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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Apr 03. 2018

상대방 음식에 대한 존중



 어릴 때부터 나는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 편이었다. 특히 야채가 들어간 음식을 좋아해서 겨울이 되면 늘 야채 호빵만 찾았고, 고기를 먹을 때도 야채를 마구 욱여넣은 쌈을 즐겨먹었다. 반면에 남동생은 고기를 좋아해서 삼겹살을 즐겼고, 김치찌개를 먹을 때도 고기만 건져서 먹는 편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늘 고기와 야채를 골고루 준비해야 해서 힘드셨다고 한다. 이렇듯 음식에 대한 부분은 한 형제도 맞추기가 어렵다. 한 가족에서 각 식구들의 입맛도 다 다르기 때문에, 종종 이런 경우가 생긴다.


나: 아.. 오늘은 야채가 좀 없네요. 그래도 김치는 맛있어요.
동생: 어제 먹다 남은 고기는 없나요? 김치가 좀 짜요.
아버지: 물김치 남은 건 없나? 국은 왜 싱거워?
어머니: 아휴! 그냥 대충들 드셔~ 말들이 많네~
(일동 침묵하고 먹는 중..)


 매번 저런 일이 생기진 않겠지만, 저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아마 어머니는 열불이 터졌을 것이다. 같이 마주 앉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에서 가장 많이 반복하는 일이다.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인들도 데이트를 뭔가 마시거나 먹으면서 시작한다. 나와 아내도 첫 데이트는 밥 먹고 차를 마셨으니, 만남의 대부분은 아마도 같이 맛있는 것을 공유하면서 시작될 것이다.


 물론 본 매거진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와 아내의 첫 데이트에서 음식 선택은 좋지 않았다. 서로에 대해서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냥 내가 주도적으로 식당을 선택했는데 그게 문제였다는 걸 나중에나 알았으니까 말이다. 첫 데이트 이후에 그런 일이 또 있었다.

 

나: 우리 커피 먹으러 갈까요? 00 카페에 커피 맛있어요.
아내: 네 좋아요. 같이 드시죠.
나: 뭐 마실래요?
아내: 제가 이런 카페 잘 안 와보니까, 오빠가 좀 시켜주시겠어요?
나: 아 그래요? 네네 내가 그냥 시킬게요.
아내: 네 그래 주세요.
나: 카페라테 한 잔 하고, 캐러멜 마끼아또 한 잔 주세요.


 나는 보통 여자들이 달달한 캐러멜 마끼아또를 좋아한다고 알고 있어서, 그 매장에서 최고로 달콤한 음료를 주문해서 아내에게 줬다. 그 당시 아내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 한 두 모금 마시더니 전혀 먹지 않고 이야기에만 집중했다. 거의 카페에서 일어날 시간이 되었는데, 아내의 잔은 그대로였다.


나: 어? 왜 이거 안 마셔요? 아깝네.
아내: 이거 너무 달아요. 저 달콤한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이 커피 뭔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단 맛은 첨 먹어봐요.
나: 헉!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요? 전혀 몰랐네. 난 일반적으로 대부분 단 거 좋아하니까 이거 시켰어요! ㅠ
아내: 다음엔 달지 않은 걸로 먹을게요. ^^


 그 이후부터는 달달한 음료나 음식은 잘 먹지 않았다. 아마도 이때 이후부터는 서로 싫어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공유하며, 서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먹었던 것 같다. 아내는 대체적으로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타입이다. 대학원 때문에 한국에 와서 친구와 자취를 하면서 주로 많이 먹었던 음식이 감자탕이나, 피자, 맥도널드 햄버거, 닭강정 같은 음식이었다. 특히나 같이 살던 친구가 졸업하고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아내는 혼자 피자를 시켜 며칠 먹거나, 닭강정을 사서 혼자 대충 식사를 했다. 한국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아서 건강에 좋지 않지만, 그런 패스트푸드로 식사를 대충 먹고 있었다.


 나를 만나면서는 그래도 밥은 챙겨 먹으려고 했다. 나는 최대한 밥과 반찬이 잘 나오는 곳으로 가서 생선구이나, 고기반찬이 많이 나오는 곳을 갔다. 그나마 그런 음식들도 많이 먹지는 않았다. 늘 그게 마음에 걸렸는데, 어느 날에는 진짜 중국 요리하는 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먹은 중국 요리는  짜장면, 탕수육, 짬뽕 같은 한국식으로 계량된 중국 요리뿐이었다.


아내: 오빠가 오늘은 뭘 드시겠어요? 배가 고파요.
나: 오늘은 진짜 중국 요리하는 곳에 가면 어때요? 나 중국 요리 먹어보고 싶어요.
아내: 짜장면집 말고 진짜 중국 요리하는 곳이요?
나: 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있으면 더 좋고요. 오늘 가봐요 우리.
아내: 그럼 광둥식 요리가 좋으세요? 아니면 북경 쪽 음식이 좋으세요?


 사실 나는 중국의 요리가 다 똑같을 거라 생각했다. '북쪽이나 남쪽이나 뭐 그렇게 다르겠어?'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광둥식 요리(홍콩)는 좀 더 담백하고, 향신료가 좀 덜 들어간다. 그리고 아주 매운 요리가 별로 없다. 반면에 북쪽에서 먹는 요리들은 사천 음식처럼 매운 음식이 많고,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다. 물론 내가 먹어본 경험 중심이라 다른 사람들에겐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한국에 있는 중국 요리 집들은 대부분 북쪽 음식이고, 광둥식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은 몇 군데가 없다. 그래서 북쪽 중국 음식 위로의 식당들을 종종 다녔다.


<신촌역 근처의 샤오롱바오와 을지로 광둥요리 전문점 칭키면가>


 실제로 먹어보니 너무 맛있었다. 중국식 샤부샤부, 양꼬치를 비롯해 볶음면 요리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좀 느끼한 요리도 많았고, 특히 생선탕이나 기타 탕 들은 특유의 냄새가 있어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그래도 아내와 서울 곳곳에 숨어있는 많은 중국 요리 집에 가려고, 대림역 근처나 건대 입구역 근처 골목길의 중국 식당들도 많이 가봤다. 아내는 입에 맞는 맛집을 찾을 때마다 너무 기뻐했고, 몇 군데를 추려서 생각날 때마다 방문했다. 물론 아내 입맛에 안 맞는 식당도 있었다. 양념이나 향이 너무 센 음식들을 먹고 나면, 아내는 늘 속이 불편했는데, 그런 센 음식들이 심천이나 홍콩 사람들에게는 안 맞는다고 한다. 그래서 향이 좀 진하다 싶으면 그 식당은 들어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각자의 집에 방문해서 각자 어머니의 음식을 먹을 때, 서로 긴장을 좀 했다. 아내의 첫 방문 때, 어머니는 김치찜을 해주셨는데, 맵지 않게 오래 푹 고아서 부드러운 고기와 함께 주셔서 아내가 지금도 그 요리는 정말 좋아한다. 사실 뚝배기 불고기와 삼겹살 등 고기 종류를 제외하고는 아내가 생 야채나. 나물 반찬 등을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래도 어머니가 주시는 반찬이나 음식에 불평을 한 적은 없다. 어머니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그런 불평을 하지는 않는다. 중국에서는 생 야채를 먹지 않는다. 거의 볶아서 먹기 때문에, 생 야채를 먹는 거에 대한 이질감이 생각보다는 크다고 한다. 그래도 아내는 고기가 나오면 쌈도 싸 먹고, 여러 가지 반찬들도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중국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회는 기피 음식 중 하나다.


나: 이 불고기는 어때요?
아내: 너무 맛있어요! 자꾸자꾸 먹게 되네요. 돼지 되겠어요.
나: 저기 있는 회도 좀 먹어봐요. 완전 쫄깃쫄깃.
아내: 아... 아니에요. 자기가 많이 드세요. 저는 여기 불고기랑 쌈을 먹을게요.
나: 회 진짜 맛있는데... 그래요 다른 거 많이 먹어요!


 내가 처음 중국의 장모님 댁에 방문했을 때는 뭔가 배고프다는 느낌보다는 말도 통하지 않는 긴장감 속에 잘 보이겠다는 마음이 앞서 해주신 요리들을 마냥 폭풍 흡입했었다. 중국의 집밥을 처음 먹어보는 거였는데, 보통 일반적으로는 2-3개 정도의 요리와 탕 하나를 끓여서 식구들과 나눠먹는다. 중국 가정에서는 밑반찬이랄 게 없고 다 즉석에서 요리를 해서 먹는다. 내가 처음 방문할 때, 아니 언제든 내가 방문하는 날에는 장모님이 만드신 요리가 7-8개 정도가 나온다. 내가 처음 방문할 때 샹차이라는 야채 볶음 음식을 엄청 많이 먹었더니, 그 음식을 내 앞에 두고 많이 먹으라고 지긋이 쳐다보신다. 장모님의 요리는 대부분 맛있다. 생선 요리는 조금 먹기가 힘들지만 맛이 없는 건 아니다. 다양한 요리를 아주 맛있게 하시기 때문에, 나는 특별히 못 먹는 요리 없이 마구마구 먹을 수가 있었다. 그래도 며칠 동안 중국 요리를 먹다 보면 김치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여기는 생 야채가 없고, 김치 같은 밑반찬이 없기 때문에 음식이 느끼하게 느껴지면 달리 먹을 음식이 따로 없다. 그래서 장모님은 내가 느끼하다고 하면 늘 직접 만드신 매실주 한 잔을 주신다.


 아내는 한국에 살면서 늘 음식이 입맛에 안 맞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신혼 때는 여기저기 중국 식당을 많이 다녔고 주말에는 재료를 사다가 중국요리 하나, 한국요리 하나를 만들어 서로 나눠 먹었다. 각자 상대방 집에 방문할 경우에 여러 가지 요리가 나오는데, 일단 먹어 본다. 보기에 좋지 않고, 향이 좋지 않아 이상해 보여도 일단 먹어보려고 하고 시도해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음식의 맛을 알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요리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단순히 많은 식당을 가고 많은 요리를 먹어 본다고 해서 상대방의 음식 취향을 알게 되지는 않는다. 여러 식당을 다니면서 같이 먹어보고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어머니들이 만든 음식을 먹었을 때, 정말 상대방이 어떤 요리를 좋아하는지, 어떤 요리를 싫어하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결국 음식도 상대방에 대한 탐구 정신과 배려가 필요하다. 어떤 때는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먹게 될 수도 있다. 어떤 때는 상대방이 싫어하는 음식을 먹게 될 수도 있다. 서로 각자 본인 나라의 음식이 제일 잘 맞을 것이다. 그래서 같이 생활하다 보면 상대방의 음식 취향에 따라 음식을 준비하거나 먹어야 한다. 그것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식사를 같이 할 이유가 사라지고 결국에는 서로 소원해지게 된다. 최근에는 많은 예능들이 음식을 만들어 같이 먹거나, 파는 것을 중심으로 방송된다.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도 주로 배우들이 음식을 같이 요리하고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음식을 나눈 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서로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한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서로가 만든 그 음식 속에는 각자의 삶이 담겨있는 것 같다. 그 각가의 삶을 존중할 때, 더 달콤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그렇게 둘 다 돼지가 되는 걸까? :)


  


[장모님의 다양한 요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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