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선의'가 세상을 살릴 수 있을까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총 6편의 영화 중에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시리즈를 하나씩 고를 수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모든 시리즈가 재미있는 오락영화라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 같다. 이단 헌트의 활약을 처음 볼 수 있었던 <미션 임파서블> 1편은 액션보다는 첩보 장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1996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가 개봉 후 비디오 가게로 넘어갔을 때 접하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충격적으로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숨 막히게 서류를 빼오는 유명한 장면, 배신자에 대한 반전 등 이단 헌트라는 인물의 고난이 이 영화에 가득 담겨있었다.
특히나 시리즈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아 기대를 내려놓고 있을 때 즘 등장한 <미션임파서블 3>은 이단의 '선의'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영화다. JJ 에이브럼스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에는 이단의 가족이 생기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내 줄리아(미셸 모나한)는 아마도 이단이 가장 지키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이단이 세상에 나서지 않으면 세계는 끔찍한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여기서 바로 이단의 고민이 시작된다. 아내 옆에서 아내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세계를 지키기 위해 아내의 안전을 잠시 내려놓을 것인가. 실제로 이런 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래도 선의와 희생 사이에서 무언가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소방관이나 경찰관들이 그런 고민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단 헌트라는 캐릭터는 전 시리즈 내내 매우 선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는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인물이고, 극 중 인물뿐만 아니라 관객들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캐릭터다. 그리고 관객 입장에서 그가 한 명이라고 무고한 사람이 다치는 걸 막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이건 시리즈 내내 보이지 않게 지켜오던 일종의 법칙이다. 그래서 이단은 다수를 지켜야 하지만, 소수의 인원까지 희생시키지 않아야 하는 상황, 그것은 정말로 불가능한 작전이다. 그 말도 안 되는 딜레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3편이다. 자신의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아내를 다치지 않게 해야 하고, 또 한 편으로는 테러를 하려는 악당을 잡아야 했으니까.
'선의'에는 늘 어떤 희생이 따라오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선의를 하려고 고민할 때, 그것이 가져오는 반작용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어떤 선까지 지키고 또 실행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다. 이단 헌트는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캐릭터다. 그렇게 선한 사람이 세상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는 무언가 개인적인 생활을 하기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능력 있고 유명한 인물이라면 정치적인 영향력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가 가진 '선의'는 마치 영화 <돈룩업>의 박사들처럼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도 높다. 복잡하고 또 알 수 없게 진행되는 세상의 흐름 속에 그 '선의'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지도 의문이다.
어쩌면 아주 이상적인 캐릭터인 이단 헌트는 현실에서 보기 힘들어서 더욱 응원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영화 속 많은 영웅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고민이 있다. 아마도 이단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의 선의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주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정치인 중에서도 그런 '선의'를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자신의 욕망에 묻혀버리고 말지만...) 그들은 자신의 가족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정치 활동을 해나간다. 물론 정치인인 이유로 수많은 사람의 찬성과 반대를 받겠지만, 온갖 비난 속에서도 어떤 사명감으로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정치인이 된 이후, 부수적인 피해를 받는 존재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 '선의'는 영화 속에서 세상을 구한다. 이단 헌트는 <미션 임파서블:폴아웃>에서 세상을 위한 그 선의를 실행에 옮기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도 지켜낸다. 아주 오랫동안 응원해 온 한 캐릭터를 볼 수 있는 것도 마지막 두 편의 영화뿐이다. <미션 임파서블> 7편과 8편이 동시에 촬영을 진행 중이다. 그의 '선의'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면서 시리즈의 마무리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어벤저스> 속 캡틴 아메리카가 선의로 세상을 구하는 것에서 은퇴하고 개인의 삶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이단에게도 그런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질 수 있을까.
현실에서 수많은 사람의 '선의'가 이어진다. 누군가를 돕고, 자원봉사를 하고, 보이지 않게 기부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선의'가 모여 결국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선의'는 결국 세상을 구한다고 믿고 싶다. 세상의 수많은 악이 더 많은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선의'에 의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길 소망한다.
한 사람을 살리는 작은 '선의'
나는 완전한 수포자였다. 수학은 고등학교 시절 넘기 힘든 과목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런대로 따라갈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로 넘어가면서는 쉽게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이과가 아닌 문과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난도가 낮았던 문과의 수학도 따라가지 못했다. 과외를 받아도, 단과 학원을 다녀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진도를 따라가려면서 돌파하려고 했지만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했다. 아마도 너무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따라가며 이해하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학포기자', 그런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수학을 포기한다. 명확한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방법을 이해해야 답으로 갈 수 있는 수학은 참 어려운 과목임은 틀림없다. 수포자 지우(김동휘)와 학교 경비원이면서 수학천재인 학성(최민식)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무언가 따뜻함을 기대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왠지 무뚝뚝함으로 서로를 대하지만 이들에게 묘한 공통점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수학을 못하는 사람과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만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수학은 왠지 차갑게만 느껴진다. 아마도 내가 그동안 만났던 수학선생님들이 모두 조금은 차갑고 학생들에게 무관심한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 속 담임 선생님은 수학을 가르치는데, 학생들에게 꽤 차갑다. 특히나 성적이 나쁜 지우에게 더 차갑게 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험 결과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선생님이다. 과거 내가 만났던 수학 선생님 중 그래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중학교 때 만났던 수학 선생님일 것 같다. 성적에 따라 성적이 특정 기준에 충족하지 않으면 나무 막대기로 엉덩이를 때렸다. 그때 엉덩이를 얻어맞고 나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너무 화가 나서 돌아서며 시험지를 구겨버렸다. 그 수업시간이 끝난 이후, 나를 보던 수학 선생님은 "많이 아팠나, 열심히 해라"라는 말을 남기고 나를 교실로 들여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가운 수학의 이미지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그런 차가운 이미지 때문에 수학에 더 미련을 가지지 않고 포기하는 선택을 했었던 것 같다. 영화 속 학성은 꽤 차가워 보이지만 그가 수학 문제를 풀고 가르쳐줄 때 그의 눈엔 따뜻함이 가득하다. 학성이 지우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는 건, 일종의 '선의'다. 지우의 개인 사정이나 태도 등에 영향을 받았겠지만 특별히 큰 것을 바라지 않고 딸기 우유를 받고 생겨난 그 작은 마음이 그에게 작은 '선의'를 베풀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어두운 창고에 앉아 수학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따뜻해 보였다. 학성이 준비한 몇 개의 전등과 책상 그리고 칠판은 왠지 모를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학성의 도움은 결국 지우를 살린다. 그를 전학시키려는 담임선생님도 단념하게 만들고, 지우의 성적도 긍정적으로 바꾼다. 중요한 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정답에 다가가는 것이 실패하더라도 다음 날 다시 도전하는 것, 결국 수학과 얼마나 친해져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학성의 말이 마음속에 들어왔다. 수포자들에게 그런 따뜻한 선생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에게 따뜻한 수학선생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평범한 성적의 나에게 따뜻했던 선생님은 없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야 수학의 한 파트인 통계에 좀 더 친근해졌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통계 책 한 권을 떼고 다양한 통계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었던 건 늦게나마 좋은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잘한다'는 한마디는 꽤나 통계라는 영역에 흥미를 가지게 했고, 다른 수학은 못했어도 통계만큼은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결국 직종까지 선택하게 했으니 나도 어떤 선생님의 '선의'를 이미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학성은 북한 사람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상한 나라'라는 수식어가 붙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학성이라는 캐릭터는 말투만 북한 사람일 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학자의 모습과 똑같다. 다르게 보면 학교에서 외톨이였던 지우도 이상한 나라의 학생이고, 남한에 내려와 몰래 경비원을 하던 학성도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두 소외된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채워주면서 각자가 해주고 싶은 '선의'를 주고받는 모습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왠지 차가워 보이는 수학이라는 과목에서 이런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음악이 우리에게 주었던 '선의'
대학교 때 악기 하나즘은 직접 연주해보고 싶었다. 기타, 피아노, 드럼 같은 악기를 밴드에 가입해 배우고 공연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쉽게 실행할 수 없었다. 노래의 음만 녹음된 MR을 이용해 목소리만 보태는 식으로만 시도해 봤을 뿐이다. 그러니까 작은 노래 동아리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공연을 해봤을 뿐이다. 다른 멤버가 연주하는 기타와 전자건반의 음에 따르기도 했고 MR을 사용하기도 했던 그 동아리에서 연습했던 기억은 꽤 따뜻하면서도 아쉬움을 담고 있다. 지금은 연락이 끊겨버린 그 동아리의 멤버들도 여전히 마음속에 담겨있다.
영화 <다시 만난 날들>은 작은 독립영화다. 약간의 이야기와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고 부르는 음악이 꽤 인상적인 영화다. 영화에는 무명 작곡가 태일(홍이삭)이 나오고, 작은 음악학원에서 지원(장하은)을 만난다. 대학교에서 같은 밴드에 있던 이들이 지금의 고등학교 밴드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사실 별로 큰 긴장감이나 극적인 사건은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마음을 움직인 건, 영화 속 과거 태일과 지원이 밴드에서 공연하는 장면 때문이다.
과거에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현재의 그들은 반가움과 어색함이 함께 느껴진다. 한 밴드에서 같은 음악을 하고, 감정을 공유했던 그 관계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도 대학 시절 어떤 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하던 멤버들 간에 교류하던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보이지 않는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나 음악 동아리에서 공연을 했다는 것은 더 큰 감정의 교류를 했다는 것이다. 음악으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고, 때론 다투기도 하면서 꽤나 많은 시간을 아주 가까운 사이로 지내게 되기 때문이다.
연애 감정과는 조금 다른 그 감정은 한 편으로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편으로 보면 우정이라는 감정이 될 수도 있다. 영화 속의 두 주인공의 관계에서 그런 느낌이 잘 드러나 있다. 서투르고 무언가 완성되지 않았던 예전의 감정들을 다시 만난 그들. 그들의 얼굴 속에서 나와 같이 공연했던 동아리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왠지 그때의 그 감정들을 다 놓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그때가 좋아서일까. 아니면 좋지 않아서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작은 무대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부끄럽게 목소리를 냈던 그때는 다른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도망가고 싶었고, 또 공연을 잘 마치고 우리의 공연을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같이 존재했다. 그래서 그 당시의 감정은 더욱더 복합적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중학교 밴드 '디스토리어'의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감정을 노래를 통해 드러내는데, 감정에 따라 노래의 분위기가 확 바뀐다. 그건 사소하지만 아주 크고 심각한 감정이고 그것이 표출될 때마다 멤버들의 관계도 흔들린다. 그 모습들에서 태일과 지원은 자신들의 과거 모습을 본다. 그리고 나도 그 모습에서 나와 동아리 멤버들의 모습을 봤다. 무슨 일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가로 다퉜고 그 이후에 그 관계는 다시 회복되지 못한 채 졸업을 맞았다.
서로 어떤 공통점을 찾으려고 무진 애를 쓰던 시절,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도 중요했던 그때의 감정과 감성을 영화를 보며 떠올리게 되었다. 이건 영화 속 밴드음악이 주는 특유의 느낌도 한 몫했다. 작은 기타 소리로 시작된 노래는 후렴구에 가면 큰 보컬의 음성과 함께 드럼, 전자건반, 베이스 같은 악기들의 선율이 더해지며 풍부해진다. 모두 좋은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려고 노력했던 시간. 음악으로 하나의 마음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시간. 음악이 어떤 의식을 가진 건 아니지만... 그건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선의'가 아니었을까. 음악이 아니었다면 그때의 우리들은 그렇게 긴 시간 같은 곳을 보고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때의 사람들과는 연락이 끊겨버렸다. 가끔 다들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음악으로 마음을 맞추려고 노력했던 그 사람들. <다시 만난 날들>이라는 영화를 아는 사람도 적고, 본 사람은 더 적다. 그래도 나에게만큼은 꽤 좋은 영화로 다가온다. 자주 듣게 된 영화음악 OST도 참 좋다. 락과 발라드, 댄스 같은 음악들이 과거 내가 좋아하던 음악들이어서 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언젠가 그 당시의 멤버들을 만난다면 음악이 주었던 그 '선의'에 다시 한번 빠져보고 싶다.
#.영화 <다시 만난 날들> OST 중 "잠자리 지우개"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JxHnvSdgK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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