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아내와 만난 첫 데이트 날이 눈에 선하다. 까마득히 많은 계단이 있는 광화문역으로 한 발 한 발 올라오던 아내가 수줍게 웃던 모습은 해맑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십대 소녀라고 해도 될 만큼 나보다 많이 어리게 느껴졌던 아내. 그만큼 순수함이 느껴지던 아내의 말투나 행동, 모습들이 나의 마음을 더욱더 빼았았는지 모르겠다. 사랑에는 국적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언젠가는 이 사람과 결혼하여 이쁜 아이를 낳으면 좋겠다고 느꼈던 그때, 라벤더 향의 차를 서로에게 따라주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아내는 생각보다 허술한 행동을 할 때가 많았다. 쉽게 길을 잃고 내게 전화를 하거나 길을 걷다가 자주 넘어졌다. 자주 넘어지다 보니, 늘 길을 걸을 때는 내 손이나 팔을 꽉 잡고 걸었다. 혼자 길을 잃었을 때는 바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가이드를 받았다. 마치 내가 아내의 수호자가 된 느낌이었다.
아내: 나는 왜 이렇게 길치죠. 정말 길을 모르겠어요. 심지어 나는 중국 우리 집에서도 길을 몰라요.
나: 그게 사람마다 그런 감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아내: 그래도 홍콩이나 심천에 가도 나는 한 번씩 길을 잃어버려요.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내 동생도 그래요!!
나: 자기가 이제 내가 있으니 괜찮아요. 나만 믿고 따라와요. 내가 자기 손 꼭 잡고 갈게요.
아내: 정말 다행이에요! 자기만 따라다닐 거예요!
그저 길을 조금 잘 찾을 뿐이고, 주변의 사소한 문제를 잘 찾아 해결하는 나인데, 그 작은 것들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지 모른다. 생각보다 나에게 자신감을 주는 일이었고 아내의 안심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았다. 어쩌면 사랑이란 불같은 면도 있지만 그런 안도감과 편안함 속에서 보여지는 포근함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아내는 자기를 스스로 '생활바보' 라고 불렀다. 집안일, 요리, 청소 등 사소한 일이나, 생활하며 알아야 할 생활정보 등을 잘 알지 못했던 까닭에 아내 스스로 붙인 별명이었다. 그런 일을 결혼 후에도 나에게 많은 몫이 주어졌다. 생각보다 그런 것을 잘했고, 나와 아내 모두 만족할 만한 생활패턴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다 당근이가 태어났다.
나는 아빠가 되어야 했고, 아내는 엄마가 되어야 했다. 서로 분담해야 하는 일은 늘어났다. 당근이가 태어난 이후부터 아내는 조금 변해갔다. 자기 일에 더욱 욕심이 생겼으며, 가능하면 완벽한 육아를 하려고 애썼다.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명확히 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런 아내의 철두철미한 실행력 덕분에 아내는 좀 더 이성적이고 완벽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 오늘 요리는 뭐할까요? 청소는 내가 할게요.
아내: 일단 내가 청소할게요. 자기는 요리를 하세요. 당근이 기저귀는 갈았어요? 그거부터 좀 해주시겠어요?
나: 기저귀 두 시간 전에 갈았어요.
아내: 이거 좀 봐요, 완전 빵빵! 갈아주세요!
나: 알았어요. 내가 얼른 갈게요.
아내: 추우니까 방에 가서 갈아입히고 오세요! 나 청소하고 회사 일 하는 동안 자기가 밥을 좀 하세요.
어디선가 아내들의 대화에서 남자는 다 애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그 말은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남자가 나이가 든다고 해서 다 철없는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닐 텐데, 이상한 대화였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한 해 한 해 지나가는 동안 점점 내가 아이가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많은 집안의 크고 작은 문제는 내가 해결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은 늘어간다. 육아에 많이 적응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고, 가끔씩 엉뚱한 생각으로 아내의 답답함을 끌어내기도 한다.
나: 우리 내일 남산 공원에 가볼까요? 거기 조용하고 좋아요.
아내: 자기야.... 내일 영하 14도라는데 어딜 가요?
나: 그렇게 춥데요? 그래도 한 번 가보면 어때요? 거기 애들 좋아하는 것도 많다고 해요.
아내: 으이구. 추울 땐 실내로 가야죠! 그리고 나 내일 일해야 해요. 놀러 가려면 실내로 알아보시고, 자기가 당근이랑 다녀오세요~
나: 어.. 그래요..
이를 테면 저런 대화들이 자주 벌어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한심한 제안들. 그리고 그런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섭섭함이 밀려온다. 출산 초기 육아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우선순위를 밀렸다는 느낌이 들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우선순위는 아이에게 있는 것 같고, 내 의견은 자주 무시당했다. 어쩌면 그건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좀 더 거리를 두고 아내와 나를 보면, 아내는 좀 더 빨리 발전하고 있었다. 자신의 일을 완성시키고, 육아의 전문가가 되고 모든 면에서 욕심이 많아졌다. 그런 아내의 욕심은 아내를 더욱 단호하게 했고, 더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특히 아이가 생기면서 그런 욕심이 더욱 강해진 것 같다. 예전의 아내는 어디 갔을까. 아니 그 수줍게 웃던 아내는 여전히 내 옆에 있다. 내가 아내를 따라가지 못할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십 대의 나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면 아내에게 떼를 쓰는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을 때도 있다. 결국 그런 나 자신을 인정한다. 나는 아빠가 되었지만 내 이면의 아이는 여전히 가슴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아이가 더욱 올라와 결국 다시 아이가 될지 모른다.
남편이 아이가 된다는 건, 아내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철이 없어지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하면 아내의 말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아내가 하는 제안이나 말을 듣고 한참 논쟁을 벌이더라도 지나서 생각해 보면 아내의 말이 맞는 경우가 많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아내 말은 진리야'. 이 말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상황에서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나와 7살이나 어린 그 아가씨가 지금은 엄마가 되었고, 어설프지 않은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나는 그저 아이로 머무른다. 아내와의 삶을 살면서 그저 철없는 아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의 좋은 아빠가 되려 노력하고, 아내 말을 잘 들으며 같이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그것이 결혼 생활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지 모른다. 중요한 건 아이의 모습 속에 좀 더 철든 남편의 모습이 같이 있다면 서로 도움을 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상한 표현일지라도, 오늘도 철든 아이처럼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