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빗구미 Mar 14. 2018

상대방 가족에게 첫 인사하기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나이였지만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중압감은 꽤 크게 다가왔다. 연애를 오래 하다보면 당연히 결혼을 생각하게 되는데, 내가 경제적으로 가진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은 늘 나를 그늘 속에 가두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돈과 연결되면서 내 감정과 생각이 엉키기 시작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아내와의 만남은 그런 부담감을 덜어주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봐 주었고, 경제적인 부분을 크게 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의 장점을 많이 봐주었던 그 눈빛이 나에게 더욱 자신감을 만들어 주게 된다. 회사에서 몰래 사내 연애를 하면서 주변에 말은 못했지만 심적으로 편했던 시기였다. 


나와 아내가 알콩달콩 사내 연애를 하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 무엇보다 나는 결혼과 같은 앞서가는 일에는 매우 조심하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외국 사람이고 나이차이도 조금 있었다. 이 사람과 결혼까지 할 거라는 확신이 그 당시에는 없었다. 그러다 내 친구에게 아내를 처음 소개하는 날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물었다.


친구: 오~ 축하해요. 둘이 잘 어울리는데,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나: (매우 눈치를 주며) 야. 무슨 벌써 결혼이야 사귄지 얼마나 되었다구!!
친구: 뭐 물어볼수는 있지 않냐~ :)
아내: 네 저는 괜찮습니다. 결혼도 해야죠.
나: (매우 놀라며) 응? 잘 생각해야되요. 아직 우리 만나지 얼마 안되었고, 고...고민도 좀 해야죠. 무..물론 나도 결혼하면 좋죠.
아내: 응? 저랑 결혼하기 어려우세요? 갑자기 말을 잘못하시네요?
친구: 하하하하하하


나는 그 당시 매우 당황했었다. 그렇게 쉽게 결혼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올 줄 몰랐다. 아내가 그 당시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부터 아내는 뭔가 확신이 있었다. 목소리는 자신감이 있었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의 태도가 나를 놀라게 했었다. 결혼이라는 건 늘 어렵다. 빨리 하고 싶다고 금방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늦출 수 있다고 마음대로 원하는 시기로 늦출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상대방과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아마도 나와 아내는 이 시점 부터 같이 결혼을 꿈꿨던 것 같다. 어쩌면 이 때가 아내와 나의 세상이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이후로 스스럼 없이 결혼 계획도 이야기하고, 원하는 방식이나 여행지 이야기도 하게되었다. 그 당시 이 대화를 이끌어 냈던 친구도 그때 속으로 우리 둘이 결혼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 뭔가 나와 아내에게 보이지 않는 확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지내던 중, 아내가 먼저 우리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같이 먹었다. 처음 그런 자리를 하는 거라 나도 아내도 긴장했었고, 아내는 작은 음료수 세트 하나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아마도 부모님도 긴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이전에는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 35가 다 되어가는데 이제야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다니, 모두가 긴장되었던 자리였다.


아내: 안녕하세요. oo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 어서와요. 뭐 이런걸 사왔어. 얼른 와서 앉아요.
아내: 감사합니다. 제가 잠시 옷을 정리하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 한국말을 생각보다 잘하네.
나: 네 한국말 잘해요. 중국말도 잘하고요.(농담시도..)
(순간 정적....)
아내: 네 제가 중국말도 잘 하십니다.
모두:하하하


어색했지만, 따뜻한 자리로 마무리가 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여자 친구가 중국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많이 생각하는 시골 사람을 생각했다고 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중국 사람은 조선족이 많고, 인터넷이나 티비에서 많이 접하는 중국 사람은 주로 농사짓는 시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 아내를 소개할 때는 늘 홍콩 사람이라고 했다가, 홍콩 옆의 심천 본토 사람이라는 장황한 설명을 했었다. 늘 누군가에게 중국 사람으로 소개하면 어떤 촌스러운 시골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첫 소개를 잘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크게 장염이 걸렸었다. 아내는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없어 집에 늘 혼자 있었는데, 장염이 걸리고 나서 매우 아파해서 결국 우리 집에서 하루 밤을 자라고 했다. 어머니도 그 당시 많이 걱정하셔서 죽도 끓여주시고 챙겨주셨었다. 다행히 다음 날 어느 정도 증상이 나아서 다들 안심을 했었다. 아내가 몸이 회복되어 다음 날 돌아가고 나서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어머니: 아유, 나는 아들만 둘 키워서 그런지 oo가 아침에 일어나서 나올 때 너무 이쁘더라.
저: 그래요? 일어나서 얼마 안되고 쌩얼인데다 안경도 꼈는데요? 게다가 아파서 얼굴이 새하얗던데...
어머니: 그래도 베시시 웃으며 나와서 인사하고 하는게 얼마나 이쁘냐. 아들들은 그런거 하나도 없다.
저: (눈을 피하며) 그랬나요? ㅎㅎ


 아내의 소개를 잘 마친 후, 내 차례가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천행 티켓을 끊어서 2박 3일 일정으로 방문했다. 그 당시 나는 중국어를 전혀 못할 때였다. 그리고 아내도 장모님과 대화가 많지 않았던 시기여서 우리 두 사람은 가는 비행기 안에서 초 긴장 상태였다. 아내는 장모님과 통화를 하고 나서 우는 때가 많았는데, 장모님과 아내의 관계는 나중에 다른 파트에서 이야기 해야할 것 같다. 어쨌든  심천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나는 옷을 다시 정리했다. 나는 그때 정장을 입고 넥타이까지 정식으로 하고 출구로 나갔다. 장모님과 아내의 외삼촌이 마중을 나와있었고, 내가 인사를 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나: 안녕하세요. 니..니하오
장모님: (중국말로) 이제왔나? 힘들었지? 얼른 차로 가자.
아내: 여기는 oo에요. 비행기가 연착을 안해서 안힘들었어요. 오랜만에 왔네요. 마마 잘 지냈어요?
나: ......


나는 대화에 낄수가 없었다. 언어의 벽이 있다는 것을 이때 많이 실감했던 것 같다. 나는 최대한 점수를 많이 따려고 트렁크를 둘 다 옮기고 차에 싣고 아내를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말로는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행동으로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내는 나에게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설명해줬다. 차를 타고 아내의 집으로 가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심천은 처음 가본 도시 였는데, 중국 내에서 신도시에 속하는 곳이고, 홍콩 바로 옆이여서 도로도 깨끗하고 넓었다. 새로운 건물들도 많고, 아직 발전하고 있는 도시다. 내가 그 당시까지 가지고 있던 중국의 이미지도 이 때 많이 바뀌었다.


 심천 아내 집에 도착해서 집 구경을 먼저했다. 굉장히 큰 집었고, 방이 많아서 놀랬던 기억이 있다. 집도 너무 깨끗하고 큰 원형 식탁이 인상적인 전형적인 중국 집이었다. 실제로 중국 일반사람들의 집에는 갈일이 없기 때문에, 이 경험은 꽤나 신기했던 경험이었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졌지만! 가자 마자 식사를 했는데, 진수성찬이었다. 중국요리하면 거부감이 있었는데, 장모님의 요리를 먹고는 그런 것들이 없어졌다. 이 때 2박3일 동안 정말 돼지 같이 먹었다. 말 그대로 돼지서방이 된건데, 진짜 맛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장모님께 잘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나중에 장모님이 누군가와 통화할 때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장모님: 어.. oo 남자친구도 왔어.
친구분: 어때 한국사람인데 괜찮아?
장모님: 뭐 똑같은 사람이지, 키도 크고 그리고 잘먹어서 좋아. 엄청 잘먹어.



이 때 내가 평소 먹는 양의 두 배를 먹었으니, 꽤나 많이 먹었는데 이 모습이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고, 인상이 선하고 잘 먹어서 좋다고 말씀 하셨다고 한다. 이후 장인 어른에게도 인사드리고, 아내의 동생과도 인사를 했는데, 다들 나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물론 말은 통하지 않았고, 아내의 동생, 즉 처남과는 영어로 간단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장모님과 아내는 중국 국적, 처남과 장인어른은 홍콩 국적이어서, 같은 집안 사람끼리도 국적이 다르다. 과거 중국의 1자녀 정책 때문에 홍콩이 바로 옆인 심천은 이런 식으로 가족의 국적이 다른 집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영어를 잘 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처남과는 이때 영화배우 견자단 이야기를 엄청 많이 했다. 처남에게도 점수를 많이 땄던 것 같다.


그렇게 첫 인사를 잘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장모님은 아내를 배웅하면서 또 우셨다. 아마도 아끼는 딸이 먼 이국 땅에서 고생하는게 안쓰럽고 보내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우셨지만, 이때도 여전히 나와 아내에게는 무서운 장모님이었다.  


아내: 오빠가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나: 아니에요 내가 뭐 한게 있나요. 돼지같이 먹는거 밖에...
아내: 그래도 엄마가 오빠가 싫지 않은 것 같아요.
나: 그래요? 그래도 무섭네..
아내: 나도요. 이제 나중에 결혼얘기 할 수 있을까?


서로의 가족에게 상대방을 인사시킨다는 게 참 쉽지않은 일이다. 많이 긴장되고 어색하고. 그래도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말이 안되면 행동으로라도 잘 하다보면 그래도 긍정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 것 같다. 늘 처음은 어렵지만, 그 때를 넘기면 상대방을 대할 때 조금씩 어려움이 줄어든다. 


지금도 여전히 장모님은 사위인 나에게 똑같이 대해주신다. 어쩌면 나는 이미 장모님에게는 가족이 되었을지 모른다. 물론 자신의 아들과 딸 보다는 못하겠지만 그것 못지않게 먹을 것을 주시고 챙겨주시는 것을 보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긴장되었던 그 첫 만남은 내가 다른 세상을 온전히 만난 첫 날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낯선 음식을 먹고, 전혀 다른 스타일의 가정 집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경험 자체는 그 이후의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 물론 아내의 삶도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어 갔다. 


 





 

이전 01화 낯선 시선, 그리고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