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두 번 정도는 장모님 댁에 가게 된다. 아내는 1-2번 정도 더 방문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자주 가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갈 때마다 장모님은 우리를 위해 많은 음식을 해주신다.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가기 전부터 장모님은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신다. 우리가 잘 방 침대의 이불을 다 세탁하고, 구석구석의 먼지를 제거한다. 너무 힘들게 준비하지 말라고 해도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 탓에 깨끗하게 치워 놓으신다.
나: 장모님은 매일 저렇게 청소하세요?
아내: 매일 청소는 하는데, 우리가 오면 더 깨끗하게 하려고 하시네요. 내가 아무리 말려도 계속해요.
나: 힘드실 텐데... 요리에 빨래에 우리가 오면 더 힘드시겠네.
아내: 그래도 엄마 표정 좀 봐요. 싫은 구석은 없잖아요. 우리 엄마 조금 결벽증 그런 거 있어요. 깨끗한 거 제일 중요해요.
나: 아.. 그렇구나. 그래도 우리가 오면 더 심하게 하시니까.
장모님은 굉장히 깔끔한 걸 좋아하신다. 청소기도 쓰시지 않는데, 아직까지 빗자루를 신뢰하신다. 먼지가 안 나고 소리가 시끄럽지 않아 좋다고 하신다. 청소를 도와드리려고 해도 결사코 본인이 하겠다며 앉아있으라고 하신다. 그래서 쭈뼛쭈뼛 다시 소파에 앉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게 된다. 청소를 다하시면 먹을 걸 가져다주신다. 그래서 식사 시간에도, 앉아서 쉬는 시간에도 내 입에는 늘 먹을 것이 가득하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했던가. 늘 심천 장모님 댁에 처음 도착하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다. 거기에 직접 담그신 과실주도 내어 주신다. 아내가 적당히 먹으라고 눈치를 주지만, 절대 적당히 먹고 그만 둘 수가 없는 그런 차림이다. 그래서 장모님 댁에 가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아내: 우와 자기 배가 장난 아니네요. 임신하셨어요?
나: 아니요..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 장모님이 자꾸 주시니까.
아내: 그렇다고 다 받아먹지 말아요 또 배탈 날까 봐 무서워요. 자기가 아프면 안 돼요.
나: 좀 조절해 볼게요. 근데 너무 맛있어서 한 입 먹으면, 다 안 먹을 수가 없어.
아내: 그건 나도 인정!!!
그렇게 잘 챙겨주는 장모님이 늘 짜증을 낼 때가 있다. 우리가 한국에 돌아오기 전 날이다. 몇 년째 계속 심천 장모님 댁에 여러 번 가고 있지만, 늘 잘해주시다가도 그때만 되면 말이 빨라지시고 짜증을 내신다. 중국말이 서투른 내가 듣기에는 그 짜증이 좋게 들리지 않았다. 일단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듣지를 못하니 더욱더 화를 내는 것처럼만 들린다. 그래서 나도 속으로 욱하는 때가 많다. 왜 그렇게 짜증을 내실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장모님: 큰 짐을 여기다 넣고, 다른 것도 여기 넣어야지.
아내: 엄마 알았어요. 저거 좀 주세요.
나: 이.. 이거 줄까요? 여기 넣을 수 있는데.
장모님, 아니 그거 여기 넣으면 이 병이 깨질지도 몰라,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저 옷부터 먼저 넣어야지!!
나: 으.. 응?. 네?
아내: 저 옷부터 넣어요!
장모님은 아내와 처남이 어렸을 때 사실 굉장히 엄한 분이었다. 조금만 잘못하는 것이 있어도 바로 큰 소리가 나오고 노는 것도 굉장히 보수적인 잣대로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장모님이 화를 낼 때는 모두가 조용히 그 말을 듣고 따른다. 가끔 반박을 할 때도 있지만 아내는 그냥 조용히 그 말을 따른다. 그런데 좋은 것은 그렇게 화를 내고 나서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예전처럼 대화를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참 뒤끝 없는 가족이었다. 화를 내는 것은 그거고, 다른 일상은 그저 예전처럼 진행된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보통 우리 가족들을 화내면 그게 며칠은 지나야 풀리니까.
그래서 장모님이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것을 내가 보면 무척이나 겁이 났다. 왜 그렇게 짜증 섞인 말투로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짐을 싸는 것이 서투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별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짐을 이리저리 옮기며 적당한 위치로 이동시켜 차곡차곡 쌓아나가면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늘 큰 소리가 나왔다.
심천 바오안 공항으로 이동하는 다음 날, 장모님도 같이 공항으로 가 배웅을 해 주신다. 늘 그렇듯 많이 아쉬워하시며 비행기에서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손에 들려주신다. 그러고 잠시 의자에 앉아 대기할 때, 눈물이 글썽글썽하신다. 아내는 장모님의 손을 한동안 꼭 잡고 있다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다. 그 게이트 안에 들어가 수속을 마치고 아내에게 물어봤다.
나: 장모님이 왜 가기 전날에 그렇게 짜증을 내시죠? 이해가 안 가고 듣고 있으면 화가 나요.
아내: 그러게요. 근데 아마도 우리가 가면 또 혼자 계셔야 하니까. 그게 싫어서 그런 거 같아요.
나: 아.. 섭섭하셔서 그런가? 우리가 가면 또 한참 있다 봐야 되니까? 영상통화도 있고 얼굴 볼 수 있을 텐데..
아내: 그래도 직접 보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엄마는 옆에 두고 보고 싶은 거죠.
나: 그쵸... 딸이 몇 천 킬로미터나 멀리 있는 곳에 가는데 당연히 아쉽겠죠. 그래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으신 거구나... 몰랐네.
비행기 이륙 전 장모님께 이제 이륙한다고 감사했다고 문자를 한다. 그리고 한국 공항에 도착해서 잘 도착했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문자를 보낸다. 장모님은 간단한 문자를 하나 보내신다. “고마워”. 또 우리가 다시 오는 날을 얼마나 기다리실까. 텅 빈 집에서 몇 달간 지내면서 그렇게 딸과 사위 그리고 손녀가 오는 날을 손꼽으며 지내실 것이다. 나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 “장모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