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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Mar 27. 2018

상대방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



난 매우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다. 워낙에 숯기가 없고 말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했는데, 친한 친구 몇 명과만 친하게 지냈었다. 그런데 친밀감이 높아지면 좀 더 수다스러워 지는 경향이 있다. 중고등학교 때는 그냥 조용했고, 대학교 2학년 까지는 그런 경향이 지속되었다. 그래서 인지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너무 어려웠고, 그냥 혼자 있는 게 편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복학 후에는 많은 모임도 참여하고 친해진 선후배, 동기 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내 말문은 그때부터 틔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어렵고 대화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 시작하면 수다를 꽤 많이 떨었다. 어찌보면 늦게 대화를 배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어를 이용한 내 대화의 기술과 언어 능력도 어쩌면 그 때부터 걸음마를 떼고 현재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대학교 1학년때 얼마나 조용했으면 이런 일도 있었다. 그만큼 내 존재감이 없었던 것이다.


친구 1: 야 너 어제 000드라마 봤어? 완전 재미있던데.
친구 2: 봤지. 000 너무 이쁘지 않아? 그 작가 드라마는 완전 몰입도가 높아~!
친구 1: 있다가 우리 노래방갈까?
친구 2: 그럴까? 그럼 00도 부르자~
친구 1: 응? 옆에 있잖아~
나: ;;; (베시시 웃으며) 나 여기...


아내를 만나기 전에 몇 명과의 연애를 했었지만, 대화가 그렇게 많았던 것 같지 않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어색했고, 불편한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서로 공통점이 없었을 수도 있고, 대화나 언어의 활용적인 측면에서도 서로의 말에 대한 의미나 느낌을 제대로 주고받지 못했었다. 이렇게 한국 사람끼리도 서로의 말을 전달하고 대화를 나누는게 쉽지 않은데, 외국인이면 얼마나 어려울까?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나도 직장 생활하며 해외에 있는 직원들과 컨퍼런스 콜을 할 때면, ‘저 사람들은 무슨 말을 저렇게 어렵게 할까’, ‘왜 내말을 이렇게 못 알아듣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으니까 말이다.


외국인인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고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처음에는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나는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아내는 그 당시에도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해서 자신이 사용한 단어가 잘못되면 꼭 알려주길 원했다. 알려주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늘 핀잔을 들었다.


나: 자기는 한국어 배운지 얼마나 되었어요?
아내: 제가 한국에 들어온지 3년째 니까 2년 조금 넘었습니다. 한국어 어려워요.
나: 그런데 한국말 너무 잘하는데요?
아내: 아닙니다. 오빠가 부끄러워요. 많이 부족했습니다.
나: 아닌데, 너무 잘하는데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배울 수 있어요?
아내: 잠깐, 내가 틀린거 있는데 왜 안 알려줘요. 아직 많이 부족해요. 틀리면 꼭 바로 알려주세요.
나: 응? 뜻이 통하니까 그냥 넘어가도 되요. 크게 틀린게 아닌데요.
아내: 그래도 내가 알아야 진보할 수 있어요. 안 알려주면 내 실력이 늘지 않을 거에요. 꼭 알려주세요!


그래서 나는 언제나 아내가 틀린 표현을 쓰거나 어색한 단어를 쓰면 그걸 바로 잡아줬다. 대화를 할 때도, 문자를 할 때도 늘 그렇게 했는데, 그러다보니 아내의 한국어는 거의 네이티브 수준이 되었다. 그냥.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할 때 상대방이 쉽게 외국인임을 눈치 채지 못한다. 아내가 나보다는 훨씬 수다스러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대화를 할 떄보면, 아내는 밝고 경쾌하게 엄청난 수다를 떤다. 그렇게 대화를 많이 하니까 금방 배운 것일거다.


어느 순간, 나도 중국어를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만약 우리가 결혼하고 나서 중국에 있을 때, 아내가 죽거나 아프다고 했을 때, 병원을 가서 의사를 만날 것이다. 그 때 의사가 하는 말을 못알아들으면 얼마나 답답할까?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데, 아내의 가족들에게 그런 상황을 전혀 알리지 못하고 몸짓으로만 전달해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무엇보다 아내는 나의 언어를 그렇게 잘 하고 계속 배우려고 하는데, 나는 아내의 언어를 배울 생각을 못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나도 중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런데 아내는 원래 모국어가 광동어다. 광동어와 북경어는 한자는 같지만, 발음이 완전히 다르다. 광동어는 9개의 성조를 쓰지만, 북경어는 4개의 성조를 쓴다.


북경어 - 밥먹었어요?  : 니츠판러마?

광동어 - 밥먹었어요? : 섹조판메이?

북경어 - 안녕하세요? : 니하오

광동어 - 안녕하세요? : 네이호우

북경어 - 사랑해요 : 워아이니

광동어 - 사랑해요: 옹오네이


나: 나 중국말 공부하려고요.
아내: 정말요? 그럼 좋죠!! 근데 광동어 하시겠어요? 북경어 하시겠어요?
니: 찾아보니까. 광동어는 도저히 못하겠어요. 그냥 홍콩 영화에서만 들을 래요. ㅠ
아내: 그래요 광동어는 발음이 어려울거에요. 북경어 공부 하시면 제가 많이 알려 드릴게요.


발음때문에, 그냥 북경어를 배우기로 했다. 광동어의 단어 몇 개를 들려달라고 하고 들어봤지만, 성조 구분이 안되고 발음도 되지 않아서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렇게 북경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정말 한 글자, 한 발음도 접하지 못했던 나로써는 시작이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도 아내가 카카오톡 채팅창으로 핸드폰으로 중국어 쓰는 법과 여러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알려줬다. 절대 짜증내는 법이 없이 내가 모르면 모르는대로 계속 반복해서 알려줬다. 그렇게 3년을 하다보니 이제는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내가 처가댁에 가서도 장모님과 일상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단지 언어를 배우고 간단한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장모님이 왜 그렇게 짜증을 내시는지, 왜 그렇게 걱정이 많으신지가 바로 어감으로 느껴지니 좋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것 처럼 나는 대화에 대한 기술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국어로 한국사람과 연애할 때도 어려움을 겪었는데, 외국사람과 여러 가지 언어로 이야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의도나 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였던 것 같다. 물론 상대방의 언어로 이야기하는데는 많이 서툴고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각자 그것을 생각하면서 대화를 주고 받기 때문에, 좀 더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다시 묻고 답하고, 또 묻는 과정이 반복된다. 좀 더 상대방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존중하게 된다. 내가 상대방의 언어로 대화를 시작할 때, 그것은 서로의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 시킬 수 있는 것 같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면서 서로의 가족들도 알게되고, 친구들도 알게된다. 더 나아가 내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깊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그런 언어 습득과 대화 과정을 거치며 내 존재감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학창시절과 다르게 좀 더 자신있게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고 중국 친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행동한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를 보면 콜린퍼스가 외국인과 벌이는 로맨스가 나온다. 그들은 대화를 전혀 나누지 못했지만, 서로에게 끌려 서로의 언어를 배운다. 그런 노력 끝에 남자는 여자에게 달려가 그녀의 언어로 고백을 한다. 매우 로맨틱하게 그려지긴 했지만, 만약 외국인과 국제 연애를 하거나 국제 결혼을 하게 된다면, 꼭 상대방의 언어를 배워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언어를 잘하게 되는 것보다는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만 되어도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고, 또 배려하는데 도움이 된다. 가족들과 대화를 하고 내 아내의 어릴적 숨은 이야기를 듣는 기분은 정말 즐겁다. 상대방의 언어를 배우는 것도 결국 상대방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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