. 서로의 땀을 닦아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덧 상대방과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 손잡으며 걷기는 데이트 필수 코스였다. 물론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서 우리는 손을 잡고 기꺼이 걸었다.
그러고 보면 부모님이나 동생과 손을 잡고 걸었던 적이 있던가. 아마도 사춘기 시절 이전인 초등학교 시절에나 부모님의 손을 잡고 길을 걸었을 것 같다. 내 머릿속에는 특별히 뚜렷하게 부모님과 손잡고 걸었던 기억이 없다. 왜 그런 기억 하나 남지 않았을까. 왜 그런 기억하나 남겨두지 않았을까. 가끔은 내 두뇌가 하는 일이 못마땅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부모님의 기억에는 수없이 손잡고 다녔던 그때의 기억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을 남길 시간들이 찾아왔다. 아이가 태어나고 걷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기꺼이 내 손을 잡았다. 나와 아내의 손을 의지해 걷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걷는다. 이제는 손을 잡아당겨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할 줄 알고, 끌고 갈 줄 안다. 무서울 땐 내 손을 잡고 안정감을 찾는다. 나와 아내의 손은 어느덧 아이를 위한 손이 되었다. 아직 아이는 손을 잡고 걷다가 이내 안아달라고 매달린다. 꽤나 무거워진 아이의 몸을 지탱하는 건 내 손과 팔이다. 이이를 안고 나면 비로소 아내가 내 팔에 팔짱을 낀다. 그렇게 나마 아내의 손을 느낄 수 있다.
아내와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이 아이가 태어난 이후 3년 동안 거의 없다. 우리는 한국에서도 중국 장모님 댁에서도 단 둘이 외출한 적이 거의 없다. 우리 자신의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가능하면 최대한 우리가 같이 외출하자는 결의를 다진 적이 있다. 그래서 더욱더 우리는 서로 손을 맞잡을 일이 줄어들었다. 아이의 손을 같이 잡아도, 아이가 앉은 유모차를 끌어도 우리가 손잡을 시간은 거의 없다.
물론 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 건 행복한 일이다. 아이는 예상하지 못하는 길로 가기도 하고, 익숙한 길을 뛰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나와 손을 잡고 걷는 그 기억은 아마도 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기억을 하지 못하더라도. 또한 아내도 아이와 손잡고 보낸 시간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고사리같이 작은 손도 언젠가는 우리와 같이 커져 내 손을 잡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내가 부모님과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전에 아이와 손을 많이 잡아두고 싶다.
그런데 아이와의 손잡기 이전에 아내와의 손잡기도 계속하고 싶다.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 아내 손을 잡고 걷는 따뜻함을 언제 다시 할 수 있을까. 사실 언제가 될지 잘 모르겠다. 정적으로 가만히 포옹을 하고 서로를 쳐다보고 얼굴을 매만질 수는 있지만, 동적으로 같이 걷고 이동하며 할 수 있는 스킨십은 하기 어렵다. 이동할 땐 늘 아이가 사이에 있으니까.
하지만 아쉬워도 당장은 방법이 없다. 그저 가만히 아내의 손을 잡고 집안을 살짝쿵 걸어 다니는 방법밖에는.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우리도 다시 손을 잡고 걷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은 잠시 멈춰있지만 어떤 시점이 오면 우리는 손을 잡고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손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날이 언젠가는 다시 찾아온다는 건 알 수 있다. 그저 아이와 손을 잡고 걸으며 다시 아내와 조용히 손을 맞잡을 날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